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에서 아침일찍부터 한바탕 수선하였지만
우리는 느긋했다.
우리도 그때 그들을 따라 나섰어야하는데...
여관주인이 차를 태워준다.
그러나 그곳은 개구멍 비슷한 곳이었다.
입장료 40원씩
물 5원
케이블카의 유혹이 있었지만 우리는 오를 때는 걸어가자고 했다.
만리장성 빡시게 걸었다.
사진이 넘칠 줄 알았는데 막상 사진이 별로 없다.
이번 팔달령 여행은 나에겐 두번 째이다.
15년전, 2003년 7월 21일 월요일엔 아들과 딸 동행
남루와 북루가 있는데 난 북루를 택했다.
일반인이 걸을 수 있는 끝까지 북루 다 돌았다.
1루~12루
위 사진에서 케이블카 시작하는 곳 왼쪽 근처에 여관 주인차를 타고 와서 케이블카 승차장을 거쳐
사진상으로 강처럼 보이는 주차장을 따라 걷다가
北門鎖약으로 들어와서 성에 올랐다.
하산은 북 12루까지 가서
거기서 하산하여 버스를 탔다.
남루길을 바라본다.
광장이 있는 곳에서 저쪽이 남루길이다.
八达岭长城,位于北京市延庆区军都山关沟古道北口。是中国古代伟大的防御工程万里长城的重要组成部分,是明长城的一个隘口。八达岭长城为居庸关的重要前哨,古称“居庸之险不在关而在八达岭”。
明长城的八达岭段被称作“玉关天堑”,为明代居庸关八景之一。八达岭长城是明长城向游人开放最早的地段,八达岭景区以八达岭长城为主,兴建了八达岭饭店和由江泽民主席亲笔题名的中国长城博物馆等功能齐全的现代化旅游服务设施。
八达岭景区是全国文明风景旅游区示范点,以其宏伟的景观、完善的设施和深厚的文化历史内涵而著称于世,是举世闻名的旅游胜地。
2016年7月29日开始,八达岭长城向现役军人、残疾军人免收门票。
古代修建
据《史记》记载和文物工作者普查,都证明八达岭一带在战国时期筑有长城,而今仍见残墙、墩台遗存,其走向,与今明长城大体一致汉习记载:曾设军都、居庸两座关城。北魏《水经注》说:“居庸关在居庸界,故关名也,南则绝谷,垒石为关址,崇墉峻壁,非轻功可举……其水历山南,迳军都界……”因此,有专家认为汉置居庸关,关址在八达岭。
一千五百年前的北魏,曾在八达岭一带修筑长城。据《魏书世祖本纪》记载,北魏拓跋氏太平真君七年(446年),在国都平城(今大同)以北,修筑长城,名叫“畿上塞围”,东起上谷军都山(即八达岭一带),西至黄河岸。后来到北齐王朝天保六年(555年),又修筑长城,西起大同,经军都山东去,把长城延长到了海边。
明朝重筑
八达岭长城,建于明朝弘治十八年(1505年),对八达岭长城进行了长达八十余年的修建,共1300多里。并将抗倭名将戚继光调来北方,指挥长城防务,是中国古代伟大的防御工程万里长城的一部分。
八达岭长城位于北京市延庆区军都山关沟古道北口。经度115°59′52''-115°59′31''E,纬度40°21′9''N-40°21′15''N。史称天下九塞之一,是万里长城的精华,在明长城中,独具代表性。该段长城地势险峻,居高临下,是明代重要的军事关隘和首都北京的重要屏障。八达岭地理环境优越,自古以来就是通往山西、内蒙、张家口的交通要道。
八达岭长城其关城为东窄西宽的梯形,建于明弘治十八年 ( 1505年),嘉靖、万历年间曾修葺。关城有东西二门东门额题“居庸外镇”,刻于嘉靖十八年(1539年);西门额题“北门锁钥”,刻于万历十年(1582年)。两门均为砖石结构,券洞上为平台,台之南北各有通道,连接关城城墙,台上四周砌垛口。前后共建墩台1316座。
八达岭长城典型地表现了万里长城雄伟险峻的风貌。作为北京的屏障,这里山峦重叠,形势险要。气势极其磅礴的城墙南北盘旋延伸于群峦峻岭之中,视野所及,不见尽头。依山势向两侧展开的长城雄峙危崖,陡壁悬崖上古人所书的"天险"二字,确切的概括了八达岭位置的军事重要性。
八达岭长城共有敌楼43座,形制相仿又各具特色,其中有巡逻放哨用的墙台,也有上、下两层的敌台,上层周围设垛口和射洞,下层为士兵住宿和存放物资的房舍。台堡的距离根据山势和地形而设。全部为砖石结构,第一层和第二层顶部做成许多拱券,有梯道上下。两层均有射击口、瞭望口和吐水嘴,楼上有垛口,台突出墙外,收墙于台内。已修复南四楼、北四楼及北五楼等16座敌楼。
