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째 중국여행으로 복건성을 다녀와서 블러그에 글을 올릴 때
방문지 순서에 따라 날짜 순서로 올린다는 개념보다는
주제별 단편적으로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는데
구곡계 표류한 것에 대하여 제일 나중에 작성하고 있다.
즉,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1곡부터 9곡까지 일목요연하게 의미있게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주희의 구곡도가와 달리 우리가 표류한 것은 9곡에서 시작하여 1곡으로 종착했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이다.
구곡계의 일반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표류시간과는 달리 주자의 시에 따라 사진을 배열하기로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시 해석과 시에 사용된 글자가 출전에 따라 다르게 나와서
어느 것이 더 정확할 것인지를 따지고자 더 많은 인터넷을 뒤지고 비교하는 것이었다.
근원적인 문제....주희의 시집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고
인터넷을 뒤졌다는데 있다.
무이정사에 걸려 있는 구곡계도.누구 작품인지 확인을 못했다.
이글을 마무리하면서 무이정사에서 촬영한
구곡도가를 보기는 봤다.
구곡계는 무이산맥 주봉인 황강산黄岗山 서남쪽 기슭의 계류로서 西에서 東으로 흘러 崇陽溪에 흘러든다.
구곡계 대나무 땟목타기 전체 길이는 9.5k이고 끊어지고 찢어지는 지질 작용에 의해 꺽어지기를 아홉 번 하였으며,
물여울은 여덟이요,못은 다섯이라.
유람객은 성촌 마을에 있는 작은 부두에서 활모양의 옛스런 대나무 땟목에 의지하여 물결따라 흘러가며 주변 풍광을 감상하게 된다.주희의 무곡도가가 끝나는 9곡부터 대나무땟목은 표류를 시작한다.
성촌 마을 차 가공공장
대나무땟목타는 곳
성촌마을 부두에 손님을 기다리는 대나무 땟목
무이암차를 실어나르넌 옛날의 나루터
쌍유봉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상유선령) 무이산 위에 신선의 영혼이 있고
山下寒流曲曲淸 (산하한휴곡곡청) 산 아래 찬물이 흘러 굽이굽이 맑네.
欲識個中奇絶處 (욕식개중기절처) 그 가운데 기이한 절경지를 알고자 하면
櫂歌閑聽兩三聲 (도가한청양삼성) 뱃노래 두 세 소리 한가로히 들어보세.
이 시는 구곡도가의 실질적인 서시序詩 역할을 하고 있고,무이산의 기묘하고 절묘한 풍광을 읆고 있다.
구곡도가의 해석은 애초 http://blog.daum.net/ljw1674/18302599(이ㅈ웅 님)의 것을 참조하였고
나중에는 중국에서 생산한 인터넷 자료를 참고하여 내 방식으로 해석하였으니 해석의 오류가 있다면
오로지 내 몫이고 허물일따름이다.
1곡
一曲溪邊上釣船 (일곡계변상조선) 일곡이라 냇가에서 낚싯배에 오르니
幔亭峰影蘸晴川 (만정봉영잠청천) 만정봉 그림자 맑은 내에 잠겼더라.
虹橋一斷無消息 (홍교일단무소식) 홍교는 한 번 끊어져 여태 소식이 없고
萬壑千巖鎖翠煙 (만학천암쇄취연) 만 갈래 골짜기 천 개 바위는 푸르스름 안개에 잠겼더라.
1곡의 시내 북쪽에는 용립(聳立song3li4)한 봉우리가 있으니 구곡에서 첫번째로 보이는 봉우리로서
대왕봉 혹은 천주봉天柱峰이라 불린다.대왕봉의 좌측에 만정봉이 있고 만정봉 절벽에는 “幔亭”이라는 두 글자가 각자되어 있다.
而幔亭峰就是神话故事中武夷君宴请乡人的所在,也就是“幔亭招宴”的所在地。
만정봉은 무이군이 잔치를 벌였다는 전설이 있는 바로 그 곳이다.
만정봉 사진 ?
석각 중에 "修身爲本수신위본"은 명나라 학자 이재가 쓴 것이다.
