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4차 중국여행 9/15일차 남충시 랑중고성 3 (2019.4.12 금)

무논골 2019. 5. 1. 22:30

서문_오산성경_금병산_화광루


장비의 묘인 장환후사를 구경하고 서문쪽으로 가서 만난 성문으로

최근에 지은듯하다.


여행시에 이곳이 어떤 곳인지 메모는 없다.


한국에 와서 지도 검색하니 대략 태극루가 아닐까 싶다.

성문에는 징청澄淸이라고 적혀 있다.맑을 징,맑을 청


성밖에서 찍은 모습이고

성루에 올라가 볼 수 있다.


징청문 근처에 부두가 있다.

가격은 비싸지 않아 이용하여 가릉강 물살 가르며 강건너 오산에 오르고 싶었는데

배가 강건너로 가서 정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우광장犀牛广场에서 강변을 따라 마효계가릉강대교马哮溪嘉陵江大橋 방향으로 가다가

바라본 가릉강

강에는 수영하는 동호인들인듯하다.



犀 무소 서  1. 무소 2. 무소 뿔 3. 굳다 4. 날카롭다 5. 박씨

犀   [xī]  1.코뿔소 2.무소 3.굳다


哮   [xiào]  1.씨근거리는 소리 2.으르렁거리다 3.울부짖다

哮 으르렁거릴 효, 성낼 효   1. 으르렁거리다 2. 큰소리 치다 3. 천식 4. 사나운 짐승이 큰소리로 울부짖음 5. 해수병



강변을 걷는다.

강건너 오산으로 가는 길을 찾아......

강변 걷는 것도 좋기는 하다.


강너머 정자는 오산성경이고

오른쪽 적벽은 진병산이다.


노인 부부의 안내에 따라 오산성경으로 건너는 잔교를 찾아 부지런히 가봤는데 막혀있다.

수리중이었다.


강건너 백탑공원을 비롯하여 여러 군데를 갈 수 있는 나라시 청년과 흥정이 시작되었지만

단념하고 좀 걸으니 아침에 버스에서 내렸던 곳까지 걸어왔던 것이다.


힘드셨을 것이다.


버스를 탔다.

아침에 그 기사가 우릴 알아보시고 반가워한다.


이곳 랑중은 버스 정류장에 한글이 병기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지못했다.


17시 29분,

강 건너 곧 오산성경鳌山圣境에 도착한다.

75원


“不登鳌山,未游阆苑”

오산에 오르지 않으면 랑원에서 유람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을 어디서 들은 적 있어 구태여 오긴 왔다만......

내 관념으로는 그저 도교사원 하나 더 본 것에 불과하다.

옆 금병산의 조감도 너무너무 좋기 때문이다.


어쩐지...

징청문 앞 젊은이들은 내가 오산에 가려하는 것을 의아했는데

살짝 이해가 된다.


칠성지인가보다.

영벽이 물이 비키는 것을 연출한다.


칠성지를 지나 요지를 지난다.

요지는 신선 세계를 꾸민듯한데 내 사진으로는 남기지 못했다.

좀 촌스럽기도 하고



鳌山圣境·魁星祖庭


鳌山圣境仙道文化旅游度假区位于阆中古城之南,与古城隔江相望,为阆中山、水、城龙虎交会及阴阳合和之地;鳌山灵脉所钟,含英咀华,是观阆中风水四象和古城全貌的绝佳去处,西汉落下闳、唐朝袁天罡、李淳风等历代星象法家都曾居此占星望气。


山上供奉着“大成夫子魁星帝君”和“三界伏魔大帝神威远震天尊关圣帝君”,即魁星、关公文武二仙,故鳌山又名“二灵山”,旧时每年赴鳌山求魁星开智增慧、拜关帝赐福增财的信众络绎不绝。


游阆中,登鳌山,观阆苑仙境、品仙道文化、感天地灵气。



관성전关圣殿 (일명 한의궁瀚义宫)


关圣殿:又名瀚义宫,是供奉和祭祀关圣帝君的神圣殿堂,整个殿堂全木穿透结构,殿高10.9米,长24.9米,宽13.9米,是鳌山圣境建筑等级最高的一栋建筑,殿内供奉西南地区最大的关圣金身帝王像,神像高3.6米,腰围1.9米,祥云底座2.3米,重3.3余吨,为鳌山文武二仙之武仙。






