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7월말에 적은 글에 당시 카카오톡으로 남겼던 것을 여기에 한테 모아
궁서체로 표시합니다.(2016.8.6 토)
1일차 2012.7.10(화)
오전에 칭따오 공항에 도착하였다.한국보다 1시간 늦는다.
出入有境,服務無境(출국과 입국엔 경계가 있으되,서비스엔 경계없이 최선을 다하라)
100년전 독일의 조차지였기 때문에 독일의 영향을 받은 관광명소가 많다.
중국시간 오전 9시 10분 도착하여 빗길에 숙소 정하고 시청근처 5.4광장 관광중
바닷가에 연해있는 5.4광장은 기미년 조선의 3.1운동에 자극되어 일어난 중국인의 만세운동을 기리고자 명명한 것이다.
은행도 가고 백화점도 가봤다.
사람사는 세상이다.
이 정도 문명을 이루었을진데 당연히 질서가 있다.
해변에 연한 어느 분식집에서 늦은 점심으로 20원짜리 해물면을
기다리며....이제는 햇변이다.변덕인 날씨
뒤로 멀리 보이는 중국식 정자가 잔교라고 하는 칭따오의 관광 명소이다.
제국주의자 선박을 접안하기 위한 시설이었다고 한다.
2012-07-10 화 한국시간 오후 3시 무술정변의 강유위 구거를 구경하고,
독일총독관저-신호산 정산-잔교-바이리광장에서 식사하고 민박으로 막 귀가하였다.
절제하는 의미로 술은 집에서 맥주 두병으로 시작.민박근처 미니스톱에서 칭따오맥주와 라오싼맥주를 각각 사왔다.
낼은 옛 제나라지역인 지난을 간다.
바로바로 댓글달지못함을 양혜하셔요!
2012-07-11 칭따오 시간으로 7시35분
칭따오역에서 기차타고 제남으로 간다.
근데,카톡 꺼놔야겠네.
데이터로밍 요금이 장난이 아니네...
하루에 3만원.
혹 연락은 음성이나 문자 가능합니다.
2일차 2012.7.11(수) 옛 제나라 땅이었단 지난(濟南)의 대명호(大明湖).
중국 근대의 작가 라오스(老舍) 기념관이 저 안에 있는데
가지못했다.배값을 아끼려고 시간이 없어서...
지난은 물의 도시이다.시내 한복판이 수로로 둘러쳐있다.
칭따오에서 지난까지 기차로 이동하였다.치치하얼에서 항주까지 가는 기차였는데 한국의 비둘기호 느낌이다.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 조폭같이 생긴 사람들이 말을 많이 걸었다.속으로 좀 쩔었다.
점점 순박한 그들과 친해졌다.말을 거칠게 하지만 속 깊은 내 친구 연월리 류**이를 닮았다.
칭따오 떠나서 산동성 성도인 지난 대명호에 왔다.
덜 보더라도 더위먹지말자!
대명호에 유유한 유람선에 난 지금 몸을 싣고싶지않다.
사치일뿐이고,지독하게 외로워질테니까!
몸을 추수렸다가 유서깊은
산동성박물관에서 동이족의 흔적을 살필까보다.
저 호수 건너 라오서(老舍)기념관을 그리며...
얼마만에 카톡이 터지는가!
2012-07-11 수 낮 1시
3일차 2012.7.12(목)
타이안시(泰安市)에 있는 태산(泰山)과 대묘(岱廟)를 봤다.
태산에 올라 공자님께서는 천하가 작음을 말하셨다지...
난 인생 처음으로 등산중에 쥐가나는듯한 고통을 느꼈다.
태산에 오르기전 호텔 뒷골목에서 아침을 먹고 과일을 샀다.
아침은 1.5元이니 한국돈으로 300원 가량이다.일반 여행사 페키지로 가면 100元이상 하는 음식을 먹는다.
난 아침과 점심은 주로 이 정도 3元 수준으로 때우고 과일을 먹으면서 여행했다.
태산에 올랐다.
공자님은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음을 알았다지만 난 그저 등산중 근육경련은 인생에 첨이 아닐런지.
암 생각없다.
수시로 안개와 비,
태양과 무더위
4일차 2012.7.13 금
공자님의 고향 취푸(曲阜) 여행.
사진은 공자님의 제자 자공이 공자님 사후 3년 시묘살이 한 곳.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옆이 공자님 묘소이다.