传说宴会的当天,虹桥架空,群仙驾临,祥云缭绕,仙乐悠扬,轻歌曼舞,飞觞劝饮。
乡人顶礼膜拜之余,亦皆开怀畅饮。宴罢乡人归,风雨骤至,虹桥飞断,神迹杳然。
这一神话传说,充满奇诡神秘色彩。民间传说自从虹桥飞断之后神仙就不再光临此地了。
唐朝李商隐为此咏道:“只得流霞酒一杯,空中箫鼓几时回。武夷洞里生毛竹,老尽曾孙更不来。”
朱熹所咏的“虹桥一断无消息,万壑千岩锁翠烟”,也正是此意。
一曲风景名胜颇多。曲畔的水光石上,有摩崖石刻群可供鉴赏。
石刻杰作中除明明理学家李材的“修身为本”之外,还刻有明代抗倭名将戚继光途经武夷时的题词
: “大丈夫既南靖岛蛮,便当北平劲敌。黄冠布袍,再期游此”。
2곡
二曲이라는 글씨의 二字가 희미하다.
二曲亭亭玉女峰 (이곡정정옥녀봉) 이곡이라 우뚝 솟은 옥녀봉은
揷花臨水爲誰容 (삽화임수위수용) 꽃을 꼽고 물가에 다다르니 누구를 위한 얼굴이런가?
道人不作陽臺夢 (도인부작양대몽) 도인은 양대의 꿈을 다시 꾸지 않는데
興入前山翠幾重 (흥입전산취기중) 흥이 나서 앞산에 드니 푸르기가 얼마나 더 하던가!
옥녀봉과 여자 사공.
실제 여자 사공도 있는데 위 사진은 유람객이 연출한 사진이다.
2곡 시내 입구에서 사람을 환영하며 우뚝 솟아 선명하게 사람을 비취는 것은 옥녀봉이다.
玉女峰突兀拔空,峰顶花木参簇,整座山峰像束髻簪花的少女,岩壁缝痕似衣裙皱褶,飘飘欲仙,
峰下碧波绮丽的“浴香潭”,传说是玉女洗浴的地方。
위 시에서" 陽臺夢"은 "荒대몽"의 오기라고 하는데 내 현재 실력으로는 어느 것이 맞는지 분간을 못하겠다.
陽臺란 남녀교합을 말한다고도 하고....荒臺란 이미 기울어진 왕조란 뜻도 있다고 하는데....
중국측 인터넷 자료에는 다들 陽臺로 표현되어 있고
나는 주희 시의 원전을 접하지 못한 상황이다.
潭中一块方形巨石,刻“印石”二字。峰左侧有一岩叫妆镜台,刻有二丈多高的“镜台”二字。
民间传说玉女隔溪与一曲之畔的大王(大王峰的象征)苦恋,朱熹的二曲之歌即咏此。
"경대鏡臺" 글씨 사진은 5곡에서 있음
玉女峰和周围的山水构成一幅仙境般的画图。宋朝的李纲有诗赞道:“风舞芳林鬓脚垂,朝云暮雨湿仙衣。
不知当日缘何事,化石山头更不归。”与李纲同时代的道教名羽白玉蟾亦有咏玉女的诗歌
:“插花临水一奇峰,玉骨冰肌处女容。烟映霞衣春带雨,云鬟雾鬓晓梳风。”
作为道学先生,他们对男女相恋一般是避而不谈的,所以他们的诗也写得比较含蓄。
提倡“天存理,灭人欲”的朱熹更担心人们由此而引起有关巫山神女的风流联想,
因而调侃似地咏道:“道人不作阳台梦,兴入前山翠几重。”
3곡
三曲君看架壑船 ( 삼곡군간가학선) 삼곡이라 그대는 가학선을 보았는가?
不知停櫂幾何年 ( 부지정도기하년) 노 젓기를 그만둔 지 몇 해인지 모르겠네.
桑田海水今如許 ( 상전해수금여허) 뽕밭이 바다가 된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듯하니
泡沫風燈敢自憐 (포말풍등감자련) 물거품과 바람 앞에 등불같은 우리 인생 감히 스스로 가련하네.
