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0차 중국여행 1/14일 무한 고금대(2017.5.14 일)

무논골 2017. 6. 11. 13:55

이번 중국 여행은 10번째이며,14일 예정이며,아내와 둘이서만 한다.


내 고행은 피할 수 있으되

내 고행을 즐길 수 없으되

좀 편안한 여행은 될 것이다.


1인당 14,000원을 주고 인천공항가는 버스에 탑승하여

인천공항에는 11시 20분 도착하고

12시 25분에 비행기 탑승을 시작한다.


몇 시간 뒤 무한천하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덥고 습하다.


한국에서 여행 계획을 철저히 수립하였다지만

동서남북 분간을 할 수 없다. 


여행 책자에서는

'공항버스 광곡선 타고 1정거장 지나 민항신촌에서 하차,313m 상청공원 가서 

704번 타고 8개 정거장 지나서 하차~~'라고 안내된 것을 따라 해보려 했다.


실상은 공항 도착한 건물이 공항 구청사이고

사람들 발길 따라 밖으로 우~ 하고 나가서 2호항루(2號航樓,新廳舍)라는 안내판을 따라 조그만 걸으면

시내로 향하는 모든 차는 거기에 있는듯하다.


고금대(古琴臺) 어떻게 가느냐는 질문에 대충 조그마한 미니버스 같은 차량에 올랐다.

외관은 초라했으나 에어콘도 틀어주고 좀 기다려 현지 시각으로 16:00에 

시내 고금대로 출발했다.


버스비용은 22인민폐, 환율 170원으로 치면 3,740원이니 적당한 가격이고

어찌보면 저렴할 수도 있다. 


고금대 앞에 서 있는 남녀.


우리가 관람을 막 마치고 나왔고,문이 닫혀 있다.

우리도 겨우 십 여 분만 관란할 수 있었다.  

입장료 30원,돈 주고 입장하는 고금대 경내는 겨우 십 여 분 둘러봤으나

월호 가에서 여유롭게 맥주도 마시고 앞으로 펼쳐질 중국 무한(武漢) 여행에 대하여 생각도 가다듬었다.

  


고금대는 일명 백아대伯牙臺라고도 하며,

귀산龜山 아래 월호 가에 있으며,북으로 한수漢水와 연해있고 서쪽으로 매자산을 바라본다.

이 천 여년전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 백아와 종자기鍾子期 이야기가 전해 온다.


고금대 전경 그림

개방되지 않는 곳도 있는데 좀 퇴락한듯하다.


고산유수高山流水,높은 산 흐르는 물


백아가 고산高山의 정취를 담아 연주하니 나뭇꾼 종자기가 소리가 우뚝한 기상을 담았으니 큰 산과 같다고 알아보고

유수流水의 기운을 담아 연주하니 마치 흐르는 물과 같다고 감탄하였다 하니...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종자기가 있었다 하여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유래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산유수 앞 나무,중국인들은 지음수(知音)라고 이름을 붙였다.

설송을 심었는데 이곳의 영기를 받아서 한 나무가 두 가지로 갈라져 자라는데 백아와 자기의 감동적인 옛 이야기를

나타낸다고 적어두고 있다.ㅋㅋ 


고산유수 건물은 거문고를 배우는 학원이면서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다.


금대琴臺


이 기행문을 적는 동안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 금대 앞에서 주자는 지음본시고래희(知音本是古來稀)라고 읆었다는데 내가 그 원전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지음이라는 글귀를 써서 

신라의 최치원은 5언절구 한시 추야우중에서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이라고 읆었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외워오던 것이다.


감회가 깊다.


초인은 종을 숭상한다 ?

좌전 성공9년~

좌전 정공5년~

초나라에는 음악을 맡아 보는 관직이 있었는데...악윤이라 한다.

종으로써 성씨를 삼은 3인이 있었으니 종의,종건,종자기이다.

종은 성씨이고 자는 통칭이고 기는 이름이며~~


<장정명(1928~2006)> 초나라 전문가의 말씀 가운데..


고산유수高山流水  연주하고 있다.


동영상으로 고산유수 검색하면 다양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데

내 귀에는 고산도 모르고 유수도 모르겠다.


 

춘추시대 악관 종건


고금대 담장 너머로 바라본 모습

 

이 월호 가에 고금대가 자리한다.


고금대를 나와서 월호가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다가

호부항戶部巷으로 가서 저녁도 먹고 잘 곳을 찾으려 했다.


자전거가 비치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려 했으나

외국인은 핸드폰으로 인증이 안되어 탈 수 없었고

중국인 중년부부와 딸이 산책나와서 그들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결국 

자전거로 호부항 가는 것은 포기하고

그들의 안내에 따라 버스로 한수를 너머 호부항에 도착하였다.


고금대에서 장강대교를 걸어서 건너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ㅋㅋ 버스로 장강대교를 건너는 것도 한참 걸린다.

열린 차창으로 들이치는 바람도 선선하고 좋다.

점점 해는 지고 시민들은 강가로 몰려드는 형국이다.


장강을 버스로 건너면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전통 건물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청천각(晴天閣)이다.


武漢長江(우한 창지앙) : 남북 단절, 3500년전부터 번성,창장철교,밤에 장강을 건너는 맛,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이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6,300km.



내 핸드폰의 밧데리가 오래 남아 있고

인터넷만 잘 되었으면 여행이 참 좋았을텐데...


아직 어둠이 내려앉기 전에 호부항의 어느 귀퉁이.

호부항이란 호부라는 관청 거리라는 뜻이다.

옛날 호부에 물건을 대던 백성들읭 생산활동이 왕성했던 거리일 것이다.