공자님의 묘소는 벌초가 안되어 있다.낫이 있었으면 내가 한바탕 벌초하고 싶었다.
중국여행 4일차 7.13 금
내 소시적에 그리던 성지인 곡부(취푸)의 공자 옛마을과
묘소 참배
중국여행 5일차 7.14 토
밤새완행열차안
취푸를 밤 11시10분에 출발하여
4시간째 열차에 있다.앞으로 2시간은 더 가야 개봉이다.
속도는 한국의 새마을호인데 풍경은 내 학창시절 기억하는 비둘기호보다 더한 피난민열차같다.
문명이기 차를 비난하는 게 아니고 침묵 속에 지키는 이 거대한 질서에 궁금할뿐이다.
몰카꺼리가 지천에 널부러져있다.
ㅋㅋㅋ
새벽 3시 14분
징허게 졸립다.
몸이 뒤틀린다.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대륙의 속살은 좀점 손에 잡히는듯하더니...
아!이런
앞으로도 두 시간 더 가야 개봉이라네.연착 때문...
개봉도착하면 아무생각없이
여행도 다 집어치고
여관 잡고 잠을 다시 자야겠다.
5일차 2012.7.14 토
포청천으로 유명한 송나라 수도였던 카이펑(開封)여행.
카이펑역 내리자마자 삔관에 들었다.
90원에 흥정이 되었으니 한국돈 1만6천원에 내일 정오까지 사용한다니 흡족.
샤워하고나니 잠은 달아나고 참 개운하다.살짝 배는 좀 고프지만 나가지않고 이대로 더 있고싶다.
배낭에서 짐을 꺼내 풀어놀고,
내 몸도 풀어놓은
"절대 자유의 만육천원의 공간"
카이펑은 역대로 홍수가 많은 지역이다.그래서 우임금을 숭상하고 있었다.
카이펑도 지난과 마찬가지로 도시에 물이 많다.
포청천의 사당도 호수가에 있고,
도심을 둘러 수로가 멋지게 개발되어 있는데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한국의 청계천은 너무 인위적이어서 답답하고 작다.
판타라는 멋진 탑이 있는 데 관리가 안된다.그 옆에 성황당 비슷한 곳이 있는데 할머니가 점을 봐준다.
이 아저씨는 그 할머니랑 친한가 보다.
저 천조가리 안에는 태극과 팔괘가 그려져 있어 신기하다.
밤새 8시간을 졸음,소음,무더위와 친해지는 기차여행 끝에 송나라 시대 수도였던 카이펑에 도착.
오전에는 삔관에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다가 시내 관광을 나섰다.
인력거꾼과 흥정이 되지않아 버스탔다.
어제 곡부에서 인력거 타는 호사를 경험했으니 가격흥정도 안되어서 차라리 그돈으로 맛난 음식 사들고 버스를 탔다.
물난리 겪던 카이펑 사람들이 치수의 천자인 우왕을 기린 우왕대산공원에 있다.
오늘 여행은 이변이 없이 안락할듯.
그저 명승지 산책하다 저녁에는 송나라 거리를 재현한 곳에서 간식먹다가 이미 투숙했던 삔관에서 잠을 자고
이미 예약한 고속버스표로 쩡저우 가면 그만이지...
일단,낼 아침까지는 좋다.
무거운 배낭도 여관에 두고 가벼운 차림이니 내 마음도 가볍다.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너무 길게 써서 죄송합니다.
이곳 개미들이 들이대니 이만 쓸까 합니다.
중국시간 오후 2시 30분
포청천의 고장 카이펑에서...
6일차 2012.7.15 일
하남성으로 이동.하남성의 성도인 쩡저우(鄭州) 여행
쩡저우에서는 중국인들에게 어머니의 젖줄과 같은 황하를 유람할 수 있다.
황하 뻘을 맨발로 들어가는 어른은 나 혼자 밖에 없다.
황하 뻘을 걸으면서 나는 아리랑을 불렀고
눈물을 흘렸다.
7일차 2012.7.16 월
일행이 생겼다.
우리 회사 직원으로서 동갑이다.물론 아쉬움인지 다행인지 남자이다.
홀로 여행도 좋지만 둘이서 댕기는 것은 또다른 맛이 있다.
낙양 근처 초작시에 있는 운대산으로 이동하였다.
