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0차 중국여행 2/14일 무한 동파적벽(2017.5.15 월)

무논골 2017. 6. 11. 17:35

무한역에서 고속기차를 타고 황주의 동파적벽을 가고 있다.

12시 32분에 출발한 기차는 깨끗하고 빠르다.

애초에 황강동역까지 매표하였지만

황강서역에도 기차가 정차한다.

이래저래 생각해보니 황강서역에 내리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황강서역은 거의 모든 중국의 역사가 그렇듯 매우 크다.

그러나 주변에 건물들도 없이 그저 들판에 덩그렇게 새로 지어져 있다.

버스를 탔다.

시골버스다.

버스비는 둘이서 3원이다.

동파적벽에 간다고는 하는데 좀 도는듯하여 거의 30~40분만에 하차하였다.

택시비 9원을 주고 동파적벽에 도착하였다.

시간이 급하면 차라리 애초부터 택시를 타야 했었다.


동파적벽은 옛 황주성의 한쪽 성벽에 기대어 있다.

지금은 석벽 아래 호수가 큰 물줄기,즉 장강과 끊어져 있지만

예전에는 말그대로 뱃놀이를 하였고 

동파 선생도 그 뱃놀이 감흥을 글로 적었으니 적벽부라 한다.


입장료는 80원




적벽 안내도를 먼저 보여야 이해가 쉬울듯하다.

택시 기사는 우리를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남문 주차장에 내려주었다.


남문에서부터 어슬렁거리며 저 윗쪽 용왕산 쪽으로 거닐며 관람하였으며,

진행방향의 오른쪽이 황주성벽이 쭈욱 둘러져 있고,

우리는 황주고성 밖에 있는 것이다.



동파적벽 문물지역으로 올라서고 있다.


천고 풍류 소동파의 조상이다.


서하루(霞樓)


참 예쁜 이름이다.

노을이 깃든 누각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황주 4대 명루의 하나라고 한다.

산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고 있으며 해가 지면 저녁 노을이 누각에 붉게 비친다하여 얻은 이름이리라.

소동파는 이곳의 아름다음을 황주 최고라고 했다.


누각은 송나라 말엽에 훼손되었다가 명나라 때 다시 지었다가 훼손되고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송나라 건축 양식 3층으로 지어진 것이다.


정면 편액 서하루 3자는 근대 중국문학의 대가 모순茅盾 선생의 글씨이다.


나도 이 서하루 아래 그늘진 돌 의자에 앉아 

소동파 지은 시를 낭송하고 아내는 그걸 동영상으로 찍기도 하였다.




서하루 난간에서 선 여행자


북송 초기부터 "不登栖霞樓부등서하루,枉到赤壁遊왕도적벽유'라는 말이 있었으니 서하루에 오르지 않으면 적벽에 와서 잘못 논 것이다라는 뜻이다.


문학정(問鶴亭),원래 이름은 완월대(玩月臺

)라 하였다는데 자세한 메모를 못했다.


동파적벽은 당나라 이래로 줄곧 명승지였으며,李白、杜牧、王安石、范成大、辛弃疾、

陆游、袁宏道 등 역대 문인들부터 董必武、陈毅、胡耀邦 등 당과 국가 주요 지도자 및 일본 田边华、燕市听花 등도 와서 유람하고 诗词、楹联、匾额 혹은 붓글씨를 남겼다. 




동정춘색부(洞庭春色賦)도 사진으로 남겼어야 하는데 아쉽고

기타 여러 전각들과 정자에 대한 사진도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이곳에 왔던 나의 정취는 내 맘속에 얼마나 남아있으려나...


동정춘색부를 여행중 메모한 것은 며칠 후 동정호와 악양루를 방문할 계획이라서 소동파가 동정호의 봄 기운에 대하여 글을 지었다고 여기고 동정호에서 동정춘색부를 읊어볼 요량이었다.


동정호에 가서 동파의 동정춘색부를 읊지도 못했을뿐만 아니라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하여 해석을 봤더니 그게 아니었다.

동정춘색이란 술을 대접받고 지은 글이었다.


특히,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글씨가 멋진 행서체로서 일품이라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수련해보고자 한다. 