3곡은 소장봉小藏峰에 있는 가학선架壑船을 읆은 것이다.소장봉은 선선암仙船岩이라고도 하는데 깍아지른 절벽
동굴 틈새에 배 모양으로 나무로 만든 옛날 유물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선인仙人이 득도하여 가버리고 남겨진
나무 배라는 것이다.배에는 유골이 있는데 遺蜕(남길 유,허물 세,껍질 태)라고 한다.
가학선架壑船
宋朝陈梦庚《仙船》诗咏道:
“此船何事驾岩限,不逐桴槎八月来。
莫是飞仙无所用,乘风有路到蓬莱。”
而最早对虹桥板、架壑船作出合理推测的,还是朱熹,他认为是“前世道阻未通,川壅未决时,蛮物所居”的遗物,经考证这些虹桥板、架壑船确实是古代南方少数民族的一种悬棺葬的遗迹。
4곡
四曲東西兩石巖 (사곡동서양석암) 사곡이라 동서에는 두 바위산인데
岩花垂露碧㲯毿 (암화수로벽람산) 바위꽃이 이슬 머금고 떨어지니 푸른 실처럼 흩날린다.
金鷄叫罷無人見 ( 금계규파무인견) 금닭 울음 그치고 인적 없으니
月滿空山水滿潭 (월만공산수만담) 달은 빈 산에 가득 차고 물은 못에 가득하도다.
위
落(떨어질 낙)인지 露(이슬 로)인지 모르겠구...藍(푸른쪽 람)이 監(살필 감)인지 氈인지 毿(삼,san1)모르겠다.위 무이정사 사진에는 㲯(털이 긴 모양 람,남)이 위에 艸두가 있다.중국어 사전에는 검색도 안된다.毿털이 길 산, 털 긴 모양 삼, 털이 긴 모양 람(남)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씨 毴ㅂㅈ 비,중국어에는 없다.
“两石岩”은 四曲에 있는 대장봉大藏峰과 선조대仙釣臺를 가르킨다.
"水滿潭"의 潭은 대장봉 밑 와룡담을 가르키며 지금 보이고 있는 물을 말한다.
보이는 글자는 "비취유하飛翠流霞"라고 적혀 있다.
물총새는 날고 노을이 흐른다?
朱熹此处的诗意是:山花的花瓣还带着朝露,一片清绿,有如羽毛的散乱披离。
这是以山花带露衬出山中黎明的时分。
四曲大藏峰壁有金鸡洞,传说武夷金鸡为世人司晨,可是谁也没见过金鸡,有的只是月下空山和卧龙潭。
朱熹的四曲棹歌中的“水满潭”之潭,即大藏峰下的卧龙潭。
潭水深不可测,也是四曲的一处胜境。
“月满空山水满潭”写出了黎明前鸡鸣星稀,西天的月光下衬出的一片空山静境。
在卧龙潭岩壁上刻有“飞翠流霞”四字。
4曲 시에 나오는 금계동金鷄洞.사람을 위해서 새벽을 맡은 것이 금계라고 한다.
소구곡이라 불린다.5곡 근처
5곡
五曲山高雲氣深 (오곡산고운기심) 오곡이라 은병산은 높고 구름 기운 깊은데
長時煙雨暗平林 (장시연우암평림) 무시로 안개비 있어 평림 나루는 어둡도다.
林間有客無人識 (임간유객무인식) 숲 속의 나그네를 알아보는 사람 없고
欸乃聲中萬古心 (애내성중만고심) 어기여차~ 사공의 노래 소리 만고의 마음일세.
欸乃를 어떤 인터넷에는 欲乃(욕내)로 인용되고 있다.
欸乃(애내,ai3nai3)는 삐걱 노젓는 소리이기도 하고 뱃노래를 말하기도 한다.
5곡은 구곡의 중심이다.
은병봉隐屏峰이 시내 북쪽에 우뚝 솟아 있고 산봉우리(峰峦fēngluán)가 쭈욱 연결되어 있다.
주희는 이곳에 무이정사를 짓고 강학하였다.위 시에서 “山高”는 무이정사 뒤의 은병봉을 가르킨다.