쩡저우에서 운대산까지 가는 동안 중국인의 친절함을 또 경험하였다.
운대산 홍석협은 무릉도원의 모델이라고 한다.
무릉도원에도 왔겠고
방랑의 벗도 생겼겠다 하여 운대산 앞 산장에서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고추밭에 오줌 싸려다 어느 중국인 할머니한테 혼났다.
잠시 참았다가 그 할머니 집에 들어가니 바로 해우(解憂)하였다.
8일차 2012.7.17 화
낙양 근처 떵펑이라는 도시에 있는 소림사를 구경하였다.
운대산에서 낙양으로 갔다가 낙양에서 소림사 가는 버스를 탔다.
소림사 본 찰은 너무 소란스러웠다.
달마가 면벽수행했다는 암자는 찾는 이도 드물고 참 좋았다.
소림사에는 시간마다 무술 쇼를 하는데
사회자와 출연자 모두 남자들인데...
와~~남자들 목소리 참 매력적이고
땀흘리는 남자들의 헐떡거림에 내 가슴이 울렁거린다.
정말 멋지다.집중하는 모습들이~~
달마대사가 수행했던 암자에서
9일차 2012.7.18 수
용문석굴을 구경하고
고속열차를 타고 500km 떨어진 시안(西安)으로 1시간 반만에 갔다.
어제 늦은 오후 소림사에서 나라시 택시를 타고 낙양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용문석굴 앞으로 와서 여관을 잡았다.
여관을 잡고 나서 여관의 노인께 말했다.
"중국에도 초복 중복 말복이 있습니까"
"有"
나는 말했다.한국에는 그런 날에 삼계탕을 먹는다.삼계탕을 해줄 수 있습니까?
이리하여 여차저차 요리법을 알려드리고 점심으로 삼이 들어 있지 않은 닭백숙을 먹을 수 있었다.
감개무량...중국 땅에서 닭백숙을 먹다니...맛은 그럭저럭 좋았다.
60원을 달라했으니 1만원 가량이다.둘이서 1만원이니 좀 싸다는 생각도 들고
흥이 나서 낙양맥주를 여러병 시켜 낮술~~
당나라 고종 때 여자로서 황제를 꿈꾸던 측천무후를 모델로 만들었다는 노사나대불 앞에서...
높이가 17미터이고 귀때기 크기는 1.9미터란다.
용문석굴은 이하(伊河)를 사이에 두고 동서 야산에 각각 무수한 불상이 조성되어 있다.
근처에 백낙천의 묘소도 있고 향산사도 있으니 같이 구경하였다.
10일차 2012.7.19 목
진시황릉과 병마용을 구경하였다.
한 사내의 비겁함과 무모함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인명이 경시되었을꺼나!
진나라 정(政)의 무덤.정은 진시황의 이름이다.
저 야트막한 야산처럼 보이는 것이 무덤이다.저 너머가 앞쪽이 되고 제단과 제를 올릴 수 있는 넓은 마당이
배치된 곳이다.
난 왠지 이곳 뒷면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고 싶다.
11일차 2012.7.20 금
중국여행의 마지막 날...
밤 12시 15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서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중국돈이 246元(45,000원) 남아서 공항서점에서 그 돈으로 책을 샀다.
서점을 통째로 사버리려는 기세로 책을 골랐다.
근데 책값이 한국이나 비슷한 수준이네...
14세기 명나라 때 다시 조성한 성벽에서 자전거 타기...
높이 14미터,폭 14미터이다.둘레가 15키로라던가?
자전거로 한바퀴 도는데 1시간 20분이나 걸렸으니...
자전거 타는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암 생각이 없다,그러니 여행을 하는 것인가!
2012.7.22 일 부안 격포의 채석강에서 딸과 함께
중국여행을 마치고 한국시간으로 21일 새벽 4시반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가족(딸과 아내)이 공항으로 영접을 나왔다.황송하게도~~~
내가 운전하여 월미도를 거쳐 정읍으로 가서 告하였다.
적적한 시골집에서 2박 3일을 보내었다.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였다.
이렇게하여 14일간의 휴가를 마무리하였다.
중국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질서를 이루면서 살고 있었다.
인권은,
동서를 막론하고
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를 막론하고
노소를 막론하고
큰나라 작은 나라,
부자나 빈자를 막론하고
존귀여김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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