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골에 정자가...
온통 행초서라 읽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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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관련된 글을 인터넷에서 보게 되어 옮겨 봅니다.2015.01.08 목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APSUN@sjbnews.com 2014년 09월 15일 (월)
청계정은 정읍 산외버스터미널에서 북쪽 방향인 김계남장군묘소 표지판을 보고 동곡마을을 지나 지금실로 가다 임산배수의 조건이 갖주어진 좌측 산에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앞에는 관리소가 있으나 지금은 많이 무너져 정리가 필요한 상태이고, 청계정 앞 시냇가에는 암각서가 많은데 바위를 다음은 후 계원들이 일필휘지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1933년 계유에 각한 동석 박형래의 석불언(石不言) 일우 박용래의 여석(如石:전서) 남계 강홍수의 세이(洗耳) 귀사 조서귀의 제루(除累) 백촌의 지만(志滿) 불온재 오지수의 삼기(三奇) 소곡 강대창의 곡곡청(曲曲淸) 등이 전하고 있다.
청계정은 동초 김석곤을 비롯한 계원들이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너와집으로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식 기와모양이 나는 양철지붕으로 이어져 있다.
행초로 쓴 주련은 정자 기둥에 사방으로 둘러져 12개가 있으며 정면에는 정자의 주인인 동초 김석곤이 쓴 청계정 편액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안에는 많은 편액이 걸려있는데 청계정 계원들이 대부분 한점씩 시를 지어 걸었다. 대부분 계원들이 시를 직접 써 판각을 한 것도 있는 가운데 동초 김석곤의 글씨 몇 점이 보인다
청계정 우측에는 청계정비가 세워져 있다. 이는 계원 14명이 시사를 조직하고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전면에 청계정 계원들이 모여 정자를 세우는 내력을 적었는데, 글자가 전서 중에서도 허목 미수가 즐겨 사용했던 미수체로 썼기 때문에 해독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문자학적으로 가치가 있어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자세히 비문을 살펴보면 개구리 문양이나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글자들이 보이고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이 정자를 주도적으로 운영한 김석곤은 암각서를 많이 남긴 서예가이며 한학자이다. 김석곤(1874년∼1948년)은 일제강점기 유학자로 활동하면서 자는 천안(薦按)이고 호는 동초(東樵) 또는 눌어(訥語), 팔조거사(八糟居士) 등을 사용했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태인에서 태어나 활동했고 아버지는 김연추(金演秋)이다. 청계정의 기문을 보면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인 수당(秀堂) 김교윤(金敎潤) 찬한 글이 있어, 서로 교유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동초는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면서 바위에 글씨 새기기를 즐겨했다. 내장산 서래봉(西來峰) 불충암(佛充庵)의 뒤쪽 바위에는 내장풍악(內藏楓嶽), 정읍의 두승산(斗升山) 정상엔 수두목승(水斗木升), 칠보산(七寶山)에는 도불원인(道不遠人), 상두산(象頭山)에는 산명수류(山明水流), 백운대(白雲臺)에는 유수불부(流水不腐)라고 새겼다.
대형 암각서로는 정읍 태인면 녹동마을 세연암(洗硯巖), 상두산 밑의 유수불부(流水不腐), 부안 직소폭포 아래 봉래구곡(蓬萊九曲), 순창 회문산 정상 석굴 암벽의 천근월굴(天根月窟 전서), 김제 황산 문수사의 죽실암, 모악산 수왕사의 무량굴(無量窟) 등이 전하고 있다.
한가한 시간을 틈타 산외 한우마을에 가서 점심을 즐긴 후, 여유롭게 동학농민군 대접주 김개남장군 묘소와 암각서가 많은 청계정을 둘러보고 문화재로 지정된 김동수가옥을 탐방한다면 보람있는 하루가 될 것 같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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