由于山高云深,才烟雨无时暗锁平林渡口。“欸乃”是船夫出力摇船的应答声。“客”指朱熹自己。
五曲幼溪津
철마와 금창을 멀리하고 진성陳省은 구곡계에서 배를 타고 노니었다.유유히 한 줄기 구름길을 떨치고 나왔는데도
여전히 구곡계에 두둑에 있으니 스스로 나루를 일컬어
“幼溪津”이라 하였다. 진성은 여러 산림 은사,어부와 나뭇군과 사귀었다.“幼溪津”은 은자들이 저녁놀 속에 목욕하던 곳이다.
진성은 福建長樂人으로 字는 孔震이며 幼溪는 그의 號이다.
嘉靖年에 진사로서 벼슬은 兵部右侍郎에 이르렀고 僉都御史를 겸하였으며 사람들은 그를 少司馬라 했다.
명 萬歷11년에 은퇴하고 무이산 운와에 은거하였다.
참고 : http://blog.sina.com.cn/s/blog_166bb9d6f0102x03i.html
오곡대교五曲大橋
다리 왼쪽으로 무이정사가 있고,천유봉 올라가는 길이다.
다리 오른쪽으로는 어차원御茶園이 있던 곳으로 찻길이 나온다.그 찻길은 구곡계를 연하여 있으며 성촌마을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른 아침 무이정사를 찾아가면서 아침햇살 비취는 내와 산을 바라보며 넋을 놓았었다.
나무 사이로 '鏡臺경대'라는 글씨가 보인다.
2곡에 나오는 옥녀봉과 관계가 있으리라.
镜潭,位于下云窝濒临九曲溪的五曲之旁,岩泉从上云窝折南而下,流至石坪前,注入潭内,因其清深如镜,故名镜潭。宋代,詹景舒在《咏水月亭》中有诗句曰“镜潭石上有危亭”。距潭不远的溪畔小岩上,镌有钟鼎文“镜台”。
6곡
六曲蒼屛繞碧灣 (육곡창병요벽만) 육곡이라 푸른 벼랑이 병풍처럼 물굽이를 둘렀으니
茆茨終日掩柴關 (모자종일엄시관) 띠 집의 사립문 종일토록 닫혔있네.
客來倚櫂岩花落 (객래의도암화락) 노 저어 객이 오고 바위 꽃이 떨어져도
猿鳥不驚春意閒 (원조불경춘의한) 원숭이 새들 놀라지 않고 봄 정취 한가롭네.
茆(순채묘,띠모,mao3),茨(띠나 갈대로 지붕일 자,ci2)
六曲은 가장 짧은 거리이다.선장봉 또는 쇄포암이라 불리는 큰 봉우리가 시내 북쪽에 있다.
溪北有高直耸立的巨峰,峰壁由于流水侵蚀久而深陷,状如指痕,故称仙掌峰,
又叫晒布岩,壁上刻有四个大字:“壁立万仞”。
今日的晒布岩下是茶叶试验场,面溪背山,环境清幽,真个像朱熹所吟咏的那样,岩花自落,猿鸟不惊,清静极了。
空谷傳聲
사공은 여기 6曲에서 고함을 치라고 했다.당시에는영문도 모르고 소리를 쳤다.한국에서는 '야호~'가 없어졌는데
아직 '야호~'가 허용되는 중국에서라도 실컷 해보자...그런데 이 '공곡전성'이라는 글자에 의한 연출이었다는 것을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되었다.여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맞은편 산고에서 즉각 소리가 되돌아 온다"는 뜻
"空谷傳聲공곡전성"도 陳省이 题刻한 것이다.幅面450×120cm
6곡에서 노질하고 있는 사공.멀리 '鏡臺경대'라는 글씨가 보이고 더 멀리 있는 것은 옥녀봉인지 모르겠다.
7곡
七曲移舟上碧灘 (칠곡이주상벽탄) 칠곡이라 배를 몰아 푸른 여울 올라가서
隱屛仙掌更回看 (은병선장갱회간)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네.
却憐昨夜峰頭雨 (각린작야봉두우) 어여쁠손 어젯밤 산 위에 내린 비
添得飛泉幾道寒 (첨득비천기도한) 산골 샘에 더해지니 얼마나 차가울까.
어떤이는 위 移舟를 移船으로,道를 度로 적고 있으나 무이정사 사진에는 위와 같이 적혀있다.