수선정(睡仙亭),

파선정(坡仙亭),

뢰강정(酹江亭) wine sprinking pavilion 

명현승적(明賢勝蹟)


程之桢의 글씨로 전적벽부가 걸려있다.1922년에 썼다.
程之桢은 清末民初에 黄州의 名士로서  字는 维周이고 江夏人이다..
저서로는 《维周诗钞》가 있다.
또한 초서 석각으로 《赤壁怀东坡先生诗》가 위 酹江亭 안에 있다는데 현장에선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我来不见横江鹤,公去飘然八百年。
终古飞涛悬断岸,一轮明月在青天。
熙丰事冷王安石,山水人怀李谪仙。
莽莽乾坤几壬戌,渔歌夏口渺秋烟。


전적벽부에 대한 아래 해석은 다음카페(http://cafe.daum.net/hwangtohuam/Qdyz/19)에서 

후암 선생님 올리신 것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 泛舟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임술지추 칠월기망 소자여객 범주유어적벽지하. 청풍서래 수파불흥.

임술년 가을 7월 열 엿세날에 나 소동파는 찾아온 손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서 노닐세, 맑은 바람은 천천히 살랑이고, 물결은 잔잔 하더라.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거주촉객 송명월지시 가요조지장. 소언, 월출어동산지상 배회어두우지간.

자 ! 이술 한 잔 받으시게, 그대는 시경 陳風장의 달 밝은 시를 읊조리고, 나는 시경의 관저장 사랑의 노래 부르리니, 이윽고 조금 있으니, 동산에 달이 솟아 올라 북두 견우간에 서성일제,


白露橫江 水光接天

백로횡강 수광접천

흰 이슬 물안개는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닿았더라.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 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

종일위지소여 능만경지망연. 호호호 여빙허어풍 이부지기소지.

한 잎의 갈대 같은 배를 가는 대로 맡겨 두어,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탄듯하여 그칠 데를 알 수 없네,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 飮酒樂甚 扣舷而歌之

표표호 여유세독립 우화이등선 어시 음주락심 구현이가지

바람은 훨훨 나부끼고,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歌曰: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가왈: 계도혜난장 격공명혜소류광 묘묘혜여회 망미인혜천일방

부르느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로 노를 깍고, 목련가지 다듬어 삿대로 삼아 물에 비친 달을 밀침이여,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쪽에서 바라보네.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객유취통소자 의가이화지 기성오오연 여원여모 여읍여소.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연 하는 듯,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蚊 泣孤舟之釐婦. 蘇者 秋然正襟 危坐而問客曰 :

여음요요 부절여루 무유학지잠문 읍고주지리부. 소자추연정금 위좌이문객왈 :

何爲其然也?

하위기연야?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게하고 외로운 배를 의지해 살아가는 과부를 울게하네.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客曰 :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객왈 : 월명성희 오작남비 차비조맹덕지시호?

손님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上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서망하구 동망무창 산천상무 울호창창.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하고 푸른데, 여기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치른 데가 아니던가?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於東也 舳艫千里 旌旗蔽空

방기파형주 하강릉 순류어동야 축로천리 정기폐공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감에,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가니,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었네.


시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시주임강 횡삭부시 고일세지웅야 이금안재재?

술을 걸러서 강가에 가서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일 진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麋鹿

황오여자 어초어강저지상 여어하이우미록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를 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고 있네.


賀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하일엽지편주 거포준이상촉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으지하니 아득히 넓은 바다의 한 알의 좁쌀알이구나.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애오생지수유 선장강지무궁 협비선오유 포명월이장종 지부가호취득

託遺響於悲風

탁유향어비풍

우리네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부러워하네. 나는 신선을 끼고서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오래토록 하다가 마치는 것을, 불현듯 얻지 못할 것임을 알고, 여운을 슬픈 바람에 맡기네."


蘇者曰: 客亦知夫水與月乎?

소자왈: 객역지부수여월호?

소자 말하되 "손님꺼서도 대저 물과 달을 아시오 ?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나 끝내 줄고 늘지 않으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 能以一瞬

개장자기변자이관지 칙천지증불 능이일순

무릇 변하는 것에서 보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 밖에 없으며,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자기불변자이관지 즉물여아개무진야 이우하선호?

변하지 않는 것에서 보면 사물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또,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구비오지소유 수일호이막취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월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한 터럭일지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而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이득지이위성 목우지이성색 취지무금 용지불갈

귀로 얻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나면 빛을 이루어서, 이를 가져도 금할 이 없고,이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樂 客喜而笑 洗盞更酌

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오여자지공락 객희이소 세잔갱작

이는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님이 기뻐서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르니,


肴核旣盡 杯盤狼藉 相與枕籍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효핵기진 배반낭자 상여침적호주중 부지동방지기백

고기와 과일 안주가 이미 다하고 술잔과 소반이 어지럽네. 배안에서 서로 함께 포개어 잠이드니,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네.


적벽지유락호(적벽지유락호)  

동파적벽을 나서는데 문지방에 위와 같이 적혀 있다.

