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영화 수성못을 보고 나서 정릉 달리기(2018.4.22 일)

무논골 2018. 4. 22. 16:58

건강검진을 해보니 음주를 멀리하고 운동을 가까이 하라는 뜻인데

그 반대로 살고 있다.


오랫만에 벼르고 달렸다.

뒷산으로 올라갔고...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갔다.


계획하지 않은 영화관람이다.

덕구

소공녀

수성못

이중에 가장 가까운 시간에 상영되는 것이 수성못이었기에 수성못을 봤을뿐이다.


수성못 포스터

수성못은 대구시 수성구에 있는 유원지 이름이다.


유지영 감독과 주연배우 이세영, 김현준, 남태부


영화에서는 중년 남자가 오리배를 타고 저 섬 근처에서 자살사고가 난다.

그 남자는 이곳 수성못에서 20년전 지금의 아내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그 아내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자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중소기업 사장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파카스탄 직원과 바람이 났다는 것이다.


주인공 희정 역의 이세영이 아르바이트 하는 사무실

사무실 너머 오리배가 보인다.

달려도 이 수성못을 벗어날 길이 없는 오리배

아무리 애써도 서울로 편입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좌절뿐인 청춘

희정은 대구를 벗어나 서울에서 인생을 도약하고자 편입시험을 치루는데

편입시험을 보고나서 어이없게도 지하철에서 강도를 만나 폭행당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영화 내내 어른 거렸기 때문인데....

그 영화적 장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늘 그렇듯 영화를 영화 자체로 이해를 못하고

다른 사람이 설명한 글을 봐야 이해를 하곤한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영화라고 하는데...

그들의 시각으로 정리한 몇 줄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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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 좀 치열하게 살아라 치열하게!!!"


지긋지긋한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을 꿈꾸며 편입시험 준비 중인 희정.

수성못의 오리배 매표소에서 일을 하며 서울 생활을 위한 학비를 마련 중이다.

어느 날, 희정이 잠깐 잠든 사이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 (2017년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24살 여자, 대구토박이 오희정은 지긋지긋한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편입 시험 준비 중이다.

그녀는 수성못의 오리배 매표소에서 일을 하며 서울 생활을 위한 학비를 마련 중인데,

어느 날 잠깐 잠든 사이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고, 희정은 본의 아니게 방관하게 된다.

그날 밤 희정은 몰래 구명조끼를 놓아 두러 사건 현장에 갔다가 차영목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다.

영목과 엮이게 된 이후 희정의 생활은 점차 엉망이 되어 간다.
(2017년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영화를 보고 나서

아파트에 의해 섬아닌 섬이 되어버린 만법선원을 구경하였다.

영화보로 올때마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는 절이 안쓰러웠는데

오늘 직접 가보았다.여유있는 발걸음으로

절에 대한 연원을 알 수 없었지만 삼성각도 있고 대웅전도 제법 괜찮아보였다.


만법선원을 나와서 북악스카이웨이로 발걸음을 옮긴다.

흥천사가 나온다.

불사가 크게 일고 있다.


골목골목 돌고돌아

정릉으로 갔다.


신덕왕후의 능이름이 정릉이다.

이곳 정릉의 옛이름은 강씨묘.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이들 일행과 함께 해설을 들으니

그냥 무생물에서 유정한 이야기가 느껴진다.

  

핸드폰 없이 운동 나왔기에 아이의 아버지에게 요청하여 사진을 찍고 문자로 받은 사진이다.


애초에 지금의 중구 정동에 조성된 능이 이곳으로 올때 가져온 석물이 세가지라고 한다.


장명등 혼유석 소전대


묘 앞에 석등을 장명등이라고 하는데 조선왕조 능중에서 가장 큰 장명등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에서 첫 조성된 능으로서 고려시대 공민왕의 능 조성에 참여한 김사행이

고려 묘제를 따라 조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묘 앞에 상석은 혼유석이라고 한다.혼이 노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일반 묘에서는 제수를 진설하는 상석이 되지만 왕릉에서는 정자각(丁字閣)에 제수를 진설하기 때문에

이 돌판의 역할은 혼유석이 되는 것이다.혼유석 아래에 받침돌이 고석(鼓石)이다.원래 5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곳으로 두 개만 왔으니 애초 혼유석은 얼마나 넓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소전대는 축문을 태우는 곳이다.정자각 왼쪽에 있는데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다.


정릉에는 릉을 둘러싼 병풍석이 없는데 광통교 어래에 석물로 사용되었다니 병풍석과 우석이 각각 12개씩이었을테고

실측해보면 애초 정릉의 둘레는 48m나 된다고 설명을 해주신다.


묘 앞에는 문인석이 있는데 무인석은 없다.

무인석이 없는 것은 조선왕조에서 대체적으로 추존 왕릉이 무인석이 없다는 것이다.

정비였지만 현종 때 송시열 상소에 의해 복원된 정릉은 경종의 예를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의 경처로서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하고 대단한 권력을 행사하였지만 급사하면서

향처 소생 태종에 의해 위상이 철저히 짓밟혔으니

인생만사 부운이라...


빗길에 정릉 뒷산을 돌다가 담장 너머 북악스카이웨이도 달렸다.

달린다.

달려야 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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