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족간에도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동행하기 어렵다.
아들과 오늘 광복절 여행을 약속하였다.
쉬는 날 그냥 집에 있는 것보다는 뭔가 움직이고 싶었다.
경기도 양주시~
이곳은 내 가계에서 중요한 묘역이 있다.
일전에 참배한 북창 선생 묘역과 같은 산에 있다.
양주관아를 품고 있는 불곡산 뒷편이 보이는 곳이다.
걷기 좋은 산림을 따라 한참 올라오니 커다란 소나무가 지킨다.
얼마나 오래된 소나무일까?
정민시 선생의 묘를 참배하지 못했다.
초행길이라 위치도 잘 알지 못하고....
여름 숲이 우거져 헤쳐가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와靜窩 선생
조용한 움집이란 뜻의 정와
정조가 비문을 적었다.1807년에 비와 비각이 세워졌다.
정묘(정조) 어필이라고 적혀 있다.
비문 뒷쪽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회숙(會叔). 정수곤(鄭壽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광겸(鄭光謙)이고, 아버지는 군수 정창유(鄭昌兪)이며, 어머니는 이산보(李山輔)의 딸이다. 숙부 정창사(鄭昌師)에게 입양되었다.
1773년(영조 4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부터 홍문관수찬·세자시강원필선을 지내면서 세손 정조를 보도(輔導)하여, 정조가 즉위하자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 뒤 호조참의·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규장각직제학·선혜청제조·수어사(守禦使)·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지내다가 1781년(정조 5) 예조판서에 올랐다.
이어 호조 및 이조의 판서를 거쳐 의정부우참찬 겸 선혜청당상에 오르고, 다시 형조 및 공조의 판서와 의정부좌참찬 등을 지내다가 1784년부터 죽을 때까지 평안도관찰사·병조판서·함경도관찰사·장용위대장(壯勇衛大將)·돈녕부판사 등을 차례로 지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홍국영(洪國榮)과 함께 발탁되어 한세상의 권력이 모두 돌아갔으나 끝까지 분수를 지켜 정조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정조는 시장(諡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증직과 시호를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가 즉위하여 벽파(僻派)의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金氏)가 청정하게 되자 사리사욕을 도모한 죄로 삭탈관직되었다. 뒤에 아들 정성우(鄭性愚)의 상소로 복관되어,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다음 검색을 통해 한민족대백과사전>에서 옮겨 적음
육이오전쟁으로 비각이 소실되고 비석과 비각의 주초만 남아 있던 모습
그나마 뭐라고 안내문이 손글씨로 적혀있다.
정와 선생 영정
온양정씨 대동보
비각 앞 한산한 계곡
물이 졸졸졸이다.
이곳에 온 흔적을 남긴다.
돌아오는 길에 같은 산록에 있는 온양정씨 가족묘원을 들렀다.
여름풀이 무성하지만 곧 추석이니 벌초하면 말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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