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2차 중국여행 16/17일차 북경시 공왕부 (2018.5.27 일)

무논골 2018. 7. 1. 10:23

여행도 막바지이다.

몸도 힘들어간다.

공왕부 골목에 들어서니 뭐라도 먹어야했다.

수박 5원어치로 힘을 낸다.


공왕부는 공친왕 혁소奕yi4訴의 왕부이다.

이 멋진 왕부의 역사를 보면 슬픔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청나라가 망하고

많은 유물들이 일본회사로 넘어가고

각 전각은 보인대학이나 정부 기관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수 백만 호의 민간인이 산재하여 살기도 하였던 것이다.




恭王府(Prince kung’s Mansion),位于北京市西城区柳荫街,是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为清代规模最大的一座王府,曾先后作为和珅、永璘的宅邸。1851年恭亲王奕訢成为宅子的主人,恭王府的名称也因此得来。恭王府规模宏大,占地约6万平方米,分为府邸和花园两部分,拥有各式建筑群落30多处,布局讲究,气派非凡。


恭王府历经了清王朝由鼎盛而至衰亡的历史进程,承载了极其丰富的历史文化信息,故有了“一座恭王府,半部清代史”的说法。在周恩来、谷牧和李岚清三代国务院领导人的关心下,恭王府腾退修缮工作历28年完成,使之成为当时中国唯一一座对公众开放的清代王府。

 

清室覆亡后,府邸的产权曾归属辅仁大学,八十年代初的恭王府已成为被8家单位割据、数百住户聚居的大杂院,有200余住户。要修复恭王府,首要任务是搬迁。1988年,恭王府花园对外开放,2008年恭王府完成府邸修缮工程后,全面对外开放。


恭王府位于北京的风水宝地什刹海地区,占地6万多平方米,有“99间半”之称的后罩楼拦腰将之隔为府邸和花园,府邸堂皇庄重,花园优美繁华。在王府、贝勒府扎堆的前后海,恭王府以其富丽而被称作“城中第一佳山水”,更因其堪比故宫的府邸建制而声名显赫。 


공친왕 奕訢는 도광제의 6남이며 함풍제의 동생이다.

청나라 말기 양무파의 거두이고 중요한 정치인이다.

至于说恭亲王奕訢,那更是中国近代史上最重要的政治人物之一,他参与了第二次鸦片战争以及其后(1853-1898年之间)的几乎全部重大政治活动,“辛酉政变”时,就是他把慈禧扶上了“垂帘听政”的宝座……毫不夸张地说,如果没有奕訢,整部中国近代史,乃至后来的中国历史就会改写。
咸丰元年,即1851年,清末重要政治人物恭亲王奕䜣成为这所宅子的第三代主人,改名恭王府。“一座恭王府,半部清朝史”是历史地理学家侯仁之对恭王府的评价。民国初年,这座王府被恭亲王的孙子溥伟以40万块大洋卖给教会,后由辅仁大学用108根金条赎回,并用作女生学堂。新中国成立以后,王府曾被公安部宿舍、风机厂、音乐学院等多家单位使用过 [4]  。


북경사범대학과 합쳐진 보인대학은 1925년 창립되었고,

이 공왕부를 교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천주교회당으로도 사용되었다.


아래의 각 전각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

두궁문-이궁문-은안전-가락당으로 연결된다만......



恭王府分中东西三路,分别由多个四合院组成,后为长160米的二层后罩楼。恭王府历经了清王朝由鼎盛而至衰亡的历史进程,承载了极其丰富的历史文化信息,故有了“一座恭王府,半部清代史”的说法。


恭王府由府邸和花园两部分组成,府邸不仅宽大,而且建筑也是最高规制。明显的标志是门脸和房屋数量。亲王府有门脸五间,正殿七间,后殿五间,后寝七间,左右有配殿。低于亲王等级的王公府邸决不能多于这些数字。房屋的形式、屋瓦的颜色也是不能逾制的。恭王府的中、东、西三路各有三个院落,其中每一路的后两个院子是人们要游览的主要区域。   





그림 전시회가 있다.

그 중 하나를 사진으로 남긴다.

전시회의 주제는 중국정신,중국 꿈이었다.


府邸建筑分东、中、西三路,每路由南自北都是以严格的中轴线贯穿着的多进四合院落组成。


中路最主要的建筑是银安殿和嘉乐堂,殿堂屋顶采用绿琉璃瓦,显示了中路的威严气派,同时也是亲王身份的体现。

东路的前院正房名为多福轩,厅前有一架长了两百多年的藤萝,长势甚好,在京城极为罕见。

东路的后进院落正房名为“乐道堂”,是当年恭亲王奕欣的起居处。

西路的四合院落较为小巧精致,主体建筑为葆光室和锡晋斋。

精品之作当属高大气派的锡晋斋,大厅内有雕饰精美的楠木隔段,为和珅仿紫禁城宁寿宫式样(此为和珅僭侈逾制,是其被赐死的“二十大罪”之一)。

府邸最深处横有一座两层的后罩楼,东西长达156米,后墙共开88扇窗户,内有108间房,俗称“99间半”,取道教“届满即盈”之意。   








 

 호심정湖心亭


오랫동안 이 호변에 앉아 쉬었다.


징회힐수澄懷擷秀

擷 딸 힐..캘 힐 xie2


이근처에서 복자비福字碑를 봤어야하는데....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갔다. 



복청蝠廳 

원명은 林書屋 또는 寒玉堂

박쥐蝙bian蝠fu2 모습이라고 별명이 복청이다.

