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충남 아산맹씨행단(2019.11.2 토)

무논골 2019. 11. 3. 22:10

토요일 아침 서두르지 않은 시간에 서울을 출발하여

정읍을 가고 있다.


충청남도 온양을 지나가는데 이정표에 맹씨행단이 보인다.

예로부터 관심 있던 곳이라서

재촉하던 길을 잠시 멈춘다.


신창맹씨와 온양정씨의 관계를 온양정씨 족보에서 본듯한데

이곳에서는 온양정씨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신창맹씨 세거하던 땅이라는 뜻


신창맹씨에 대한 유래비


맹자로부터 기원하고 있다.

 

정려각


효자 맹사성


고불 맹사성 시비


왼쪽은 가락국의 땅 김해 연자루(연자루)에서 읊은 한시

오른쪽은 강호사시가





맹씨행단 배치도


고택 앞 팽나무


유생들이 좋아했다는 회화나무

수령은 300년이 넘었다.


쌍행수

두 그루 은행나무 사이에 단을 쌓고 거기서 강학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단.





고택과 고택 오른쪽 뒤에 살짝 보이는 세덕사


장인공 자 형상을 하고 있다.

앞에서 봤을 때 좌우에는 온돌이다.



온돌칸과 온돌칸 사이에 마루 대청을 놓았다.


들문을 만들어 여름에 환풍 멋이 좋았겠다.


고려말엽의 민가로 드물게 보존되어있다는 가치가 있다고 한다.


고택


"1330년 고려 충숙왕 17년 2월 최영의 부친 최원직이 건축하고,최영이 살았다.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이 죽은 뒤 비어 있던 집에 최영의 손녀사위인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맹이 정란을 피하여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은거하였다.이집은 工자 형 맞배지붕으로 건평은 27.5평이다."


이렇게 소개되고 있는데

내가 온양정씨 족보에서 읽은 것과는 사실이 다르다.다시 족보를 펼칠 시간이 없이 이글을 쓰니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세덕사

고려말 두문동 72현인 맹유 맹희도 맹사성의 위패를 모신 사당.


세덕사


세덕사 담장


고택과 세덕사를 벗어나 구괴정으로 가는 길에 되돌아보았다.


고택 돌담이 굳세보인다.




돌담 밖으로 밭이 있다.

문화재에 대한 개념을 갖지 않은 노인 부부가 최근까지도 인근에서 사셨다고 문화해설사께서 말씀하신다.

이 말뜻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돌담에서 보이는 구괴정과 그 뒤로 보이는 설화산 자락



구괴정 위에 오르면 앞으로 개활한 들판이 보인다.

예전엔 내가 흘러 맹사성은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구괴정 현판

구괴정은 아홉 그루 느티나무란 뜻이고

삼상이란 세 명의 정승이란 뜻이다.


세종 때 황희 맹사성 권진이 삼 정승이고

이 삼 정승이 아홉 그루 느티나무를 싶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심은 아홉 그루 중 오직 남은 한 그루

 


 


인근에 있는 맹사성 기념관에서 촬영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