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동안 읽었던 "중용" 표지들이다.
그때는 문자 해석에 급급하여 슬슬 읽히던 중용 첫장이
최근에 갑자기 내 머리를 누른다.
이리저리 강구해봐도 어렵다.졸립다.
지난 주말 중용을 꿈 속에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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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중용 책이 하나 더 있다.
1983년에 나온 대학중용 홍신출판사 이가원 선생 감수이다.
주자 주에 충실하여 번역하고 해설한 책이다.
세로쓰기하였지만 지금 봐도 참 잘 쓴 책이란 생각이다.
내가 그 시절에 그런 책에 연필로 줄쳐가며 읽었다니......
2020.11.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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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에 간행한 언해 사서 유래
중국 성현의 말씀을 조선문으로 대강 구두를 해석한 언해가 있었으나 자세히 해석한 것은 아니었다.
한문을 배울 때 모르는 것을 물어도 다 제 각각인 것은 한문을 아는 사람도 글자에 구속되어 서로 다르게 곡해함이라.
성현의 말씀을 한문을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게 하고자 수 십 년간 생각하였다.
청조의 사고집성을 참고하고 주자집주 본지를 근본하여 분석하여 ~~,일본 번역~, 고증~~
조선문으로 역해하는 ~~ 1932년 임신하지 이범규
1932년 간행한 언해중용장구대전
성백효 현토번역한 중용장구
성백효 현토번역한 중용장구
전통적인 주자 주석의 중용을 번역한 아주 성실한 책이다.
1995년 1월 4일(수) 도올서원에서 도올 선생님 말씀(통나무 출판사)
1995년 1월 4일(수) 도올서원에서 도올 선생님 말씀(통나무 출판사)
도올 김용옥 중용,인간의 맛,통나무,2011년
도올 김용옥 중용,인간의 맛,통나무,2011년
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脩道之謂敎라.
하늘이 명한 것이 성이교
성을 따르는 것이 도요
도를 닦는 것이 교라.
하늘은 무엇인가?
명한 것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성이란 무엇인가?
성을 따른 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도란 무엇인가?
도를 닦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교라는 게 어쩟다는 건가?
1. 1932년 언해
하늘이 명하신 것을 일온 성이요,성을 쫒음을 일온 도요,도를 닦음을 일온 교니라.
자사 말씀하시되,
학문의 이치는 性과 命보다 더 精함이 없고
功은 道와 敎보다 더 큼이 없으니
세상이 또한 이른바 성과 도와 교가 아니냐.
천하의 사람이 성품을 두지 아니함이 없으니
성품이 바깥으로 흘러들어옴이 아니라
하늘이 사람을 내심에 이미 기운을 주어서 써 형용을 이루고
또 반드시 이치를 태워주어서 성품을 이루거든
사람이 이것을 받아서 仁과 義와 禮와 智의 德을 삼으니
이것이 성품이 하늘에 근원함이니
이에 하늘이 명하심이라 이름이라.
천하의 일이 도가 있지 아니함이 없으니
도는 억지로 함이 아니라 성품 가운데 일만 이치가 다 갖추어서
사람이 각각 그 성품의 자연함을 쫓으면 날마다 쓰는 사물 사이에
스스로 지극히 마땅하여 바꾸지 못할 이치가 있으니
이것이 도가 성품에 뿔리함이니 이에 성품을 거느린 것이라 이름이라.
만일 성인이 법을 세워서 천하를 인도하면 가르침이 있나니
가르치는 것이 사람에게 본래 없는 것으로써 억지로 함이 아니라
대개 사람의 성품과 도가 비록 같으나 기품이 혹 다른지라 능히 다 도에 합하지 못하니
성인이 사람의 마땅히 행할 바의 도를 인하여 品節(품수를 구별하고 절차를 정함)하여
천하에 법을 하사 지나가고 불급한 자로 하여금 다 취하여 절충하게 하니
이것이 교가 도에 인함이니 이에 도를 닦음을 이름이라.
이 性과 道와 敎의 이름한 것이 그 근본이 다 하늘에서 나온 것이니 실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2. 대학중용집주 성백효 현토완역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이라 이르고
성을 따름을 도라 이르고
도를 품절해 놓음을 교라 이른다.
성은 바로 理이다.
하늘이 음양 오행으로 만물을 화생함에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다.이에 사람과 물건이 태어남에 각기 부여 받은 바의 이를 얻음으로 인하여
健順 五常의 덕을 삼으니 이른바 性이라는 것이다.
사람과 물건이 각기 그 성의 자연을 따르면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각기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도라는 것이다.
성과 도가 비록 같으나 기품이 혹 다르기 때문에 과하고 불급한 차이가 없지 못하다.
이러므로 성인이 사람과 물건이 마당히 행하여야 할 것을 인하여 품절(등급과 제한)하여
천하에 법이 되게 하시니 이것을 일러 교라 하니 예악 형정과 같은 등속이 이것이다.
사람이 자기 몸에 성이 있음을 알되 하늘에서 나온 것은 알지 못하고
일에 도가 있음은 알되 성에서 말이암음은 알지 못하고
성인의 가르침이 있음은 알되 나의 고유한 것을 인하여 만들었음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사께서 여기에 첫 번째로 이것을 발명하셨으니,
동자(동중서)의 이른바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다.'는 것도 또한 이러한 뜻이다.
