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전남 영광군 원불교 영산성지(2022.8.20 토)

무논골 2022. 8. 22. 22:06

원불교의 성지 한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을 방문한 형제들은 모두 관심 없어 한다.

사실 나도 좀 피곤한 상태이다.

얼른 돌아가고 싶지만 구도자만큼은 피곤하지 않기에 잠시 들러볼뿐이다.

 

노란 형광펜 칠해진 곳이 

원불교 영산성지이다.

 

영산성지 일대 지도이다.

 

 

1891년에 태어난 소태산께서 

원기 원년 1916년 병진년 3월 26일(4월 28일) 젊은 나이에 

온갖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곳을 영산성지라고 하는듯하다.

 

대단하시다.

 

우선 인터넷에서 이와 관련 자료를 옮겨본다.

 

아래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소태산(少太山)이 태어난 영촌마을, 어린 시절을 보낸 구호동(九虎洞), 마당바위, 노루목[獐項], 

선진포(仙津浦), 범현동 재각(軓縣洞齋閣), 언답(堰畓), 구간도실(九間道室), 구인기도봉(九人祈禱峰) 등의 

유적이 포함되어 있다.

영촌마을의 생가는 없어졌다가 최근에 복원되었으며, 

구호동은 소태산이 산신과 도사를 만나려고 노력하던 곳이다. 

마당바위는 구호동에서 삼밭재로 오르는 산중턱에 있는 넓다란 바위로 11∼15세까지 

산신을 만나기 위하여 기도하던 곳이다.

노루목은 구호동과 영촌마을의 중간지점에 있는 고개로 

1916년 4월 28일 이곳에서 대각(大覺)을 이룬 것을 기념해서 만고일월(萬古日月)이라는 비가 세워져 있다. 

 

선진포는 지금의 영산선원(靈山禪院)에서 1㎞ 떨어진 해변 나루터이다.

소태산이 구도시절 법성포 장에 가기 위하여 배를 기다리다 입정상태(入定狀態)로 한나절을 서 있던 곳이다. 

 

범현동 재각은 소태산이 크게 깨달은 후 9인의 제자를 얻어 첫 집회를 열고 

십인일단(十人一團)의 단조직을 한 곳이다. 

 

불법연구회기성조합(佛法硏究會期成組合)을 결성한 첫 집회장소이기도 하다.

언답은 1918년 3월부터 1년에 걸쳐 소태산과 그의 9인제자가 바다를 막아 만든 논이다. 

당시는 2만 6000여 평이었으나 그 뒤 2, 3차 공사 끝에 현재 6만 8000여 평에 이른다. 

 

구간도실은 1918년 12월 방언공사를 진행하면서 옥녀봉 아래 신축하였던 

원불교 최초의 건물로서 백지혈인(白指血印)의 법인성사(法認聖事)가 이루어졌던 유적지이다.

구인기도봉은 소태산의 9인제자들이 1919년 3월부터 10월까지 각각 기도를 드렸던 산봉우리, 

즉 중앙봉(정산)·설래바위봉(一山)·밤나뭇골봉(二山)·촛대봉(三山)·눈썹바위봉(四山)·마촌앞산봉(五山)·옥녀봉(六山)·

공동묘지봉(七山)·대파리봉(八山) 등을 일컫는다. 

 

영산성지에는 현재 원불교 영산출장소·영산선원·성지고등학교·영산교당 등이 있다.

 

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원불교영산성지 [圓佛敎靈山聖地] (한국민족문화대한국민족문화대백과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옥녀봉

 

일원상 품은 옥녀봉

 

 

옥녀봉이 보인다.

물 소실되는 곳이 바다가 있는 곳이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도 그 쪽에 있다.멀지 않은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