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 이야기

전주향교全州鄕校(2014-06-13 금)

무논골 2014. 6. 13. 18:25

전주 한벽당(寒碧堂) 근처에서 점심으로 오모가리를 먹기 위해

약속을 하고 와보니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근처 전주향교를 들렀다.

 

전주향교는 내가 보아온 향교 중에 문화가 제일 많이 남아 있는

멋진 향교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향교 중에 제일 상위에 있다고 할

서울 명륜동의 성균관 보다 더 옛향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다고 생각한다.

 

 

 

전주향교의 정문 격인 누각 만화루(萬化樓)

 

 

만화루 뒷모습

누각까지 올라갈 수 있게 개방되어 있었다.

 

 

대성전(大成殿)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일월문

 

 

대성전을 멀리서 촬영

 

대성전 앞 삼강오륜송

 

 

대성전 내부.

만세종사이신 공자를 정위로 모시고,안자 증자 자사 맹자를 중앙에 그외 18현을 동서벽에 모셨다.

대성전 앞 동무,서무에 23위를 설위하였다.

 

 

대성전 처마에서 일월문과 만화루 쪽을 되돌아본 풍경

나랑 같이 들어왔던 젊은 신사가 서둘러 되짚어 나가고 있다.

저멀리 보이는 산은 남고산성인가싶네. 

 

명륜당

 

명륜당 서고

 

명륜당 앞 서재 앞에 앉아 계시는 유림들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 봉심? 뭣인가를 올리는 것에 동원되시었다고 한다.

이거저거 몇 가지 질문에 유림 특유의 진지함과 친절하게 답을 주신다.

 

서재를 경사재라고 이름지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이 가득하고 한 유림께서 뭣인가 골똘히 열람하신다.

 

경사재라고 적혀 있는 글을 간재 선생이 썼다니!!!

간재 전우(1847~1922) 선생은 전주 태생으로 율곡 이이의 학설을 이으셨다.

경술국치 이후 계화도 등으로 숨어 들어가서 제자를 양성한 걸로 되어있다.  

 

명륜당으로 들어가는 길

짧은 반바지와 딱들어붙은 바지를 입고 가는 저들이 명륜을 알기나 알까?

하기사 요새의 진정한 명륜은 저런 외양을 가지고 따질 것은 아니겠지...

 

 

 

팔덕문

향교의 상시 출입문 격이다.

 

풍락헌

사또의 동헌이라고 한다.역사적으로 논구하지 못했다.

전부부윤의 동헌인지 전라 관찰사의 동헌인지.

 

전주향교는

1354년 고려 공민왕 3년에 현 경기전 북쪽 자리에 건립되었다가

1410년 조선 태조의 영안을 봉안할 경기전을 건립하게 됨에 따라 태종 10년 현 신흥학교 자리로 이전

1603년 성내에서 거리가 있고 전주천을 월천해야 한다는 불편함과 몇 가지 이유로 현 위치로 재 이전

 

조선시대 초에만 하더라도 성리학이 굳건히 자리잡지 않거나

조선후기처럼 성리학에 매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변방의 임금 영정을 봉안하겠다고 불천위 공자 위패를 이리 저리 옮긴다는 것은 조선후기

고리타분 교조적인 유생들 관점으로는 용납될 수 없었을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