적벽에 와서 잘 놀았느냐는 말이다.


핸드폰 빳데리가 부족하여 사진을 많이 남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참 잘 놀았다.


소동파의 아내는 없는 살림에도 술안주를 잘 내왔다는데

내 아내는 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사진을 참 잘 찍어준다.


동파적벽을 떠나면서 택시기사한테 20원 주고 황강서역으로 가자 했다.

되돌아가는 길은 참 편한 마음이다.

금방 와버린다.

버스 기다리는 것보다는 택시비 20원의 가치가 충분하다.


황강동에서 4시 21분에 출발하는 차를 

황강서에서 여유있게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한역에는 5시 24분에 도착하고

형주로 가는 기차는 6시 25분이어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무한역 채림기 집에서 먹은 저녁식사.

먹는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책자에 많이 소개가 되는 것이라서 사진으로 남긴다.


저 물고기가 무창어(무창어)다.잉어과에 속하는 물고리라는데 먹을만했다.

마오 선생이 좋아하며 황학루 근처 호부항에서 먹어봐야 하는 걸로 책에는 소개가 되었지만 기회가 없다가

드디어 무한을 떠나면서 맛을 보게 되어 이래저래 여행 구색은 갖추는듯하다.


오늘 남은 일정은 6시 25분에 무한에서 기차를 타고 기차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

8시 14분 형주에 도착하여 잠자는 것이 전부이므로

편하게 술도 한 잔 했다.


무창어와 쌀밥 25원

삼선두피(삼선두피) 10원

계화호미주(계화호미주) 5원  도합 40원어치 만찬이었다.


=================================================================

인터넷 검색자료


◈ 후 적벽부(後 赤壁賦) 


是歲十月之望, 步自雪堂, 將歸於臨皐, 二客從予過黃泥之坂.

시세시월지망, 보자설당, 장귀어림고, 이객종여과황니지판.

그 해 시월 망일(望日)이었다. 설당(雪堂)에서 나와 임고정(臨皐亭)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두 사람의 객(客)과 함께 황니(黃泥) 고개를 넘고 있었다.


霜露旣降, 木葉盡脫, 人影在地, 仰見明月, 顧而樂之 行歌相答.

상로기강, 목엽진탈, 인영재지, 앙견명월, 고이락지 행가상답.

벌써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뭇잎은 모두 떨어져 있었다. 대지 위에 어른대는 사람의 그림자, 

고개를 들어보니 둥두렷 밝은 달! 사위를 둘러보다 문득 즐거워진 마음에 걸으며 노래를 부르니, 객(客)들도 함께 따라 불렀다.


已而歎曰: “有客無酒, 有酒無肴; 月白風淸, 如此良夜何.”

이이탄왈: “유객무주, 유주무효; 명백풍청, 여차량야하.

그러나 잠시 후 탄식이 흘러나왔다. “귀한 손이 오셨건만 마실 술이 없구나! 

마실 술은 있다하되 안주거리 없구나! 하얀 달에 맑은 바람, 이리도 좋은 밤을 어인 수로 보낼까나”


客曰: “今者薄暮, 擧網得魚, 巨口細鱗, 狀似松江之鱸 顧安所得酒乎?”

객왈: “금자박모, 거망득어, 거구세린, 상사송강지로 고안소득주호?.

그러자 한 객(客)이 말하였다. “오늘 어스름 저녁 무렵 그물을 올려보니 물고기가 잡혔더이다. 

주둥아리 커다랗고 비늘은 잘디 잘은, 그 형태가 영락없이 송강(松江) 명물 농어와 닮았더이다. 헌데, 술은 어데 서 구한다지요?”


歸而謀諸婦, 婦曰:“我有斗酒, 藏之久矣, 以待子不時之須!” 於是, ?酒與魚,

귀이모저부, 부왈:“아유두주, 장지구의, 이대자불시지수!” 어시, 휴주여어,

復游於赤壁之下.

부유어적벽지하.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상의해 보았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영감께서 불시에 필요할 때가 있지 싶어, 오래 전에 술 한 말 숨겨둔 게 있지요.” 

그리하여 술과 물고기를 가지고 다시 적벽 밑으로 유람을 나갔다.


江流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曾日月之幾何, 而江山不可復識矣.

강류유성, 단안천적; 산고월소, 수락석출; 증일월지기하, 이강산불가부식의.

강물은 소리내어 흐르고 있었다. 절벽은 깍아 질러 천척(千尺) 높이로 솟아있었다. 

까마득한 산에 하염없이 작은 달, 줄어든 강물에 드러난 바위들... 

