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서울 용산 쟁기념관(2016-09-15 목,추석)

무논골 2016. 9. 16. 22:59

전쟁기념관이란 말이 좀 적절한 표현이 아니란 논란이 있기도 했다.

어떤 이름을 떠올려도 썩 마땅하지는 않다.

정명(正命)이 만사의 기본이라고 했건만 그래서 더 어려운가보다.

근데 사실 요즘은 정명의 시대가 아니고 상품의 시대일 뿐이다.


 추모회랑


국군은 창군이래 대침투작전까지 경찰을 포함하여 17만명이 순국하였고,

한국을 도운 외국군대도 37,645명이 희생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참 멋진 말이다.

그러나 그 뒷배가 있는 말이던가?

한국전쟁 시기 상호 전쟁 지휘부를 알 수 있는 도표이다.


형제의 상

각자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으로 참전한 형제가 전장에서 극적으로 만난 실제 상황을 조형한 것이다.


 

맥아더장군의 나무


 


전쟁기념관 뜰에 조성된 비파형 동검 모양

인터넷 백과사전에 이르길 "~~은 청동기 시대의 칼의 일종으로 만주에서 한반도,랴오닝에 걸쳐 출토되고 있는

동검이다.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10세기 무렵에 랴오닝 지방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한반도에서 출토된 것은 기원전 7세기 전후이다.비파형 동검은 지배계층과 집단의 출현을 상징하는 것으로 고조선과 동호의 표지 유물 가운데 하나로 추측된다.

중국의 동주식동검과는 명백하게 구분되는 문화권을 이루고 있으며 대체로 예맥 계통의 문화권을 표지하는 유물로 이해된다,중국에서는 1949년 이전에 비파형동검이 발견되었지만 그 기원에 대해 알지 못했다.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이 모두 고조선의 영역 혹은 영향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2015년 4월에 중국 길림성 길림시 용담산공원에 갔을 때 "부여의 칼"이라며 커다란 조형물이 있었는데

생각이 난다.


저 칼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인가?

 

 장보고의 활동 범위



남북국 시대를 기술하고 있다.

내 고등학교 시절에는 없던 개념이다.

고구려 멸망후 그 지역에 발해가 건국하고 넓은 지역의 주인이 되었는데 통일신라와 더불어 공존의 시기라는 것이다.




남북국 시대의 영토 

고구려 도읍지 평양조차도 신라의 영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을 관람하고 있을 때 중국인 일행들과 조우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기사를  읽었을까?


전쟁기념관은 그저 한두번 외관만 휙하고 볼 것은 아니고

여러번 와도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전쟁기념관 중앙에 형상한 치우의 상을 촬영하지 못해 하쉽다.

당시에는 치우의 상인지 모르고 지나쳤는데...

치우는 이제 중국인들에게도 자기들의 조상으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민족 재야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으로 인식을 했었는데...


전쟁기념관에서 치우의 상을 내세운 것은 치우가 전쟁이 신이기 때문일까 우리 조상으로 인식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