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충남 논산 윤증고택,노성향교,노성궐리사(2016-02-04 목)

무논골 2016. 2. 5. 23:24

숙종 때 윤증이라는 사람의 고택 앞 연못,

사진에 크게 보이는 곳이 노성향교이고,

운증 고택은 사진 오른쪽 소나무가 보이는 곳이다.


육군훈련소를 떠나 서울로 가는 길에 윤증고택을 들르기로 했다.



저 사람들이 보이는 왼쪽으로 대문을 들면 안채인데 후손이 살고 있다. 오른쪽으로 도드라진 건물이 사랑채이다.

 ㅁ자의 구조이다. 

사랑채에는 이은시사(떠날리 숨을은 때시 집사),도원인가(복숭아도 근원원 사람인 집가)라는 현판이 있다.



 밖으로 개방된 대청마루에 올랐다.


 마루는 사랑채 침실로도 통하고 안채의 마당으로도 통한다.



 사당채로 가는 길에 담넘어로 안채를 살펴봤다.

후손이 살고 계시기에 사적공간인 안채에는 발을 들이지 못했으나 궁금하였다.


 사랑채 축대 앞에는 가산을 만들었다.


 밖에서 본 안채의 모습,마루에 고서적이 가득하다.


멀리서 본 모습.가운데 사랑채가 도드라져 보이고 오른쪽 사당이고 왼쪽이 안채의 일부가 보인다.

배산임수 전형적인 풍수지리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오래된 독


느티나무 아래 오래된 독이 즐비하다.

음식 명가


 

고택의 입체도

명재 80세되는 1709년 지어진 고택인데 명재는 실제 이곳에 머물지는 않고 종종 내왕만 했다고 한다.


명재는 애초 송시열 등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정치적 입장 및 사적인 인연에 의해 송시열과 대립하게 되고

송시열은 서인 노론의 영수가 되고 윤증은 서인 소론이 되어 분파하게 된다.

윤증은 평생 나라의 부름을 받지만 사양하고 사림에서 상소와 편지로서 현실 정치에 참여한다.



윤증 고택과 나란히 있는 노성향교 


노성향교 안내문

향교는 관립학교이다.윤증 가문에는 바로 옆에 있는 이곳 관립학교인 향교에 자제를 보냈는지를 잘 알지 못하겠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4천평 대지 위 종학원을 지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갖춰진 종합캠퍼스이고 조선시대 과거급제자의 다수를 배출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별도로 이 종학원을 방문해봐야겠다. 


향교 


윤증고택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궐리사가 있다.

궐리사란 익숙하지 않은 이정표에 이끌려, 그리고 멀리서 보니 무슨 대리석 동상도 있어서 발길을 했다.

궐리란 중국의 성현 공자님께서 자란 마을이고,사란 사당이란 말이니까 공자님과 관계된 사당이리라.


 궐리사 


 권리사 설명문


 공자상과 4현상(안회사맹_안자,증자,자사,맹자)


공자상

공기 2560년 서기 2009년 9월 21일 봉안한 걸로 되어 있다.

동이후손들에게 전신 대리석상은 매우 낯선 문화이고 이와 같은 전신대리석상은 화하민족에게는 흔한 것이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이 궐리사의 5현상도 중국산동성에서 들여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