도대체 해와 달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강산(江山)이 변한 걸까.


予乃攝衣而上, 履巉巖, 披蒙茸, 踞虎豹, 登虯龍, 攀栖鶻之危巢, 俯馮夷之幽宮;

여내섭의이상, 리참암, 피몽용, 거호표, 등규룡, 반서골지위소, 부풍이지유궁;

蓋二客不能從焉

개이객불능종언.

나는 옷소매를 걷고 육지에 올랐다.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지나갔다. 포효하는 호랑이 바위, 꿈틀대는 이무기 괴목(怪木)위에 걸터앉아 보기도 하였다. 

이윽고 아찔한 나무 끝 송골매의 위험한 둥지 위에 기어올라가, 강속 어딘가 깊이 숨어있을 하백(河伯), 풍이(馮夷)의 용궁을 내려다보았다. 

두 객(客)은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劃然長嘯, 草木震動, 山鳴谷應, 風起水涌, 予亦悄然而悲, 肅然而恐,

획연장소, 초목진동, 산명곡응, 풍기수용, 여역초연이비, 숙연이공,

凜乎其不可留也.

름호기불가류야

휘- 익, 길게 소리를 질러보았다. 초목이 부르르 떨자, 골짜기 안에 산의 울림이 맴돌더니 

홀연 바람이 일어나고 물결마저 춤을 추었다. 나는 슬며시 슬퍼졌다. 

문득 숙연해져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시릴 정도로 맑고 차가운 느낌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反而登舟, 放乎中流, 聽其所止而休焉. 時夜將半, 四顧寂寥.

반이등주, 방호중류, 청기소지이휴언. 시야장반, 사고적료

몸을 돌려 다시 배에 올랐다. 강 한복판에 배를 띄우고 파도가 치는 대로 물결이 

멈추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때는 바야흐로 한 밤중, 사방을 둘러보아도 적막과 고요함뿐이었다.


適有孤鶴, 橫江東來, 翅如車輪, 玄裳縞衣, 戛然長鳴, 掠予舟而西也.

적유고학, 횡강동래, 시여차륜, 현상호의, 알연장명, 략여주이서야.

그 때였다. 저 동녘에서 한 마리의 학(鶴)이 강을 가로질러 날아오고 있었다. 

날개는 수레바퀴, 까만 치마에 하얀 상의를 걸친 듯... 꺼-- 억, 길게 울더니 내가 탄 배를 

스쳐지나 서쪽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須臾客去, 予亦就睡. 夢一道士, 羽衣翩僊, 過臨皐之下, 揖予而言曰:

수유객거, 여역취수. 몽일도사, 우의편선, 과림고지하, 읍여이언왈:

“赤壁之遊, 樂乎? ”

“적벽지유, 락호?

잠시 후, 객(客)들은 떠나가고 나는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우의(羽衣) 도복(道服)을 입은 

한 도사가 표표(飄飄)한 자태로 임고정 밑을 지나와서 홀연 읍(揖)을 하며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적벽의 노님이 즐거우셨소이까?”


問其姓名, 俛而不答. “嗚呼噫嘻! 我知之矣, 疇昔之夜, 飛鳴而過我者, 非子也耶”

문기성명, 면이부답 “오호희희! 아지의의, 주석지야, 비명이과아자, 비자야야 ”

그 이름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하, 그렇구료! 이제 알겠소이다! 지난 밤에 길게 울며 내 옆을 스쳐 날아간 그 학(鶴)이 바로 그대가 아니시오?”


道士顧笑, 予亦驚悟. 開戶視之, 不見其處.

도사고소, 여역경오 개문시지, 불견기처.

도사가 고개 돌려 빙그레 웃었다. 나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는 종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後赤壁賦

