중국이야기

제14차 중국여행 13/15일차 덕양시 백마관 방통사 (2019.4.16 화)

무논골 2019. 5. 1. 23:43


9시 43분에 도착하여 택시 기사가 백마관이라면서 한  길가에  내려준다.

이정표 따라 한적하게  시골길 걷는다.



(내가 만든 지도)


(인터넷에서 받은 지도)





여행 계획  세울 때

백마관 방통사 등등 그냥 한 세트로 묶여 있으니 어느 곳 먼저 보고  말고가 아니다.

도만팔괘곡 옛마을 등도 같이 볼 수 있다. 


백마관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메모한다.

출처 : 바이뚜 공개정보


백마관은 사천성 덕양시 라강구에 있다.

덕양시내에서  북쪽으로  15km,면양시로부터는 남쪽 27km에 있다.

명월협에서도 봤던 그 108번 국도가 앞을 지나가고 있다.


백마관은 검남촉도상의 5개 관,葭萌关、剑门关、涪城关、江油关,白马关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관으로서

교통요지이고 삼국 촉한 정권 50년 흥망이 달린 곳이었다.


白马关景区隶属四川省德阳市罗江区,地处成德绵经济圈中心地带,南距德阳市区15公里,北抵绵阳27公里,距罗江城区4公里,宝成铁路、川陕公路(108国道)、成绵高速公路、成绵乐铁路客运专线横穿全境。汉代称绵竹关,唐、宋易名鹿头关,剑南蜀道上五关之最后一关,地处交通要塞,是三国蜀汉政权五十年兴亡佐证地,自古为物资集散地和兵家必争之地。


白马关,是秦入蜀的最后一道关隘,是整个西川、成都平原的屏障,有“南临益州开千里沃野,北望秦岭
锁八百连云,东观潼川层峦起伏,西眺岷山银甲皑皑”之势。它是有汉以来剑南五关的最后一关,由西安至成都入四川境后将经过五关——葭萌关、剑门关、涪城关、江油关和白马关。清朝罗江才子李调元曾以诗句“江锁双龙合,关雄五马侯。

益州如肺腑,此地小咽喉”来形容此关,从诗当中我们也不难想象在古代白马关对于整个四川在战略意义上的重要性。


역사상 백마관은 세 번  이름이 바뀌었다.

면죽관绵竹关, 녹두관 鹿头关,백마관 白马关

현재 걸려 있는 백마관 현판은 송나라 문호 소동파가 쓴 것이다.


历史上,白马关曾经三次易名。东汉时,因其地处于古绵竹城的东北面,所以被称为绵竹关;唐代改名为鹿头关,这是由于关楼地处鹿头山;公元907年,朱全忠于长安篡夺唐朝政权以后,盘据四川的王建,乘机在成都建立了大蜀政权,他移鹿头关到黄许镇的绵远河畔,依水建立关隘,随之借用历史上汉高帝骑白马路过此地、庞统和刘备曾经在山下互挽坐骑这两段历史,而将此关正式定名为白马关。


关楼上“白马关”的关名,则是宋朝大文豪、眉山先贤苏轼的墨宝。


백마관 성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금우도이고

오른쪽에는 방통사묘가 있다.


走进城门,正中是金牛道,右手边就是庞统祠墓。庞统祠和庞统墓,坐落在白马雄关之巅,掩映在森森翠柏之中。

它是四川最早、保存最为完整的一处三国蜀汉遗迹,不仅是三国蜀汉政权兴亡的见证地,而且也是全国唯一纪念三国时期政治家、军事家庞统的专祠。


1980年被四川省人民政府公布为省级文物保护单位,

2006年5月又被国务院公布为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백마관에는  방통사묘 외에도 방통이 화살에 맞아 죽은 낙봉파,도만고진,점장대,오정곡 등이 있다.

 

白马关景区是三国蜀汉文化旅游线上的重要节点,也是“大九环”旅游线的重要节点,德阳旅游“南有广汉三星堆,北有罗江白马关”已形成共识。 白马关景区内除了庞统祠外,还有庞统被射落马的落凤坡、刘备安葬庞统的庞统墓、以徽派迷宫院落为主的倒湾古镇;以及现存世界上最早的国家级道路,连接南北走道的交通大干道——金牛古道;还有残存有昔日辉煌的点将台、换马沟、八卦古战场、五丁谷等三国遗踪,构成了德阳三国蜀汉文化旅游美不胜收的历史长廊。白马关景区是连缀在三国遗迹旅游线上的一颗璀璨的明珠。



드디어 백마관에 섰다.

