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진지하고 당당한 신앙고백이며
멋진 설교라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밑줄 그엇던 것을 모아봤는데
저작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겠지?
400쪽이 넘는 분량을
겨우 3장으로 메모하였을 뿐이고...
혹시 이글을 보는 독자들은 유의할 것이 있다.
말그대로 글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것을 그저 모은 것이라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뜻과 달리
오해 해석하면 안된다.
원전을 앞뒤 맥락을 봐가며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데...
하물며...
도올의 로마서 강해
2017.12.6 수 ~2018.1.20(토) 0048
성경이 곧 하나님 말씀일 수 없다는 자각이 나에게 스며드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27ㅈ
영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곧 성경을 가르치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직면케 된 것이다.
나는 허혁 선생님과의 교감을 통하여 성서는 일차적으로 다양한 주석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냥 쌩으로 도통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다양한 주석서를 같이 읽기 시작했고,성서신학의 기본을 이루는 개념들을 해설한 사전류를 구비해놓기 시작했다.28ㅈ
신화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신화를 비신화화함으로써 그 의미를 살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볼트만의 주장이 나에게 쉽게 이해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유대인일까? 29ㅈ
예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유대인이 아니다.유대인Jews이라는 것은 희랍어 이오우다이오스Ioudaios,히브리어 예후디yehudhi에서 유래된 말인데,그것은 원래 이스라엘민족 12지파 중에서 유다의 후손들the tribe of Judah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유다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레아의 소생이며,유다족속은 본시 이스라엘 역사에서 별로 두드러지는 바가 없는 미미한 존재였다.사울의 왕국에서도 이 족속은 변방에 속했다.30ㅈ
솔로몬대왕의 치세 이후 이스라엘민족은 남북왕조로 완전히 분리되어 버린다(bc930년경)
우리는 이스라엘 남북분열왕조시대에 있어서의 북쪽 왕조를 보통 이스라엘왕국이라 부르고,남쪽 왕조를 유다왕국the Kingdom of Judah라고 부른다.유대인이라고 하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유다왕국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며,유다왕국의 지리적 위치 또한 유대평야에 국한된 것이다.
북조는 결국 불안정한 정국의 외교적 군사적 실책 끝에 bc 720년,건국 200여 년만에 앗시리아제국에 의해 멸망케 되는데,앗시리아제국의 피정복민의 이주정책은 매우 악랄하여 10지파의 흔적을 말살시켜버렸다.그나마 남쪽의 다윗왕 혈통을 계승한 유다왕국의 존속을 통하여 유다지파 중심(=시므온,베냐민)의 계보가 이어졌다.
예루살렘성전이 철저히 파괴되고(bc 586 or 587),예루살렘의 주민들은 송두리째 잡혀가게 되었다.이것이 소위 바빌론유치시대라 하는 것인데,35ㅈ
드디어 바밀로니아제국을 복속시킨 사건은 단순히 정치적인 신흥제국팽창의 한 과정적 사건이었을 뿐이며 이스라엘민족을 바빌론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의한 목적론적 구속사적 사건이 아니다.그리고 때마침 관용과 포용과 문무의 재능을 겸비한 위대한 군주가 바빌로니아제국을 멸망시키게 된 것도 그냥 ‘재수’일 뿐이지,이스라엘민족을 바빌로니아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야훼께서 기획하신 구속사적 성취가 결코 아니다.41ㅈ
역사는 어차피 事實이 아니라 史實이다.사실에는 해석이 함장된다.구약의 모든 예언적 기술은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후술의 문학이다.후술의 문학을 전술의 예언으로 둔갑시키고 결과론적 사건을 목적론적 성취로 기술함으로써 역사의 방향과 의미를 선민된 민족의 심장의 맥박으로 살아 춤추게 만든 그들의 구속사적 기술을 우리는 좀 흥미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43ㅈ
판소리 단가 호남가
주덕해와 같은 탁월한 민족지도자의 노력에 힘입어 조선민중들은 1952년9월에 성급의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성립시켰다.1955년 12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격하되었다. 83ㅈ
예루살렘은 빈터로만 있질 않았다.그곳에는 이스라엘전승의 정통적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사마리아인들이 장악하고 있었고,91ㅈ
사실 이스라엘민족의 이야기는 코딱지 만한 지역에서 일어난 매우 빈곤하고 약소한 부족의 이야기일 뿐이다.성서에 기술되고 있는 찬란한 솔로몬 성전의 고고학적 근거는 전무하다.96ㅈ
역사는 과거와 동일할 수 없다.그리고 과거는 오늘 우리에게 현존하지 않는다.역사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것이다.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5경 이외에는 어떠한 문헌도 바이블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97ㅈ