위 시에서처럼 은병봉(쇄포석曬布石)과 선장암을 다시 돌아본 모습
저 아래 벼랑에 벽립만인壁立萬刃이라는 큰 글씨가 있다.
七曲에는 獭控滩이 있는데 이 시에서 나오는 灘(여울)을 가르킨다.
“飞泉”指凌空飞洒而下的山泉。七曲的北面为三仰峰,又称三迭峰,海拔700多米,三峰相迭,面背东向,雄姿巍然。在小仰峰的半壁上有壁宵洞,刻有“武夷最高峰”五个大字。
8곡
八曲風煙勢欲開 (팔곡풍연세욕개) 팔곡이라 바람 불어와 안개 개려 하니
鼓樓岩下水濚廻 (고루암하수영회) 고루암 바위 아래 맑은 물 급히 돌아드네.
莫言此處無佳景 (막언차처무가경) 이곳에 좋은 경치 없다고 말 말게나.
自是遊人不上來 (자시유인불상래) 여기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네.
八曲滩高水急,溪畔浮出水面的有“牛角潭”的牛角,“青蛙石(청개구리)”的石蛙。
鼓楼岩下,有一石如张牙舞爪的狮子,称为“上水狮”,有块椭圆如龟的岩石,称“下水龟”。
溪南和鼓子峰相望的大小两块岩石,称为大廪石和小廪石,对大小廪石南宋名相李纲有诗赞道
:“仙家何事也储粮?石廪团团曲水旁。应驾玉龙耕紫石,琼芝千亩个中藏。”
7언절구는 7언의 4구로 28자로 지은 시를 말하지만
위 암각자처럼 4자 7줄로 새기니 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水龜
9곡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구곡이라 다하려 하니 눈이 훤히 열린듯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우로견평천) 평천 땅 비와 이슬에 젖은 뽕밭 삼밭을 보는도다.
漁郞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사공이 다시 무릉도원 길 찾지만은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이곳 말고 세상에 별천지 있으랴.
平川은 지명으로 구곡계 막바지 성촌星村 일대이다.뽕과 삼이 온들에 가득하고 좋은 밭과 멋진 연못이 있다.
집들은 자못 가지런하고 닭 울음과 개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니 도원의 정경이라 할 수 있다.
9곡 근처...천변을 따라 약 4km 오른쪽으로 가면 5곡이 나온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5곡에서 이곳 성촌마을까지 걸어 와서 표류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5곡대교 근처
구곡계 1곡 시작하는 무이궁 근처...
지금은 땟목타기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고있다.
무이궁 근처 거의 와서 인물 사진 촬영
九曲题刻
朱熹《九曲棹歌》共10首,是最早赞美武夷山九曲溪两岸风光的棹歌。
郭沫若《游武夷泛舟九曲》就有“棹歌首唱自朱熹”之句。
《九曲棹歌》约作于南宋淳熙年间,此后,成为千古绝唱,代代相传,直至今日,乘筏游览,
仍可听到筏工击棹引颈的高昂歌声。
历代也多有步韵唱和者,如宋代的方岳,明代的刘信、张时彻、黄仲昭、郑善夫、马豹蔚、江以达,
清代的张坦、来谦鸣、僧明钦、王复礼、董天工等都曾和朱熹原韵讴歌九曲。
据民国《福建通志》载,《九曲棹歌》10首全部镌刻于九曲溪各曲岩壁,