나 여기 서있다.


백마관白馬關이라는 글씨는 동파 소식이 쓴 것이다.




백마관  안쪽 옛길.

금우도라고 한다.


저 길따라  걸으면 방통사가 금방 나온다.

저 길 오른쪽 담장 안쪽도 방통사의 한 경내일 수 있다.


백마관 관루에서 바라 본 저수지

저 저수지를 봉추호라고 부르고 있다.


백마관  관루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패방이 있다.



진촉 금우고도

아까 백마관 관루에서 봤던 그 길이다.


秦蜀金牛古道与长城、灵渠并称为中国古代三大工程,被称为世界交通史上的活化石。公元前三世纪,古蜀国开明王朝,命五丁开山所筑,北至长安(今陕西西安)九百一十公里,南至益州(今四川成都)九十公里。蜀道难至此始、亦此终。越秦岭南下至此为坦途,自成都北上至此路途险巇。


진촉 금우고도


기원전 3세기 지금의 서안에서 성도에 이르는 길이다. 

사천성 삼국지 기행하다보면 이길을 늘 가까이 지나가게 된다.여러번



옛 길을 걷고 있다.

서안까지 920km, 성도까지 90km이다.


한정후방통사



백마관에 와서 치열한 격전지였을 백마관 관성을 보고자 하였으나 그건 약간 실망이다.

위 인터넷에서 받는 조감도처럼 백마관 북문과 방통사묘가 있을 뿐이었다.







龙凤二师殿


사진이 흐리다.유리창에 반사빛으로 사진찍기가 곤란.


와룡과 봉추의 이름이 드높도다.

용봉고명


방통과 공명


봉추가 말하고 와룡이 듣는다凤说与龙听

말할 수 있는 것은 들을 수 있는겉만못하다“会说的不如会听的”


위 두 문구는 중국 인터넷에서 따온 말이다.


서봉

봉이 깃들여있다.





방통 소상



방통묘

한정후방사원지묘


서기 214년 방통이 죽고 촉한의 유비가 친히 터를 잡아 장례하였다.

묘 남쪽으로 익주를 바라보고 북쪽으로는 진령산맥을 볼 수 있다.


청나라 때 만들었다는 말 두 필을 위한 이마정은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



방통사 앞에 남쪽에 있는 요씨 절효방

 

1826년 청나라 때 나강현 요씨가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 남편을 잃고도 재가하지 않고 수절하였으며

재산을 기부하여 고역도를 닦았기에 여기에 절효방을 세운다는 것이다.


문혁 때 훼손된 것을 2011년 다시 세웠다.



요씨절효방


요씨절효방


농막 한 칸 세우는 것도 생각이 많은 우리 입장에서 이런 거대한 기념물을 세우는 데

마음을 합한다는 게 참 신기하다.


봉추비랑


방공사원


봉추비랑 앞에 있는 "시아주행"

청나라 때 독지가가 고역도를 닦았다는 기사이다.


고역도 시작은 기원전 3세기였지만 이후 중국인들이 이 고역도를 무척 사랑하고 잘 가꾼듯하다. 

장성,영거와 더불어 고대 3대 건축이라고 하니......



서봉....봉황을 쉬게하다?

좀 외진 이곳에 잠시 쉬었다.


사천의 문인 姜诗의 백마관부


백마관루(북)와 방통사묘를 구경하고

남문 이정표 있어 찾아가다가 결국 못찾았다.

서바이벌게임장인듯한 농장을 만났지만 시간관계상 더 찾아볼 수는 없었다.

관성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다.


그러다가 만난 이정표가 아래 점장대이다. 


점장대 가는 계단


장비점장대라고도 한다.

방통이 죽은 것을 복수하기 위해 장비가 이곳에서 점장했다는 것이다.


点将台高10米,宽10米,长30余米,为天然石叠砾岩平台。

根据民间传说,为张飞为庞统报仇点将处。


清李桂林纂修《罗江县志·古迹志》有

:“将台,在落凤坡侧,相传汉诸葛武侯点兵于此,旧有亭,今废”。


높이 10m


너비 10m,길이 30m라는 기록이 있다.


이곳은 이 지역에선 비교적 높은 구릉에 있어 감제고지인데

마침 안개가 많아 잘 보이지는 않는다.



백마관 관루 앞 과경대


애초 라강현성에 있었던 것을 이곳에 옮겨왔다는 것이다.