관성제군


이 오성성경의 최고 경관인 규성루


奎星楼:又名翰天宫,为供奉魁星上仙的殿宇,始建年代不详。奎星,源于北斗七星斗勺四星,《史记·天官书》云:“斗为帝车、运于中央、临制四乡、建四时、均五行、移节度、定诸纪、皆糸于斗”,为天之精魂万物元神所藏之所,自古有“鳌山之巅拜魁星”之说。嘉庆十三年(1808)迁往城中修建了中天楼,后几经修复均被损毁,1988年再建四层琉璃塔楼,高36米。为阆中城南环山最雄伟壮丽的人文景观,登斯楼云山四合、江城如画、宛若仙山琼阁、玉宇洞天。


규성루에서 낭중고성이 한 눈에 보인다.

가릉강 잔교가 보인다.

저기로 걸어 건너는 맛이 솔찬했을 것인데 수리중이라 건너지 못해 아쉽다.


저 다리 건너 바로 버스 정류장이다.


오른쪽 즉,동쪽으로 보면 산위에 백탑이 보인다.


동청룡이 보이는가?

백탑이 좀 또렷하게 사진으로 남긴다.

동청룡을 뜻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북쪽인데

풍수상으로 북현무를 뜻한다.

북현무 형상이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북쪽을 아무리 봐도 현무가 보이지 않으니......

하기사 난 아직 풍수 시작도 안했으니


금병산이 있는 서백호 방향인데

구분이 정확하지 않다.


이따 올라갈 금병산

랑중고성 조감만 하려면 금병산만 가도 좋았을 것을......


금병산을 좀 가까이 찍어봤다.



광동성에서 온 남녀


순간 포착하여 본인에게 주면 좋을듯하여 찍었는데

나중에 말을 걸었지만 위챗 아이디를 묻지 못하여 사진 전달을 할 수가 없네.


관리인이 이제 문닫을 시간이라며 채근하여

아쉬워 되돌아보며 규성루 한 장 찍어본다.



阆中鳌山为何称为奎星祖庭關聖道場? 라는 주제로 설명글이 있어 그대로 옮겨 본다.

깊은 뜻을 아직 모르지만 장차 필요할지 모르는 재료들이니까......








오산성경에서 나와 바로 맞은편에 있는 금병산으로 갔다.


입장료 20원

산을 쉽게 오를 수 있는 관람차 마지막 운행한다하여 앞뒤 정황도 모르고 서둘러 승차 20원


바삐 서둘러 등에 땀이 베어 있는데 관람차를 타고 수목 우거져 시원한 길을 오르니 짧은 순간이나마

유쾌한 마음이 절로 인다.





관람차에서 내려 우선 본 것이 비림이다.

해는 져가고 앞서 가는 사람이 있어 마음은 급해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이 글을 찾아서 남겨본다.


장비가 글을 잘 썼다는 내용이다...


碑林为阆中文化的一个缩影,里面儒、释、道三教文化齐集,仙凡传说众多,让人叹为观止


:有佛教的观音碑,道教龟蛇玄武碑,吕洞宾之寿字碑,瓜皮诗碑和造型奇特、


寓意深长的魁星点斗碑,


竹叶诗碑,

而其中最为珍贵的当数张飞之立马勒铭碑:1985年,阆中人民于嘉陵江中打捞起一巨碑,上书“汉将军飞率精率万人大破贼首张郃于八濛立马勒铭”二十二个大字,原镶嵌在山崖上,采用阴刻,竖起四列,每列六字,后移至锦屏山碑林。







史籍有记载,张飞善书法:南北朝时代陶宏景的《刀剑录》说:“张飞新拜新亭侯,自命匠炼朱山铁为一刀,

铭曰:新亭侯,蜀大将也,后被东强杀之,将此刀入于吴。”这《新亭侯刀铭》,便是张飞所写的。


明代卓尔昌的《画髓元诠》载:“张飞喜画美人,善书。”可见张飞不但善长八分书,而且还喜画仕女图,张飞善长书法此说经各类书籍佐证,可知,并非空穴来风。同时,阆中还有“张飞三计胜孔明”之说,原来张三爷不但允文允武,且并非鲁莽之辈,也深知谋略之道。


张善子《上山虎》、《下山虎》:张善子,著名画家,是国画大师张大千的二哥,善长画虎,因画虎成痴,所以人称“虎痴”。 1923年春,张善子任阆中南盐场知事,曾在家中养两只小老虎,天天养虎、画虎,所绘之虎皆栩栩如生,威风凛凛。锦屏山当时有一道观,观主青松子道长为张善子好友,向他索画,张善子遂挥毫泼墨,完成了这两幅《上山虎》、《下山虎》,完成后,还各题诗其上,