但对镌刻时间尚难确定:“云‘淳熙甲辰仲春精舍闲居戏作《武夷棹歌》十首,呈诸同游相与一笑。
’今拓本无年月,不知何时上石,无可考矣。
”但估计也是朱熹闲居武夷精舍时(1183~1190年)镌刻于石。
10首棹歌,经800余年的风吹日晒,至今尚存一曲、二曲、四曲、五曲、六曲、八曲6方,分别刻于一曲水光石,二曲勒马岩、四曲题诗岩、五曲晚对峰、六曲响声岩、八曲上水狮岩。
为了让游客乘筏游览时能完整欣赏朱熹这一千古绝唱,武夷山风景区管理部门于1997年又分别补镌了二曲、三曲、五曲、七曲、九曲棹歌(其中二曲、五曲棹歌因朱熹原刻离岸较远,在水上看不见,故也补刻于乘筏可见处。)《九曲棹歌》已成为武夷山九曲溪精品旅游线路的重要文化景观。
九曲溪發源於武夷山脈的主峰——黃崗山的西南,上游流經山深林密,雨量豐沛的武夷山自然保護區,下游流過星村,進入武夷山風景區,繞了九曲十八彎,到武夷宮前彙入崇陽溪,全長約六十公里。而從星村至武夷宮這段則爲名震遐邇的九曲溪,長不過十公里。武夷山風景區的絕大部分風景點就分佈在九曲溪兩岸。
在歷代文人騷客吟天。 在歷代文人騷客吟頌武夷詩中,首先全面概括描寫武夷風貌的是朱熹的《九曲棹歌》。“棹”又作“櫂”,即船漿,棹歌就是舟子漁夫所唱的歌。朱熹這首用民間樂歌形式寫的《九曲棹歌》,是對武夷山九曲溪的全景掃描,也就是描繪九曲溪的一幅長卷佳作。
《九曲棹歌》寫景寫情,一掃宋詩中“愛講道理,發議論”的缺陷。當今大學者錢鍾書評論說:“假如一位道學家的詩集裏。‘講義語錄’的比例還不大,肯容許些‘閑言語’,他就算得道學家中間的大詩人,例如朱熹。”(錢鍾書《宋詩選注》第一零七頁)朱熹的《九曲棹歌》確是容許了相當的“閑言語”,也就是說,用了許多抒情的詩歌語言。因此,它至今仍然膾炙人口,傳播海內外。
朱熹的《九曲棹歌》的次序是乘坐上水船逆流而數的,而坐竹筏逆流而行,危險性較大,所以現在遊九曲是從星村渡的平川開始,順流而下,從九曲到一曲的。
此外,奉和朱熹《九曲棹歌》而作《棹歌和韻》的詩人有方岳、劉信、王複禮、董天工等十幾位詩人。作《棹歌十首》的有白玉蟾、餘熹賓、邱雲霄等數人;作《九曲雜詠十首》的有白玉蟾,作《武夷九曲歌》的有顧夢圭等。
九曲棹歌的餘韻隨著朱子學的東播而迅速流傳海外。被譽爲“海東朱子”的朝鮮李朝哲學家李滉爲之神縈夢繞。這位生活於相當明代嘉靖年間的朱子學海外權威,晚歲隱居于陶山退溪之畔,世稱李退溪。他欽慕朱熹,對武夷九曲心馳神往,雖因路遠而不能親臨聖地,但卻珍藏著《武夷志》和《九曲圖》,終日賞玩不已。
一九九零年月十月,筆者有幸與韓國學者同席參加紀念朱熹誕辰八百六十周年國際學術討論會,得知李退溪當年神遊武夷九曲的軼聞,韓國學者于會議結束歸國後,惠贈一套《退溪學叢書》,書中就有李滉《李仲久家藏<武夷九曲圖>跋》一文。文中讚美這幅描繪武夷九曲之長卷“滿目煙雲,精妙曲盡,耳邊恍若聞棹歌矣!”他還因之發出不能與朱熹同時代而侍讀于門下的浩歎:“噫!吾與吾友獨不得同其時買舟幔亭峰下,輟棹于石門塢,獲躋仁智堂,日侍講學之餘,退而與諸門人詠歌周旋於觀善齋之間。”石門塢、仁智堂、觀善齋等都是武夷精舍的主要處所。李退溪崇敬朱熹、喜愛武夷之情躍然于文章的字裏行間,令人讚歎!
李退溪羡慕、向往武夷之餘,還在那幅九曲長卷中題詩,“書棹歌于逐曲之上”。他應和朱熹的九曲棹歌,韻味雋永,詩意濃郁,浮想聯翩,酣暢神遊。其中吟唱第九曲的和詩獨具風采。詩雲:“九曲山開目曠然,人煙墟落府長川。勸君莫道斯遊極,妙處猶須別一天。”對照朱熹之原詩:“九曲將窮眼豁然,桑麻雨露見平川。漁郎更覓桃源路,除是人間別有天。”頗有異曲同工之妙。真是棹歌傳絕唱,海外有知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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