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7차 중국여행 1/9일차(2015-04-11 토) 션양 청나라 고궁2

무논골 2015. 4. 12. 00:25

대정전 어좌,8개의 기둥에 각기 상서로운 동물을 조작하였다.

 

숭정전의 어좌,

 

숭전전 뒷쪽에 있는 봉황루,침실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침실은 지극히 소박하다.

 

 

비정(碑亭),1782~1783년 건립.

 

한어와 만어로 된 비석이다.

희대(戱臺),북경의 황제들이 동순하였을 때 연극을 관람하기 위한 시설이다.

 

태묘(太廟),직원이 퇴근하고자 막 문을 닫을 찰라에 좀 들어가 사진만 찍자하였다.

 

십왕전에서

 

청나라는 원래 만주족의 팔기군에서 시작한다.

그 8기를 전시해두고 있다.

 

팔기군이 갑옷과 투구를 한 모습

 

황제의 침실 근처 정원이라 할 수 있는 공간

 

곰 박제인가?

기억이 안나네.왜 찍었을까?

엄청 컸다고 생각은 드네.

 

팔기군

 

황제 가족들의 침실

 

돌산,가산(假山)

 

청나라가 산해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주족들이 수도를 옮긴 것을 설명한 그림

 

 

장학량 장군 구거

심양 고궁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걸어서 10분정도.

늦어서 안에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봉천 군벌 장학량이 상.

장학량은 시안에서 장개석을 감금하고 국공합작하여 일본을 몰아내자고 요구한다.장학량은 대만에서 1967년까지 가택연금 상태였으며

평가가 애매한데,중국(주은래 수상)에서는 만고의 충신이라고 한다.

 

봉천은 청나라때 지명이고 한족들은 심양으로 고쳐불렀다가 일본 관동군이 918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우면서

심양은 다시 봉천이라는 지명으로 불린다.한족 입장에서 봉천은 이민족이 지은 이름인 것이다.우리에게 익숙한 만주 봉천군관학교 어쩌고

하는 봉천이 바로 이곳 심양을 뜻한다.

 

심양에서는 고궁과 장학량 구거,훈허 강을 보고 11시반까지 시간을 때우다가 침대기차로 단둥으로 향했다.

심양 고궁 앞에서 과일은 바가지쓴 듯하고,장사처우떠우푸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