其中《上山虎》诗云:


“眈眈虎视遍西东,瓜豆河山在眼中。

狮睡至今犹未醒,将来谁是主人翁”。



《下山虎》诗云:


“天地英雄气,只在此山中。

循环不可测,林暗草惊风”。


这两首诗,以虎的怒吼,表达了中华民族的觉醒和奋起抗争的精神以及伟大气慨,画虎和题诗,溶入张善子先生早期的爱国主义精神,体现艺术性和思想性的统一,可谓诗、书、画俱佳,青松子用两块峡石亲自刻成两块虎碑,至今线条清晰,保存完好,他的艺术成就和爱国思想与阆山阆水共存!


<인용 : http://www.alangzhong.com/ticket/park!info.htm?parkId=1100  (중국인) >



보령<낭중> 부문묘도



금병서원


위 두 작품처럼 중국에서는 그림을 석각으로 남기는 경우가 많다.



등비騰飛 [téng fēi] 날아오른다.


용이 날아오르는 게 아니고

내가 정말 날아오른듯 짧은 시간에 금병산 정상에 와 있다.


금병산에서 바라본 랑중고성과 가릉강

가릉강은 굽이 굽이 대략 남으로 흐르는데

때로는 동으로 때로는 서로 흘러간다.


지금 이 사진에서는 왼쪽 위 북쪽에서 흘러와서 랑중고성을 동으로 흘러가고 있다.

 

동으로 흐르는 가릉강은 랑중고성을 왼쪽에 남겨두고 북으로 흘렀다가 다시 남으로 흐른다.


                                                                                     !(화광루)

사진 오른쪽 잔교 너머 랑중고성에 우뚝 솟은 누각은 아직 가보지 않은  화광루인듯하다.


                                                                             !                                                          !

                                                                        (중천루)                                             (금병루,남문)



날이 저물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 다시 이곳을 찾으랴!!

이리보고 저리보고

배낭에 있는 과일을 먹으면서 여행자의 고단함을 즐겼다.


여행자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길을 떠나는 것다.

저 길을 걸어 내려간다.

한참 가다가 오른쪽으로 강변 방향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곧 어두워질텐데 안전한 여관으로 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과

조금이라도 여기저기 머물고 싶은 마음이 교차한다.


고색찬연한 계단을 올라가 본다.


당나라 시인 두보를 기리는 사당이다.



소릉 두보는 이곳 랑중을 몇 번 여행하고 랑중과 관련한 위대한 시편을 남겨서 여기 랑중에 사당이 있는 것이다.


두보 상과 랑수가


嘉陵江色何所似? 石黛碧玉相因依.
正怜日破浪花出, 更复春从沙际归.
巴童荡桨欹侧过, 水鸡衔鱼来去飞.
阆中胜事可肠断, 阆州城南天下稀.


가릉강 물색은 무엇과 비슷한가? 검은 먹과 푸른 옥 서로 뒤섞인 것이네.
어여쁜 태양 물결 헤치고 꽃 피우니, 더욱이 봄빛은 물가로부터 돌아오네.
파땅의 아이 노를 저어 옆으로 지나가고, 쇠묽닭은 물고기 물고 날아가 버리네.
낭중의 뛰어난 사적 장이 끊어지게 하니 낭주 성 남쪽 천하에서 드무네.

《낭수가(阆水歌, 가릉강의 노래)》  두보(杜甫)


번역인용 :  바얀사비BayanSabi 님의 블로그



랑산가阆山歌와 두보杜甫


7언 고체시




阆州城东灵山白,阆州城北玉台碧。 낭주성 동쪽 영산은 하얗게 보이고,낭주성 북쪽 옥대는 푸르다.
 松浮欲尽不尽云,江动将崩未崩石。산에 올라 보면 소나무엔 구름이 다할거 같은데 다하지 않은 구름이 떠 있고 

                                              산에 내려가 보면 가릉강엔 물결쳐 바위를 무너뜨릴 거 같지만 바위는 그대로이네.
 那知根无鬼神会,已觉气与嵩华敌。그 근본을 알 것인가? 제사를 지내도 귀신을 만난적이 없네.