프로타고라스에게는 모든 도덕이나 법률은 단지 상대적으로 타당할 뿐이었다.그것은 그것이 속한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다.그러기 때문에 절대적인 종교도 있을 수 없고,절대적인 도덕도 있을 수 없고,절대적인 정의도 있을 수 없다.119ㅈ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는다.고린더전서 1:22
러셀 “멍청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가 듣는 모든 것을 그가 이해할 수 있는것으로만 환원시켜 버리기 때문이다.”146ㅈ
러셀 : 아퀴나스의 사상체계에 있어서 진정한 철학정신을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솔직하게 이성적인 논증을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계시로 후퇴하는 길밖에는 없다.결론이 이미 주어진 논증의 발견은 철학이 아니라,그럴듯한 특별한 구라,구호에 지나지 않는다.185ㅈ
수운 최제우1824~1864가 『천주실의』를 읽었다는 사실이다.그리고 그 논리의 황당함을 극복하면서 동학의 철저히 인본주의적 평등이론을 제시했으니,역시 체제 안의 유식자들보다는 체제 밖의 혁신적 사상가의 사유가 상식과 근원에 접근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187ㅈ
경주 가정리,수은 최제우의 묘.그가 태어난 동네
희랍비극이 말하는 운명이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의 죽음,그는 펠리클레스의 시대를 온전하게 산 사람이다.128ㅈ
그는 법정에서 변호를 하지 않고 시민들을 교육시키려 했다고 하는 자세가 아테네사람들에게는 영웅의 휘브리스(오만)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휘브리스는 헬라스사람들에게는 가장 불쾌를 자아내는 덕목이며 그것은 반드시 단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145ㅈ
왜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불리한 분위기에 휩싸인 법정에서 그다지도 거만한,고자세의,시민 전체를 훈도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을까?147ㅈ
이것은 곧 나의 노년의 피로가 시작되기 전에 나의 삶을 끝내는 좋은 방법이며,나의 친구들에게 부과될 짐을 덜어주는 좋은 방법이다.150ㅈ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묘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울의 왜곡이나 복음서기자들의 왜곡과 동일한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152ㅈ
결국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그가 소크라테스의 재판에서 느꼈던 억울한 느낌을 그의 철학적 의식공간에 투영하면서,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이 그의 철학적 역량대로 마음대로,독재적 방식으로 국가를 구현해나갈 수 있는 이상향을 꿈꾼 것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대차가 없을 것 같다.소크라테스를 히틀러로 만들오 놓은 셈이다.177ㅈ
예수의 일차적 관심은 사회의 구원이며 사회정의의 실천이다.사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소리도 들을 수 없다.하나님의 계시는 민중으로부터 온다.166ㅈ
(예수나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모든 권력층으로부터 배척,시기,질투,미움을 받는다.재판의 판결도
유능한 지도자의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동된 군중의 부당한 판결이나 요구에 의한
것이다.형법상의 저촉으로 사형이 내려진 것도 동일하다. 167ㅈ
단지 예수는 부활했고 소크라테스는 부활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다르다.아마도 근본적인 차이
예수는 젊었고 소크라테스는 70세의 원숙한 노인이었다는 데서 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167ㅈ
기독교의 대속代贖은 유대교적인,혹은 이스라엘민족의 전통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그것은
전적으로 헬레니즘의 전통에서 유입되어 들어온 것이다.167ㅈ
결국ad62년에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가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소집한 산헤드린에 의하여
정죄되었고 돌과 몽둥이로 쳐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벌어진 후에,예루살렘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그런데 반하여 바울의 교회운동은 날로 강성하여 갔다.그러니까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자처한 것도 결국은 예루살렘교회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한 방편일 수
도 있는 것이다.170ㅈ
크리스찬은 신약성서에 3번 나온다.아웃사이더들이 그리스도에 미친 놈들이라는 식으로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다. 196ㅈ
한번 성립한 종교적 구라의 권위는 이러나저러나 항상 장사가 잘되게 마련이다.201ㅈ
광개토대왕비문을 쓴 사람은 1차적으로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다는 신념이다.204ㅈ
성서의 내용도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시 당대의 사람들에게도 이해
되지 않았을까? 신화적 기술을 의미있게 만드는 세계관이 근대적 과정을 거치면서 다 붕괴되었기
때문이다.그 붕괴를 초래한 새로운 가치관을 우리는 과학science이라고 부른다.