근데 내 눈애는 박쥐가 보이지 않는다.




가산假山

 


일단의 여인들이 저마다 멋지게 모습을 잡는다.


감독도 있고...이들의 정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연로한듯한데도 당당한 모습이다.



등 뒤로 보이는 정원이 花園이고

앞을 보는 곳이 부저府邸이다.


이렇게 하여 공왕부 관람도 끝.


이제는 왕부정 거리 들렀다가 숙소로 복귀하면 이번 여행은 정말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지하철 타는 데 까지 인력거를 이용할 심산으로 물어나 봤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고

어차피 정해진 시간은 인력거를 타고 골목을 누벼야 본전을 뽑는지라...

시간을 그렇게 쓸 수 없는 우리는 또 걷기로 했다.


힘을 보충하고 걷자며 찐한 요구르트酸牛奶 3개를 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쉬면서 먹었다.

나이든 할머니 주인은 인심좋게 우리를 바라본다.


하화시방荷花市坊


공왕부를 가면서 지나쳤던 곳인데

공왕부 구경하고 나오면서는 살짝 시간을 갖고 들렀다.


사람도 많고 거리도 깨끗하다.


 




아마 여길 십찰해十刹海라 부르는 곳일 것이다.


아내가 파노라마로 잡은 사진이다.

높은 나무가 있는 배경도 한 컷에 나오는 기술이다.


시간은 빨라지고 있다.

왕부정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17:52

또 군것질이다.옥수수 3원


버스에서 정거장을 지나쳤다.

힘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인데...


다시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잡기는 애매한 곳이고...

어차피 구경왔으니 걷기로 한다.


왼쪽에 동단東單공원을 두고 걷다가 모퉁이에서 죄회전하니

중화인민공화국 상무부가 나온다.

상무부 앞에 자기들의 공화국을 위해 보초서고 있는 사람들이 자뭇 경건해보인다.

 

물어물어 오다보니 왕부정이라는 지명이 붙은 건물을 만난다.


서점 앞에서 셀카

이곳이 내 성격에 별로라는 것은 자명할 것이나 구태여 온 이유가 있다.

2003년 7월 아들과 딸을 대동하여 여기 왔었는데...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아내에게도 그 추억의 공간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국제도시의 관광지답게 외국인들...특히 서양인들이 참 많다.

약 1.6km 거리

王府井大街,南起东长安街,北至中国美术馆,全长约1600米,是北京最有名的商业街。王府井的日用百货、五金电料、服装鞋帽、珠宝钻石、金银首饰等,琳琅满目,商品进销量极大,是号称“日进斗金”的寸金之地。


 

먹자골목에 들어선다.


하필 떡볶기를 먹는다 한다.10원

맛이 그맛일리 없지


전갈이다.


서있는 것이 살아 있는 전갈이다.구태여 이걸 먹겠다고?

나는 도저히 먹을 수 없다하니 아내도 눕혀있는 튀겨있는 전갈을 시킨다.한꼬치에 25원....터무니 없이 비싸다는 느낌

서백파 여관에서 나를 물었던 곤충도 전갈이라는 걸 알았다.

이거랑 같은 모습이거든


나는 그래도 익숙한 맥주를 편히 마신다.

물 5원,소내장(한국으로 치면 순대비슷한 역할) 20원,맥주 15원

한방울의 힘까지 여행하는데 다 쏟는다.


<왕부정 거리의 유래>

명나라 성조 때부터 이곳에 10개의 왕부王府가 조성되면서 십왕부가라고 불리다가 1915년 북양정부 내정부가 지도를 제작하면서 왕부정이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王府井大街定名于1915年。


辽、金时代,王府井只是一个不出名的村落,到了忽必烈定都北京之后,这个小村落开始热闹了起来,并有了“丁字街”的称呼。


明成祖时,在这一带建造了十个王府,便改称十王府或者十王府街。明朝灭亡了以后,王府也随之荒废了,后来,街上只有八座王府,人们便称它为王府街。


清光绪、宣统年间,这里开始繁华,街的两旁出现了许多摊贩和店铺,还有一个“官厅”,成为当地有名的一个市区。


1915年,北洋政府内政部绘制《北京详图》时,就把这条街分成三段:北街称王府大街,中段称八面槽,南段由于有一眼甜水井(井址在大街的西侧,现今的大甜水井胡同)而称王府井大街了。后来,逐渐用王府井称呼整条街了。

  

지하철 타러 가다가 만난 유적지 앞에서 한 컷...


王府井古人类文化遗址博物馆座落在北京东方广场地下发掘出的最早的古人类遗址,再现2万5千年前斑鹿跳跃、鸵鸟欢腾、望山听水、狩猎生息景象,展示“北京人”狩猎、烧火、制造工具的痕迹。在博物馆300多平方米的展厅里,将陈列在原址发掘出土的石砧、石锤、石核、石片。参与展陈的还将有原始牛、斑鹿、鸵鸟、鱼类等古生物的骨骼及2万多年前人类制成的骨铲、骨片等工具。 参观者还能从这里看到更新世晚期人类用火的遗物和遗迹。展览将配以大量的图表和照片,在壁画、雕塑的映衬下生动地展示出2万5千年前古人类在今天王府井地区狩猎、做饭、休息、制造工具的生活场景。展馆还精心为小参观者准备了电脑触摸屏等动手型的参观项目。这一遗址是继周口店北京猿人之后,在北京地区远古人类遗存的又一重大发现。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