백마관성 앞에 서 있다는 게 어쩐지 좀 쌩뚱하다 싶었는데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될 처지의 역사흔적을

이곳으로 옮겼다는 것이 그래도 갸륵하다.

중국인민아.



하마비

하마비 너머로 백마관 앞 뜰에는 체험학습 나온 학동들의 함성이 요란하다.



'봉추호'라 이름 지은 저수지


고역도

한적한 길을 걷다.


도만고진 마을에 있는 무대


어떤 역사성 있는 거냐고 물으니 없다고 대답한다.

여기에서 개활허니 잘 보인다.


도만마을의 유래가 적힌 설명문

덕양 관광 안내를 접하면서 도만이라는 마을 이름이 특이하다 싶었는데 유래가 참 슬프다.


도만마을은 팔괘곡 서쪽에 있다.

근데 마을 이름이 참 특이하다.연유를 알아본다.

위나라 군대와 대치하던 촉나라의 대부분의 장병들이 이곳에서 목베어지고 거꾸러지니 도만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생명이 스러져간 슬픈 역사가 그대로 지명이 되었구먼...


거꾸러지다(倒)는 이해했는데 물길 만(湾)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이곳에 있던 마을을 2007년말에 철거하고 새롭게 마을을 조성하고 구태여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여전히

그들의 심리를 이해를 못하고 있다.



도만마을 위치 倒湾古镇


倒湾古镇就位于三国古战场“八卦谷”以西,金牛古道以南,凤雏湖、庞统祠以东,居于景区“三国蜀汉文化旅游”开发核心区。古镇充分利用历史遗留下来的景点,利用山体周边的天然植被,将村庄融入到历史、商业、人文和自然之中,使整个古镇在原有的环境中滋生。



도만마을 명칭 유래 名称由来

倒湾的历史可以上溯到大约两万年前,也就是地质时代称为更新世的时候。当时天地洪荒,白马关所在地形成奇异的海底世界,砾岩被冲击成无数沟壑,婉如这些岩石被海流逼到进退两难的境地。后大海消逝,便形成一个屏障。与其说白马关有一个倒湾,不如说因为有倒湾才有白马关,至少按事物溯源的推论是这样。


倒湾是白马关古战场遗址之一,其全称为“落凤坡倒湾古战场”。为什么叫“倒湾”呢?公元263年,魏国征西将军邓艾、镇西将军钟会、雍州刺史诸葛绪等分三路伐蜀。邓艾率一批精兵强将从无人小道偷渡姜维防守的阴平关(甘肃文县),随后破江油关,直逼成都。


诸葛亮长子诸葛瞻临危率军到鹿头山绵竹关(即白马关)布兵防守。邓艾攻进涪县(今绵阳市涪城区),派人送书信引诱诸葛瞻说:“如果你投降,我肯定向魏王上书请求封你为琅琊王。”诸葛瞻勃然大怒,一气之下斩了邓艾的使者,登上鹿头山指挥蜀军与邓艾率领的曹魏军队进行决战,白马关前锣鼓铿锵、战马嘶鸣,杀声震天。


虽然诸葛瞻占据有利地形,但由于仓促应战,加之蜀军很多士兵从参加过战斗,没有实战经验,因此,在魏军的凌厉攻势下,蜀军渐渐不敌,白马关上血流成河,尸横遍野。诸葛瞻、张遵(张飞之孙)先后被魏军砍下头颅,蜀军将士大部殉难,白马关失守。而这里,也因蜀汉将士的不断倒下而得名“倒湾”。


仓促应战  [cāng cù yìng zhàn]  급히 모집하여 전쟁에 투입되다.
仓忙  [cāngmáng]  황급하다. 부산하다. 바쁘다.


건설배경 建设背景

为依托三国文化资源,打造白马关景区,2007年底,在整合村组资源时,白马关镇将原白马村、七里村、凤鸣村撤并成立了凤雏村。在汶川大地震灾后重建的过程中,罗江县又结合“三国蜀汉文化旅游区”的特点,在凤雏村规划建设了集“文化旅游、拆迁安置、创业就业”为一体的旅游景点——“倒湾古镇”。


새롭게 만든 마을의 모습 古镇新貌

古镇建设占用凤雏村8、9组土地共计80余亩,安置农户107户,333人。被拆迁农户旧房拆迁后,政府按人均35平方米的新房建设面积给予安置补偿,根据现行建房成本折价补偿。被安置农户根据宅基地划分抓阄取得的顺序号后,按照镇政府统一提供的设计图自行修建,并通过倒湾古镇建房业主委员会全体成员和农户代表投票决出农户心中值得信赖和满意的施工队伍进行修建。房屋建设坚持政府统一规划、统一设计、统一建筑风格风貌要求、统一管理、统一完成“三通一平”。