볼트만1884~1976의 비신화화
갈릴리 지평위의 예수 226ㅈ
따라서 비신화화란 신화의 제거가 아니라 신화의 해석일 뿐이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자료가 객관적 역사적 인간 예수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 초대
교회의 키리그마양식자료일 뿐이라는 것이다.케리그마란 무엇인가? 218ㅈ
도올의 견해
첫째,구약이라는 문헌은 이스라엘민족 역사서는 아니라는 것.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비시5 6세기
유대인 제사장과 귀족들의 정치적 이념과 목표에 맞춘 하스모니아왕조를 지배한 가치관 개념의
투영이라는 것 229ㅈ
둘째,구약과 신약은 동시대(ad 70년이후)에 동시대의 문명적 사상적 패러다임에서 성립한 문헌들
이라는 것.구약은 유대인의 단결을 호소하기 위한 목적이고 신약은 인류전체의 구원을 외치기
위하여 율법의 구속을 파기한 보편주의적 문헌이다.230ㅈ
기독교인은 구약으로부터 재미,그 이상의 것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233ㅈ
셋째,인류지성사의 압축에 관한 것. 결국은 로마카톨릭교회가 건강한 예수운동의 소박한 민중
운동의 정신을 버리고 바울신학을 추종함으로써 신과 인간,교회와 회중의 관계를 수직적으로만
설정한 것이다. 문동환 교수 『예수냐 바울이냐』(삼인,2015년)
오늘날 기독교의 타락에는 바울의 종말론,부활론,주종관계의 설정,신의神義,의인론義認論,복종의
신앙론 등 대단히 전근대적인,매우 비민주적인 신관,인간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234ㅈ
바울의 파기가 곧 진정한 예수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기독교를 파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마는 기독교는 결코 파기될 수 없는 인류사의 엄연한 실세이다.234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는 근원적으로 예수와 바울과 복음서 기자들의 합작품이다.235ㅈ
大悟 고린도후서를 강독해나가던 중,사도 바울이 나와 똑 같은 관절염환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243ㅈ 한국신학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247ㅈ
지금 칠순이 된 이 나이에도 나의 무픞은 여전히 아프다. 247
예수가 죽은 지 불과 25년만에,로마제국 수도에 이미 교회조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태는 매우
심각하게 고려되어야만 할 사실이다.270ㅈ
바울은 우선 유대으로서의 구어인 아람어,그리고 고전적인 정통 히브리어,그리고 당대 세계공통어
인 코이네 히랍어에 정통했다.그리고 바울은 당시 로마세계의 통용어인 라틴어에도 정통한
것으로 보인다. 300ㅈ
바울은 할례문제는 복음의 본질에 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355ㅈ
바울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신앙을 만든 사람이다.368ㅈ
그 복음을 수용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사망 대신 영생을 얻는다.참으로 파워풀한 메시지라 아니
할 수 없다. 408ㅈ
유대교/기독교의 유일신론적인 편협한 가치관은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가 되기도 하지만,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배타와 독선의 주범이 된다.그 폐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474ㅈ
나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이것은 바로 무아無我의 실현이다.한국의 기독교
는 무아의 실천을 가르치지 않고 부활의 복락만을 가르쳤다.414ㅈ
전봉준은 해월이 정신적으로 닦아놓은 후천개벽의 토양을 전라도에서 활용한 사람일 뿐이다.그가
일으킨 정치혁명,폭압에 대한 항거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그러나 그를 남접의 대표인
양 바라보는 시각은 넌센스이다.해월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봤다.결국 1893년 9월 8일 전국
기포를 명한다.천명이다.충북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문바위골 418ㅈ
덕을 천하에 펴서 널리 창생을 구하는 것이 수운 선생님의 도이다.도를 빙자하여 폭력으로써
도인행세를 한다면 이것은 사문에 난적이 되고 국가에 난민이 될 뿐이니 玄機를 노출시키지 말고,
心急함을 삼가라고 계속 타이르는 통유문을 보냈다, 490ㅈ
유일신관이 진정으로 유일신이 되려면 그것이 인격적 존재자로서 실체화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데
있다.절대적 타자는 유일신이 될 수 없다.인격신이 되면 대상화되고 나의 분별적 개념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440ㅈ
(유대민족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을 바울이 지적한 이 논지는 향후 기독교화
된 서구역사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이 탄압을 받는 논거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454ㅈ
믿음을 가질 수가 없도록 완악하다. 470ㅈ
심약자는 심강자에 의하여 좌우지되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수대로 행동할 것이다.
送舊迎新 好時節 萬物苦待 新天運
四時長春 新世界 不老不死 人永春 2017.12.30 格巖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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