                                              이 곳 제사지내는 기세도 중원의 숭산이나 화산과 필적하고 있네.
 中原格斗且未归,应结茅斋看青壁。중원지역 싸움질이고 아직 집으로 돌아기지 못하였기에

                                               응당 초가집이라도 만들어 청벽을 보아야 하겠지. 


번역 : 불초 졸인


<작품 배경>

广德元载(763年)秋天,寓居在梓州(今四川三台)的杜甫突然得到挚友房琯客死在阆中古城的噩耗,便星夜兼程赶赴阆中,吊唁并料理朋友的后事,并就此迷恋上了阆中的山光水色。杜甫第二次从梓州到阆中,是广德二载(764年)春。


杜甫的两次来阆,由于心境的巨大反差,一次因吊唁朋友,一次因迷恋阆中山水而喜游,所写的诗自然也反差巨大。他第一次到阆中所写的20多首诗歌,无论是山水诗、送别诗,还是遣怀诗,字里行间都浸润着深深的忧国忧民之情。诸如《征夫》《警急》《王命》等,都是带泪沾血之作。第二次杜甫在攀登城南锦屏山时,天高心远,写下了这首《阆山歌》。




두보 사당에 있는 금병산도


랑중고성


건륭황제 평시



송 장헌사


두보사를 지나서 장헌사 앞을 지나다 보니 장헌사는 이미 닫혀있다.


장헌은 남송의 장군으로서 날로 강성해가는 금나라에 대항했던 장군이다.

남송의 애국자 악비 장군과 함께 모함 받아 죽었는데

나중에 청나라 가경16년에  금병산록에 장열문후사張烈文侯祠 및 랑남교 부근에 장열문후고리비張烈文侯故里碑를

지었으며,1984년에 장헌사를 중건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남송시기 역사를 읽다보면 짜안하다.

 


장헌사를 지나다 보니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조형물이 나타난다.

춘절문화주제공원이라는 뜻인가 보다.


적응시 덕에 해가 진 뒤에도 어둡지 않던 길이 이젠 거의 깜깜해져있다.

일단의 중년 중국인 남녀 여남은 명이 우리에게 길을 묻는다.

정상까지 길이 머냐고?

우리는 관람차를 타서 쉽게 올라갔지만 지금 걸어 올라간다면 30분 이상 걸릴 것이고

오를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다고 답을 주었다.

우린 한국인이라 더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남진관고진을 거쳐 큰 길로 나오니 다시 오산성경 앞 버스 정류장이다.

삼륜차 아주머니가 호객한다.

발도 피곤하니 얼른 흥정을 마쳤다.5원



          !오산성경                     !남진관고진           !금병산                                             !(식당)


노을진 하늘과 오산성경,금병산                                                                                  

금병산 아래 약간 불빛 보이는 곳이 남진관고진이다.

여기도 관람하려면 입장료 꽤 비싼듯하다.


점심먹었던 강가에 다시 찾아가 저녁을 먹는다.

위 사진에서 강 오른쪽 파란불빛 근처일 것이다.

85원

음식점 이름은 영자~

상냥한 중년 부인이다.


숙소로 돌아와 카운터에서 이거저거 말을 시키신다.

노 부모와 딸이 여행온 것이다.

나는 통역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초醋에 족욕을 하고 있다.우리한테도 권하긴 했지만 우리는 하지 않았다.

낭중에는 보령초保寧醋, 장비 소고기[张飞牛肉], 발 담그는 식초[泡脚醋] 등이 유명하였다.

 

<아래 2019.4.13 금 아침> 화광루


이곳 랑중고성의 랜드마크인 화광루에 갈 기회가 없다가

이곳을 떠나면서 뒷걸음질로 잠시 틈을 내어 찾아봤다.



화광루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로 거리는 붐빈다.



화광루 기단은 5m 높이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그 위에 3층으로 목조 결구하고

지붕은 유리기와이다.





“三面江光抱城郭,四围山势锁烟霞”,세 곳 강빛은 성곽을 애워싸고,사방 산세는 연하를 감싸네.

宋朝诗人李献卿的《南楼》


높이는 36m

남북으로 아치형 문을 내어 사람이 통하는데

1933년 경 李先念이 지휘하는 红四方面军의 정치처 표어가 석각에 적혀있다는데 난 보지 못했다.


金玉麟《夜登华光楼》诗云:“春城天不夜,人语市如潮。”



애초 당나라 등왕滕王 이원영元婴이 만들었던 터에 다시 지었으며 수차례 중수하였다가

1983年 일신 정비하였다.


<기록 : 2019.5.26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