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를 앞둔 금요일에 이곳을 지나다가 사진을 남긴다.
해蟹유령전첩비 蟹 게 해
이정표를 보고 생소하다 싶었다.
마침 잠시 머물 시간은 되어 답사를 한다.
임진왜란 일어나고 육상에서 첫 승리가 해유령전첩이라는 것이구나.
해유령전첩비와 신각 장군 사당
신각 장군 사당
저 분들이 자랑스럽게 해유령전첩에서 대해서 설명해주신다.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산38 ~ 파주 광탄 고개길
해유령전승기공사적비
김명원 도원수,신각 부원수로 하여 한강에서 적을 물리치도록 했다.유도대장 이양원에게 도성 방어를 명하였다.
도원수가 진지를 벗어나고 방위군은 스스로 무너졌다.
부원수 신각은 유도대장을 따라 도성 북쪽 양주에서 군사를 수습한다.
아래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유남해)에서 다음 사이트에 올린 글을 옮겨온 옮
임진왜란 때 부원수 신각이 왜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한 곳. 경기도 기념물 제39호.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에서 파주 광탄으로 넘어가는 고개 길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39호.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蓮谷里)에서 파주 광탄(廣灘)으로 넘어가는 고개 길이다.
부근의 지세는 연곡리의 입구가 좌우로 낮은 산이 마치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 있어 산 위에 매복해 있으면 그 안으로 들어오는 적을 포위하여 섬멸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상으로 매우 주요한 지역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한강의 방어선이 무너지자 신각은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李陽元)과 함께 양주 산중으로 들어가 흩어진 병사들을 모으고 함경도병사 이혼(李渾)으로부터 지원병을 얻어 서울로부터 북상하는 왜군을 해유령 입구에서 적의 선봉 부대를 맞이하여 목 70여급(級)을 베어 큰 승리를 얻었다.
그러나 임진강으로 도망하였던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은 한강 패전의 책임을 신각에게 미루고 명령불복종죄로 무고하는 장계를 올렸다. 이에 우의정 유홍(兪泓)은 그 내용을 믿고 신각의 참형을 주창하여 양주에서 참살되었다.
뒤늦게 승전보를 접한 조정에서는 형 집행을 중지하기 위하여 선전관을 파견하였으나 형 집행 후에 현장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2,000여 평의 대지 위에 높이 106㎝의 화강암으로 된 사각 기둥의 전첩비를 세웠으며 기단(基壇)의 면적은 약 40평 정도이다. 또한 부근에 사당도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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