3. 윤홍식,홍익학당 대표,중용,인간의 길 유투브 강의
중용을 소주역이라 한다.주역 계사전과 닮았다.
한치의 오차 없이 진리 그대로 간다.
균형.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열반
空 `=. 中 팔정도 육바라밀
性 참나.의식성.프로그래밍.
음양이 순환,음양이 진동
火여름 禮
---------木봄仁------- 土성실信----------金가을義------------
水겨울智
태극은 음양을 표한 것이다.
음양
天 춘하추동
地 금목수화토
人 인의예지신
愼獨 깨어나라 모른다 中心
사단 칠정
희노 락애
4. 후즈티비 도울 김용옥 중용6강 2020.8.5 아침 8시
하늘이 명한다는 게 뭐냐?
주자는 도덕적 핵심이라고 본다.성이라는 것은 천리이다.
상당한 위험한 해석이다.
이것만 가지고 해석을 해야하지....
이게 본성인지 감성인지 어떻게 아는가?
여기에 나와 있는 것은 없다.
문장으로 본다면
천명이 아닌가?
하늘이란 중국에서 은나라 때까지만 해도 상제였다.
유대교적인 개념이 있었다.
帝 di ti deus랑 다 통한다.고대로 올라갈수록 인격신적인 개념이 있다.
민주적인 사회일수록 비민주적인 명령체계가 작동해야 민주가 진행된다.
구심점을 세웠는데 흉악하기도 하고 불안정하니
하느님을 세워서 중심으로 삼는다.天子라는 개념
주나라에 들어와서 역성 혁명이 일어난다.
은나라 사람들은 너무 술을 마셨다.제사를 지내야했으니...
주나라 사람들은 은나라를 타도하면서 인간의 의지로서 나라를 유지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인격신으로서 하느님을 폐기한다.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야만 다스릴 수 있는 보장이 기반한다.
그러나 제사는 지낸다.하느님한테 복을 빌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한테 인간은 간섭하지 말라는 떡깞을 주는 차원이다.기쁘게 해야한다.
귀신을 경이원지.
걸주의 세계로 다시 가면 안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 자연,천지의 줄임말처럼 천이 된다.
인격신이 탈색하면 우주전체가 된다.
제사의 의미 : 귀신이 화를 끼치면 안되니까 제사지내준다.
하늘이 명한다.명령은 교섭이다.
과거 현재 미래 시제가 없다.
명이란 것은 영원한 현재이다.
현재진행형인 한에 있어서는 성도 현재진행형이다.
고정적인 성이 아니란 말이다.
성이란 것은 주자처럼 도덕적으로 규정해버리면 안된다.
맹자는 성이란 선의 덩어리로 본다.
고자告子는 生之謂性이라 했다.
도덕적인 핵이 있는 게 아니라 태어나서 생겨난 그대로가 성이다.
생겨난 그대로가 본능이라면 본능이 나쁜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본능은 정말 위대한 것이다.본능처럼 절도 있는 게 없다.
사자가 공격해서 먹는 것은 우리가 쌀밥먹는 거랑 같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본능이라는 것은 문명에서 생겨난
후천적으로 습득되어진 고질병이 과욕의 형태로 유전되는 것이다.
자사-맹자의 정통을 이었다는 주자의 주장은 송나라 도학의
개소리다.오히려 고자 ~
라깡의 타나토스 죽음에 돌진
서구에서는 문명과 자연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없다.
루쏘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은 야만으로 보기도 한다.
하늘이 명하는 것이 성이다.
규정되지 않는다.인간의 성에 국한되느냐? 그건 아니다.
그 성을 따르는 것이 그 존재가 걸어가는 길이다.
삶은 그 길이다.
그 길이라는 것은 닦지 않으면 덮여서 없어진다.
그 길을 끊임없이 닦는 것을 인간의 우리의 교육이라고 한다.
교라는 것은 완벽한 문명의 세계이고
성이라는 것은 자연의 세계이고
교와 성 사이에 걸쳐 있는 것이 도이다.dao.
이렇게 해석했다고 해서 다 이해가 되었느냐?
정말 난해하다.
이 3자의 관계를 잘 강구해 들어가야 한다.
<내 생각>
중용1장 첫구절이 누구한테나 어려운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만 해석할 줄 안다.
주자 해석을 주종으로 삼는 거의 대부분 관점은 하늘이 인간에게 품부한 명령이
오상이라고 주장하고 그 오상을 잘 지키는 것이 도요,도에서 어긋나지 않게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고 가르친다.
도올 선생은 하늘이 인간에게 품부한 명령 자체가 과거형으로서 고정된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니고
늘 현재형이라고 말한다.현재 명령하고 있는 하늘의 성이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이거나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멋지게 생활하는 것이다.
송나라 때 주자 장구 및 집주를 보면 숨이 막히고
도올 선생 해석을 보면 규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손에 잡히는 아무것도 없어져버린다.
나는 주자 선생이 주장한 시대적 배경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도올 선생이 해석하고자 하는 의지도 이해할 수 있다.
본질적 문제를 제기하다가 시간을 많이 지체하였는데
내 수준에 맞게
이제 글자따라 해석하는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 공부를 진행해보려한다.
2020.8.8 토 오후 2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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