为使安置点与白马关景区旅游资源相协调,安置点建设最终以“迷宫式”徽派布局落成。区域道路宽度从6米—8米,建设布局有“—”字型、L型、H型、T型、四合院等多种布置形式。古镇建设具有浓郁的地方特色,具备旅游价值,反映出历史文化,集休闲,游览,购物、居住为一体的旅游古镇。


古镇农房建设现已完工,基础设施建设亦已完善,10余家商铺纷纷开业。据了解,倒湾开发总投资20多亿元人民币,它与白马关、庞统祠墓、落凤坡、点将台一起,成为四川省三国旅游热线的景点之一。每天都有来自成都、德阳、绵阳等地的游客。

            

한 집 앞을 지나는데

늙어 보이는 여자와 며느리인듯한 여인이 무슨 꽃을 따고 있다.

광주리에...식용한다고 한다.처음 보는 꽃이다.

'찐인화'라고 잘 알아듣지 못했다.

 

金银花  [jīnyínhuā]  금은화. 인동덩굴의 꽃. (=忍冬花) 



팔괘곡


이곳에서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이 팔괘진을 쳐 적군을 막았다는데...

관리되지는 않는듯한데도 입장료가 약간 있다.

시간도 없고 인위적으로 꾸민 억지 유적지라는 생각으로 입장하지 않았다.


이곳이 백마관 여행지의 핵심지역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자연 지질을 보는 것도 그 이유라고 한다.


낙봉파

백마관 관루에서 약 2km 떨어진 이곳에 낙봉파라는 비석을 1989년에 세웠다.


落凤坡

距白马关约2公里的落凤坡,是当年庞统战死沙场的地方,如今是新恢复的古驿道终端,两旁是乡村家

舍,是个守关打埋伏的好地方,难怪庞统会战死在此。落凤坡旁,有当年为庞统而建的真墓,只有简单的维护,据说这是刘备为其亲选的墓地,可府北看南,是一块风水宝地,现有墓碑一块。





봉황이 떨어지는 언덕

여기에서 봉추 방통 사원 선생이 백마에서 떨어졌다.


한 정후 방 봉추 선생 진충처

청나라 동치 7년 1868년에 세웠다.


庞统遇难处


刘备称帝后,追赐庞统为“关内侯”,单谥“靖”,故亦称靖侯,在归葬庞统的地方建祠祭祀。

自刘备为庞统建祠后,庞统祠墓几经兴废。现存祠墓是清康熙四十六年(1708年)重建的。

古往今来,军政要员、文人墨客常来此凭吊忠烈,留下诗文。

南宋诗人陆游《过庞士元墓》是其中比较有名的。



고역도 옆에 낙봉파와 진충처가 있고

20여미터 떨어진 곳에 저와 같이 단이 쌓여 있으며

저 단위에 수목사이로 방통혈분이 있다.


방통혈분


방통혈분


낙성雒城을 공격하려 진군하는 중에 매복에 걸려 방통이 죽었다는데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험준하지는 않다.

혈분에 묻힌 것은 방통이 죽을 때 입고 있던 피묻은 옷이다. 


庞统血坟

越过阻马就行进在这条古驿道上,这条古道上的车辙很深,与众不同的是它只有一条,很明显这是的独轮的鸡公车留下的车辙,深深的车辙雕刻着历史,令人遥想起当年西蜀将士征战的情景,感慨他们的艰辛和智慧。从古驿道前行不远拾级而上就是庞统的“血坟”和“庞统遇难地”附近还有“落凤坡”地名碑。《三国演义》描写的庞统在进围雒城途中,受伏中箭身亡,应该就是此地,但和小说里描写的险峻大相庭径。“血坟”葬的是庞统遇难时穿戴的血衣,车友们纷纷围着坟茔转,据说能保佑人们无病无痛。



坟茔  [fényíng] 1.묘.  2.묘지.

坟무덤 분  1. 무덤 2. 언덕 3. 섬 4. 둑(높은 길을 내려고 쌓은 언덕) 5. 제방(堤防) 6. 크다 7. 커다랗다
茔장사지낼 토,무덤 영  1. 장사지내다(葬事---) a. 무덤, 분묘(墳墓) (영) b. 산소(山所) (영) c. 장지(葬地) (영) d. 매장하다(埋葬--) (영)



다른 인터넷 사진에서는 이 혈분이 민둥이었던 것도 있다.