호부항은 내일 가게 될 황학루黃鶴樓와도 가깝고

먹거리 투어하기에 좋다.


사실 음식이 입에 썩 땡기지도 않고,술마시는 것을 자꾸 자제시키는 아내도 있고...

좀 비싸다는 느낌도 있고 날씨는 후덥지근하고....다리는 피곤하고

어깨를 누르는 배낭의 무게도 있고

얼른 가서 쉬고 싶었다.


아내와 둘이서만 하는 첫 해외 여행이라 호텔을 골랐는데

삼성급인데도 외국인은 숙박할 수 없다하여 오성급 호텔로 무거운 걸음으로 가다가

어느 귀퉁이에 여관에 올라갔더니 그 곳에서는 외국인 중국인 가림에 대한 아무 개념없이

한국인인 나를 신기하게도 여기면서 환영해준다.


한글과 영어로 기재된 내 여권을 보고 숙박부에 어떻게 기재할 지 몰라 하길래

내가 일필휘지 한자로 숙박부에 내 신상을 기록하였더니 놀란다.




황소개구리....두 개에 15원이다.여행자의 기분으로 한 번 먹어봄직하긴하다.

충전기 30원,코코아주수 20원,우렁 15원,두리안 10원,물 1원,맥주 2원 

여관비 148원이다.



천하天河공항은 이 지도 기준으로 

장강 왼편 북쪽 쯤에 자리하고 있으며

버스를 타고 아래로 내려와 고금대를 구경하고...고금대는 북쪽은 한수이며 한수가 동쪽으로 흘러 장강을 만난다.

고금대에서 장강을 서에서 동으로 건너는 장강대교를 지나 항학루 호부항으로 간다.



<아래는 인터넷 검색 자료>


우한(무한, 중국어 간체: 武汉, 정체: 武漢, 병음: Wǔhàn)은 후베이 성의 성도이며, 중국 중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간단히 "한(漢)"이라 부르기도 한다. 징한 평원의 동부에 놓여있고 창 강과 한수이가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세 도시 우창, 한커우, 한양이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이다. 

우한은 "아홉 개 주의 통로"로 알려져있으며 많은 철로와 도로,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주요 교통축이다. 


1927년에 우한이라고 이름 지어졌고 인구는 약 910만명(2006년)이고 610만 명이 도시 지역에 거주한다. 

1920년대에 장제스의 반대편에서 왕징웨이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의 수도였으며 

현재 우한은 중국 중부의 정치, 경제, 금융,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 인식되고 있다.


(1) 역사

황피구의 반용성 유적에는 3500년 전의 은나라(상나라) 대 방국의 도읍이 보존되어 

장강 유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은대 도시 유적으로서 알려져 있다. 


진대에는 남군(南郡)에 속하였고, 한대에 강하군(江夏郡)이 되었다. 

진대에 무창군(武昌郡)으로 개명되어 강하현에 관청이 설치되었다. 지금의 우창이다. 

당시는 강북에 한양이 있어, 장강을 사이에 두고 같은 땅의 두 거리는 쌍성(双城)이라고 칭해졌다.


또한 삼국지의 맹장 손견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명대가 되어 우창과 한양을 아울러 우한이라는 이름이 시작되었고, 

또 상업도시로서 하구진(夏口鎭)이 발달했다. 하구는 후에 한커우(漢口)라고 개칭되었다. 


한커우는 1858년의 톈진 조약으로 개항되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이 연달아 조계를 설치했다.


청나라 말기 1853년부터 1856년에 걸쳐 태평천국의 난으로 공방이 계속되었고, 

1911년에 우창 봉기로 일어난 신해혁명이 발발했다. 

1926년 10월, 국민혁명군이 우한을 공략해, 한커우 시정 위원회, 우창 시정청 및 한양 시정 위원회가 성립되었다. 

12월에 우창, 한커우, 한양을 아울러 무한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식으로 결정되어 

1927년에는 우한을 수도로 하는 중국국민당 좌파의 왕조명 정권(우한 국민정부)이 성립되었지만, 

난징의 장개석 정권에 저항할 수 없었다.


(2) 지리

우한은 후베이 성의 중앙에 위치하고 동경 113°41′-115°05, 

북위 29°58′-31°22, 징한 평원의 동부 창 강과 한수이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도시권은 우창, 한커우, 한양의 세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일반적으로 "우한 삼진"으로 불린다. 

그래서 우한이라는 이름은 우창의 앞글자 "우"와 한커우, 한양의 첫글자 "한"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이들 세 도시의 통합은 1927년에 이루어졌고 이것으로 우한이 세워졌다. 이들 세 부분은 강을 건너 마주하고 있고 다리를 통해 연결된다. 북부와 중앙은 낮고 평평하며 남부는 구릉 지역으로 창 강과 한수이가 도시를 통과한다.


우한의 토지 면적은 8494.41 km2로 대부분이 평지이고 언덕과 많은 수의 호수, 웅덩이가 산재해있다. 

우한의 기후는 아열대성 기후로 강수량이 풍부하고 사계절이 뚜렷하다. 


우한은 답답할 정도로 습한 여름 날씨로 잘 알려져있고 이슬점은 종종 26℃ 혹은 그 이상까지 오른다. 

무더운 여름 날씨 때문에 우한은 난징, 충칭과 더불어 '중국 3대 화로'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봄과 가을은 대체로 온화하고 겨울은 시원하고 이따금씩 눈이 온다. 

최근 30년 동안 연평균 강수량은 1269mm였고 7월과 8월에 집중되며 

연평균 기온은 15.8℃-17.5℃, 무상일수는 211~272일, 연일조시간은 1810~2100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