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에 있는 송산사지.
절터란 뜻이 아니고
고려말 충신 조견의 호를 딴 송산사라는 사당이 있던 곳이라는 뜻이다.
1977년 10월 13일 경기도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고려말 충신인 조견 원선 이중인 김주 김양남 유천 등 6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고 설명되고 있다.
송산사지에 근세에 다시 사당으로 모셨다.
사당 옆 모습
사당 옆에 특이한 비석이 있다.
보기드문 육각형인가 하는 비석이다.
특이한 것은 비섯뿐이 아니고
사당이 북향하고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사당 경내 오른쪽에...즉, 서쪽에 있는 비석은 충신 여섯 분의 비석이다.
어떤 기록 사진을 보니 이 비석들은 지금 전각 자리에 지붕없이 노지에 모셔졌었다.
사실 비석이 노지에 있으면 그대로 의미가 있을텐데 구태여 전각을 만드는 것은
그 과정이 권력의 행사일 것이다고 여긴다.
사당 뒷쪽에 고목
사당 주변에는 공원이 멋지게 조성되어 많은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저 건물은 전통 정원이라고 하는데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좀 어색하다고 느낀다.
어떻든 시민들의 휴식처로 역할을 하니 다행이다.
전날밤 밤톨을 줍는 꿈을 꾸었는데 여기에서 밤톨 몇 개 주어 먹고 급히 배고팠던 기근을 면했다.ㅋㅋ
복권을 샀어야 하는가....
이 곳에 모셔진 충신 여섯 분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한 거에 대해 간단히
기록을 남긴다.
1
조견 [趙狷] : “조선이 개국되고 형 조준으로 인하여 개국공신에 책록되었다”는 설과 “조준의 간곡한 출사 권유가 있었지만 고려에 절의를 지켜 은거했으며, 자손에게도 고려에의 절의를 당부하였다”고 한 이설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조견은 조선에 출사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한듯하다.
2
원선 [元宣] : 본관은 원주(原州), 호는 양촌(陽村)이다. 고려 말에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판삼사좌윤(判三司左尹)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조선이 개국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오늘날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洛陽洞) 인근에서 은거하였으며, 벼슬에 오르라는 조선 태조(太祖)의 권유도 거절하였다. 1796년(정조 20) 살던 집터에 유허비(遺墟碑)가 건립되었으며, 민락동(民樂洞) 삼귀마을에 있는 송산사(松山祠)에 배향되었다.
3
이중인 [李中仁] :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주초(奏楚) 또는 진초(秦楚)이다. 고려 충혜왕(忠惠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학문이 매우 뛰어나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이색(李穡, 1328~1396)도 그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사직하고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으며, 조선 태조(太祖)가 국정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도 거절하였다. 묘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리에 있으며,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 삼귀마을에 있는 송산사(宋山祠)에 배향되었다.
4
김주 [金湊] : 본관은 낙안(樂安).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직강(成均直講)이 되었다. 1393년(조선 태조 2) 2월에 예문춘추관대학사(藝文春秋館大學士)가 되었고, 상의문하부사(商議門下府事)로서 계룡산 아래 신도(新都) 후보지로서의 적합성 여부를 조사하던 중, 조운(漕運)과 도로 관계를 조사하는 데 참여하였다.
1398년(태조 7) 9월 제1차 왕자의 난에 관련되어 김사행(金師行)이 참수당할 때, 그와 더불어 백성을 혹사하였다 하여 영주(寧州)로 유배되었으나 성곽 경영의 공로로 감형되었다.이로 봐서는 조선에 출사하였다.
5
김양남 [金陽南] : 본관 강릉(江陵). 호 일노정(逸老亭).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특히 함께 등과한 이방원(李芳遠)과 교우가 두터웠다. 고려 멸망 이후 현재 연천군 전곡읍 은대3리 반곡(盤谷)에 은거하였고 매일같이 한탄강 건너편 국사봉(國思峰)에 올라 개성을 향해 통곡하며 두 번 절을 하였다고 한다. 태종(太宗)이 지평(持平)을 제수하는 등 여러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집 근처에 학소정(鶴巢亭)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평생 절의를 지키다 일생을 마쳤다.
6
유천 [兪蕆] :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송은(松隱).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진출하였으며, 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의 관직을 지냈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으며, 나라가 망한 뒤에는 낙향해 은거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
위 여섯 분에 대한 약력은
네이버지식 두산백과에서 발췌요약한 것이다.
위 1조견,4김주 두 분은 조선에서 출사하였다고,
위 2원선,3이중인,5김양남,6유천 네 분만 조선에서 출사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충신이라 하여 이름을 붙이니 내 관념에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고
어차피 허물어져버린 사당 터에 그냥 비석으로 있으면 어떠하며, 요렇게 겁데기를 덮어 두면
진리 진실에 더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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