①南、北四楼。位于关城南、北两峰上,南、北各有4座敌楼,是最早开放游览的地段。两峰相对高差大、坡度陡,敌楼由低处向高处依次峙立,南北遥相呼应。从关城到南四楼,城墙长685.8米,高度上升127米,平均每6米即上升1米。三楼与四楼之间,山势陡峭,城墙逶迤约500米,最险要处坡度达70度。从关城到北四楼,城墙长767.5米,高度上升155米,比南峰距离长,但较南峰平缓。过第三楼呈马鞍形,先下到鞍座部再往上登第四楼,此段有100余级台阶。这8座敌楼与敌楼之间的长城于20世纪50年代修复。北峰4座敌楼本为两层,只恢复了3座,第三座的上层未恢复;南峰第一、二座的上层也未恢复,南三楼上原有铺舍,柱基依在,未复原。每座楼原来都有记载修筑经过的题名石碑,已无存,只留碑座。有的敌楼券门的门枢臼和放门杠的孔眼依稀可见。
②北五楼。券洞最多的敌楼。楼长9.25米、宽9.34米,上下两层。从券门进入一层,内有许多券洞,每面4行砖垛,每垛之间都用券顶拱连,共30余个券洞托起第二层的地面。
③北六楼。面积最大的敌楼。楼长12.6米、宽8.5米,底层面积约100平方米。长面7行砖垛,宽面4行,垛顶发券,形成四方廊形券道,中间留空,成为长方形天井。可从天井登梯上到楼顶。
④北八楼。海拔888米,为八达岭长城海拔最高的敌楼,是俯瞰长城最佳之处,故又名观日台。楼内两层,有梯可上。一层迎敌面有6个箭窗,其数目之多居敌楼之首。关城平台到北八楼长城相距1500余米,相对高度228米。
⑤建有铺舍的敌楼。新修复的敌楼中有两座建有铺舍。一是北十楼,一是南六楼。铺舍是建在二层楼上的小屋,硬山顶,雕窗红柱。
墩台
又称烽火台。八达岭长城外的东、西山上,各有一座墩台。墩台高均五丈,周围建小城,高一丈五尺,上设悬楼垒木,下设壕堑吊桥,外设塌窖陷阱;门道上置水柜,冬日盛冰、夏日盛水;不修台阶,以绳梯上下;每台有火铳、火炮2门,有守卒10人,由附近城堡驻军防守,与城堡组成一个纵深防御网。明成化二年(1466年)规定举烽办法,即敌人来百人以上一烽一炮;五百人以上二烽二炮;千人以上三烽三炮;五千人以上四烽四炮;万人以上五烽五炮。
城台
又称墙台。指稍高出长城墙顶,四周砌有堞墙、垛口、射洞等平台型建筑。此是古代士兵们的巡逻放哨之处,以及发生战争时进行据守防御的地方。例如八达岭关城门顶的平台,即为城台。
战台
战台大炮原名“捷胜飞空灭虏安边发熉神炮” ,修筑于长城沿线的交通要道或地势险要之处,为碉堡式建筑,有一、二、三层之分,规模大小不 一。内可储兵器、弹药及其他战略物资,作用大于敌楼。据明代刘效祖所著《四镇三关志》记载,在戚继光的规划和督办下,从山海关至北京的长城沿线,共筑敌台、战台一千二百座(原计划要建三千座)。当遇战争爆发之时,在敌台上可“从上临下,用火器、佛郎机、子母炮更番击打”,“器用尽以火炮代之”。
一个战台一般需30人守台、30人守垛,分6伍,备火药300斤。此外,在战台上还存有神箭、铁棍,以及数以千计的大小石块,同时还储备一个月的口粮和用水等。这种“制作久而弥精,心思熟而愈巧”的战台设施,既可出击,又可据守,并可与长城上的城台、敌台(敌楼)等军事设施密切配合,以组成密集的火力网,大大地增强作战威力,有效地阻击敌骑进攻,在军事防御上起着十分重要的战略战术作用。
북루길
오르락 내리락
망루
케이블카 유혹을 떨치길 잘 했다.
아내도 맞장구친다.
어느 곳은 정말 급경사이다.
12루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내려가다 다시 오르고~
12루쪽은 점점 사람물결이 옅어진다.
외롭게 굽이굽이
하산하여 오이 2원
앞치마 16원씩 5벌
점심으로 고기만 먹었다.ㅋㅋ
오리 닭 각 10원씩이다.
점심이 설펐는지 다시 군것질 물 3원 오이 5원 50전
거용관으로 넘어가면 된다.
877,879번이 가는 걸로 되어 있는데 쉽지는 않았다.
뙤악볕에서 한참동안 줄을 서 있어야 했다.
버스가 13릉으로도 연결된다.
거의 20분을 기다려 12시 20분에 2원씩 주고 버스를 탔다.
거용관까지 가는 버스밖 풍경이 녹색풍경 참 좋다.
거리는 십 여 킬로인데 시간으로는 상당히 달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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