是歲十月之望﹐步自雪堂﹐將歸于臨皋。

二客從予過黃泥之。

霜露既降﹐木葉盡脫﹐人影在地﹐仰見明月﹐顧而樂之﹐行歌相答。

已而嘆曰﹕“有客無酒﹐有酒無餚﹐月白風清﹐如此良夜何﹗”客曰﹕“今者薄暮﹐舉網得魚﹐巨口細鱗﹐狀如松江之鱸。

顧安所得酒乎﹖”歸而謀諸婦。

婦曰﹕“我有斗酒﹐藏之久矣﹐以待子不時之需。

”於是攜酒與魚﹐復游于赤壁之下。

江流有聲﹐斷岸千尺﹔山高月小﹐水落石出。

曾日月之幾何﹐而江山不可復識矣。

予乃攝衣而上﹐履巉岩﹐披蒙茸﹐踞虎豹﹐登虯龍﹐攀棲鶻之危巢﹐俯馮夷之幽宮。

蓋二客不能從焉。

劃然長嘯﹐草木震動﹐山鳴谷應﹐風起水涌。

予亦悄然而悲﹐肅然而恐﹐凜乎其不可留也。

反而登舟﹐放乎中流﹐聽其所止而休焉。

時夜將半﹐四顧寂寥。適有孤鶴﹐橫江東來。

翅如車輪﹐玄裳縞衣﹐戛然長鳴﹐掠予舟而西也。

須臾客去﹐予亦就睡。

夢一道士﹐羽衣蹁躚﹐過臨皋之下﹐揖予而言曰﹕“赤壁之游樂乎﹖”問其姓名﹐俯而不答。

“嗚呼﹗噫嘻﹗我知之矣。

疇昔之夜﹐飛鳴而過我者﹐非子也邪﹖”道士顧笑﹐予亦驚寤。

開戶視之﹐不見其處。


念奴娇·赤壁怀古 苏轼


大江东去,浪淘尽,千古风流人物。

故垒西边,人道是 三国周郎赤壁。

乱石穿空,惊涛拍岸,卷起千堆雪。

江山如画,一时多少豪杰。

遥想公瑾当年,小乔初嫁了,雄姿英发。

羽扇纶巾,谈笑间樯橹灰飞烟灭。

故国神游,多情应笑我,早生华发。

人生如梦,一尊还酹江月。


大江之水滚滚不断向东流去,淘尽了那些千古风流的人物。在那久远古战场的西边地方,说是三国周瑜破曹军的赤壁。四面石乱山高两岸悬崖如云,惊涛骇浪猛烈地拍打着对岸,卷起浪花仿佛冬日的千堆雪。江山如此的美丽如图又如画,一时间涌出了多少英雄豪杰。

遥想当年的周郎名瑜字公瑾,小乔刚刚嫁给了他作为妻子,英姿雄健风度翩翩神采照人。手中执着羽扇头上著着纶巾,从容潇洒地在说笑闲谈之间,八十万曹军如灰飞烟灭一样。如今我身临古战场神游往昔,可笑我有如此多的怀古柔情,竟如同未老先衰般鬓发斑白。人生如同一场朦胧的梦似的,举起酒杯奠祭这万古的明月

这首词是公元1082年(宋神宗元丰五年)苏轼谪居黄州时所写,当时作者四十七岁,因“乌台诗案”被贬黄州已两年余。



 赤 壁 〈적벽〉

​ 두목(杜牧)

折戟沈沙鐵未銷 (절극심사철미소)

​自將磨洗認前朝 (자장마세인전조)

東風不與周郎便 (동풍부여주랑편)

銅雀春深鎖二喬 (동작춘심소이교)

부러진 창 모래에 묻혀도 쇠는 아직 삭지 않아

혼자 갈고 닦으니 전 왕조의 것임을 알았네

동풍(東風)이 주랑(周郞) 편을 들지 않았더라면

봄 깊은 동작대(銅雀臺)*에 두 미녀 교씨들 갇혔으리라.


*동작대(銅雀臺) 건안15년 210년 조조가 하북성에 세웠다.

두목(杜牧, 정원 19년(803년)~대중 6년(852년))은, 중국 당나라 후기의 시인이다. 

경조부(京兆府) 만년현(萬年縣, 지금의 산시 성 시안 시) 사람으로 자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樊川)이다.

만당 시기 당시(唐詩)의 섬세하고 기교적인 풍조에 비해 평이하면서도 호방한 시를 지었다. 그의 시는 풍류를 즐기기 위한 풍류시와 과거의 역사를 노래한 영사(詠史), 시사 풍자에 뛰어날 뿐 아니라 요염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럼에도 강건한 면을 모두 갖추어 때때로 리얼리즘을 떠나서 인상파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강남(江南)의 풍경을 그림처럼 표현한 〈강남춘〉(江南春)이 유명하며, 양주에서 풍류재자(風流才子)로서 지내덜 시절의 모습을 그린 〈견회〉(遣懷)는 현실을 벗어난 가상적이라는 시풍(詩風)을 반영하고 있다.

성당 시대의 시인 두보와 작풍이 비슷하며, 노두(老杜) 두보와 구별하기 위해 소두(小杜)라고도 부르며, 동시대의 시인 이상은과 함께 「만당의 이두(李杜)」로 통칭된다.

시인이 일찍이 황주 자사를 지낼 때 지금의 호북성 적벽시,삼국시대 싸움터 적벽을

유람하고 이 시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