봉분에 일부러 나무를 심은 것은 아니지만 식물이 자라면 그대로 두는 풍습인가보다.



오정곡


五丁谷:五丁谷位于罗江县城西七里桥,紧邻108国道金牛古道在此穿行而过。“五丁”取自金牛古道广为流传的“五丁开山”的传说,因其建在山凹故取名五丁谷。


백마관 구경을 다 마쳤다. 11시 57분


방통묘와 방통혈분에서 영웅을 추모하며.......

무수한 무명인이 스러졌을 이곳에서 비분하며 인생무상을 읊다가도

다른 지역으로 가야하는 차편을 알아보고 기다리느라 초초하게 된다.


덕양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서 남쪽으로 성도에 좀 더 가까운 곳으로 가야한다.


오정곡 마을을 벗어나 큰 길을 건너 주유소에서 차편을 알아봤다.

라강현에서 오는 버스를 타는 버스 정류장도 바로 주유소 앞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택시가 있으면 타려고 마음먹었다.


12시 7분 택시를 잡았다.

깍투기 중년 둘이 앞뒤로 타고 있다.

뒷자리에는 셋이 타는 꼴이 되어 좁았지만 그냥 의연히 앉아 덕양을 향한다.

한국어로 우리끼리 큰 소리로 떠들면서 대화하고 낄낄 웃으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듯하여  나는 되도록 침묵을 지키려했었다.


12시 25분

북참에 내렸다. 택시비는 30원


북참에서 도강언이라는 고대 수리시설로 가는 버스가 분명히 많이 있는데

매진상황이다.

이럴 때 장거리버스가 모바일로 외국인은 예매가 되지 않아 불편하다.


지금 엉뚱한 곳에서 시간만 낭비할 상황이다.

나는 지금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도강언으로 가야할 최적의 교통편 확보

또 하나는 허기 해결이다.


좌고우면 하듯 마음만 바쁘고 결론을 낼 수 없다.

밥먹다가 엉뚱하게 차를 놓칠 수도 있고

차편 알아보다 성과도 없이 배만 고파 짜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택시 호객은 700원에 성도로 가라한다.

그것도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아~ 15km 남쪽에 있는 남참으로 가면 버스가 있을 것인가?

남참에서 곧 출발하는 차가 있긴하다.

거기 도착할 쯤이면 아마 매진일 것이다.






백마관 - 덕양북터미널 16km
덕양북터미널 - 덕양북터미널 15km
덕양북터미널 - 광한역 17km
광한역 - 몽양신도시 15km
몽양신도시 - 팽주터미널 15km
팽주터미널 - 도강언풍경구 33km



버스 매표원은 나더러 우선 2시에 출발하는 버스로 팽주彭州까지 가볼 것을 권한다.

거기에서는 도강언 가는 차가 더 많을 거라면서......

2인 34원이다.


팽주가면 어떤 상황일지는 모르지만 팽주까지 가기로 표를 예매하니

시간이 널널하다.


점심을 먹는다.컵라면(12원)을 사서 뜨거운 물이 제공되는 공간에 왔다.

화장실이 멀리 바라 보이기는 하지만 악취가 풍기지는 않는다.

시간이 남고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컵라면 국물까지 말끔하게 먹어치웠다.

시간때우는 차원에서.....


드디어 2시에 팽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는 빨리 달리지 않는다.

느릿느릿.가다서다.

해가 져서 도강언 구경을 내일로 미룰지 오늘 볼 수 있을지 마음이 급한이는 오직 나만 있을 따름이다.


백마관에서도 시계가 좋지 않았는데

팽주가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도 역시 그러하다.

성도 가까워지면서 연무가 많다.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 3시경에 광한에 도착한다.

광한에는 삼성퇴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거의 두 시간이 지난 3시 55분에 팽주터미널 밖에서 내리라 한다.

시골도시가 무척 번잡하다.


택시 호객이 다가왔다.가격을 물었다.한편 흥정을 걸면서

한편으로는 터미널 안에 들어가서 도강언가는 차를 알아봤다.

도강언 가는 표가 너무 늦은 시간에 있다.


터미널 매표소 밖으로 나와서 못이기는척 택시기사와 100원에 흥정하였다.

20~30원 깍은듯하다.


4시 15분 택시를 탔다.

안전운행을 한다.제한속도가 70km라고 한다.

곳곳에 카메라가 있어 감제한다고 한다.


5시가 다 되어 도강언풍경구에 내려준다.


<작성일 2019.7.6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