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0차 중국여행 2/14일 무한 황학루黃鶴樓(2017.5.15 월)

무논골 2017. 6. 11. 16:49

아침에 숙소에서 택시를 잡고 황학루로 갔다.

가로수가 고풍스럽다.


밀린 큰 길을 피해 골목을 요리조리 잘 간다.


근데 막힌 길에 다라랐다.

택시기사에게 괜찮다고 해줬다.


택시비는 10원이고

황학루 입장료는 2인 합쳐서 160원이다.


백운각白雲閣에서 바라본 황학루黃鶴樓.

하늘을 많이 잡은 사진이다.


저 너머로 연결되어 있는 다리가 장강대교이다.

장강대교 끝나는 그 쯔음 산이 귀산龜山이다.


장강대교 끝자락 오른쪽에 어제 오면서 봤던 청천각晴天閣이 있을 것이고

고금대도 거기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황학루 전면에 펼쳐진 모습 

저 멀리서부터 즉 서쪽에서 이곳 동쪽으로 걸어들어오면서 황학루를 감탄하면서 봐야 제멋일듯하다.


나는 택시기사가 맘대로 내려다 준 남쪽 매표소를 통해 들어와 구경을 했다.


매표소에서 입장하면서 멀리 보이는 황학루


황학루와 현판 

누구의 글씨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초천극목(楚天極目)이라는 뜻이 무엇일까?

초천은 양자강 중하류의 하늘,즉 초나라라는 뜻일테고

극목은 시력이 미치는 데까지 바라본다는 뜻일텐데...


운행구파(雲橫九派)

구름이 구파에 걸려 있다.

구파는 호북성과 강서성 구강(九江) 일대의 양자강을 말한다.


기탄운몽(氣呑雲夢)

기운이 운몽을 삼켰다.운몽은 무한 땅을 부르던 이름


이 현판 높은 곳에 황학루라는 현판이 있는데...그게 정면일텐데

난 그걸 촬영하지 못했다.



초천극목 아래에 있는 현판은 렴권건곤簾卷乾坤인가?

주렴이 하늘과 땅을 말아버렸다!



황학루 꼭데기층 내부의 그림과 조형물



 

황학루 현판 아래에 펼쳐지는 정경

아마 저 강을 너머 이쪽으로 들어오면서 보이는 황학루를 정면으로 보는가보다.


황학루(黃鶴樓)는 중화인민공화국 후베이 성 우한 시의 양쯔 강 강변에 있는 유명한 역사적 누각으로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중국 《강남 삼대명원》의 하나로 손꼽힌다.

1700년전 오나라 손권 군사적 목적으로 황학루를 세웠다는데 또다른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마치 한 마리의 황금빛 학이 날갯짓을 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강남 3대 명루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손꼽히는 황허러우는 층마다 보이는 풍광이 달라 다양한 면모의 창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역시 역대의 저명한 시인들이 이 명루를 보고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많은 시를 남겼다. 특히 이곳엔 이백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이백이 황허러우에 올라 시를 지으려다 최호의 시를 읽고, 이보다 더 뛰어난 시를 지을 수 없음을 개탄하며 붓을 던졌다고 하는데. 시의 신선, 시선(詩仙) 이백이 붓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황허러우 최고의 시는 과연 어떤 것일까.


昔人已乘黃鶴去,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複返,白雲千載空悠悠

晴川曆曆漢陽樹,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鄉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옛사람 황학을 타고 날아가 버리고, 이곳엔 황학루만 남았구나.

황학은 한번가고 돌아오지 않으니, 흰구름만 천 년을 멀리 떠가네.

한양수는 날갠 시냇가에서 빛나고, 앵무 섬에는 방초 가득하구나.

날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인가, 안개 피어나는 강 위에 수심 잠기네. 


황학루는 중국 역대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그 천하절경을 노래했다. 

역대 명사로는 최호(崔顥704-754),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772-846), 가도(賈島779-843), 육유(陸遊1125-1210), 양신(楊慎1488-1559), 장거정(張居正) 등이 문예를 뽐냈다.


황학루에서 바라본 보동정(寶銅鼎)과 그 너머 백운각


청나라 동치7년(1868년)에 옛 황학루 자리에 만들었으며,높이는 3.4m이고

아래부분 지름은 1.8m이고 두께는 4cm,무게는 2톤의 청동이다.




윗부분은 보병처럼 뾰족하고 아래부분은 연꽃 보좌이다.

광서10년(1884년)에 황학루가 화재로 타버리고 이것만 남아 있다. 


위에는 1982년 6월 22일 중국 공산당 호요방 동지가 9층으로 재건축중인 황학루를 방문하고 있는 사진이고

아래는 2005년 5월 17일 중앙정치국상위 하윤강이 황학루 방문하고 있는 사진이다.


현재 볼 수 있는 황학루 건물 자체의 역사성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내세우는 문화재라고 하는 스토리가 있어 무한을 방문하는 경우에 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비랑古碑廊과 모택동 사정詞亭


모택동의 글씨


각필정擱筆亭


이백이 붓을 던졌다는 고사에서 건물 이름을 지었다.

이백은 황학루에 와서 시를 짓고자 하였으나 최호崔顥의 시만큼 좋게 지을 수 없다고 하여 붓을 던졌다는 것이다.


 

昔人已乘黃鶴去,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複返,白雲千載空悠悠 

晴川曆曆漢陽樹,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鄉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각필정 맞은편에 있던 글씨였던듯한데...최호의 황학루 시이다.

아마 송나라 때 명필 미불의 글씨로 기억나는데...메모가 불충분하다.


미불 : 米芾,쌀미,작은모양비,우거질불,膝甲 필,나무더부룩할 패 fei가 아니고 fu로 읽는다고 baidu에 검색됨,처음보는 글자이고 처음듣는 인물이다.북송 서예가 


여행하다보면 미불의 글씨가 여기저기 참 많다.


 이태백의 글씨 "장관壯觀"


황학루는 북에서 남으로 흐는 장강에 이해 동서로 갈리며,동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고금대 근처 귀원사는 일부러 가지 않았다.

중국 여행중에 종교시설에 가서 만족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나의 편견과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에...


황학루 전경도



 


백운각에서 바라다본 남쪽.


아마도 신해혁명무창봉기기념관인 홍루紅樓일터인데 시간관계상 상세히 보지 못하고...

아마 그 일대 전체를 수의공원公園이라 하는듯하다.나중에 알고 보니....


다음 행선지인 황주의 동파적벽을 보기 위해 지하철 4호선을 타야한다.

그 지하철 수의역으로 가려다 옆눈으로만 봤었다.


수의역으로 한참을 가도 만나지 못하고...아침으로 음료수와 과자 9원어치로 요기하면서

그냥 마음편히 걷자하면서 또다른 역인 부흥로역에서 9시45분에 1인당 4원씩 주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무한역에 도착하여

철도 매표소로 이동하여 다음 여정을 위해 적절히 철도 예매를 해야했다.


무한에서     1232, 황강동에  1257     22원

황강동에서  1621, 무한역에  1724     22원

무한역에서  1825, 형주역에   2014   69.5원


철도 예매를 완료하고

황강으로 가는 약간의 여유 시간에 점심을 해결하였다.

무한에 오면 열간면熱幹麵을 먹어야 한다고 하여 열간면과 흑미죽黑米粥으로 점심(26원)을 해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