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4차 중국여행 10/15일차 광원시 천불애 (2019.4.13 토)

무논골 2019. 5. 1. 22:37

  "인용제한"

<아래 천불애 각 석굴,감실 및 부처님에 대한 설명은

  오류가 너무 많은듯하니 재인용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랑중고성 편안히 기상하여 

떠우지앙과 이어우티아오로 간단히 아침밥을 해결하였다. 8원


어제부터 랑중고성 화광루 구경을 못하고 떠난다는 생각에 좀 우울한듯도 하였는데

요령껏 잠깐 틈을 내 화광루에 들렀다.


랑중고성은 정말로 볼 것이 많다.고성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 참 볼 것이 많다.

이번 여행은 정말로 단 하루짜리였지만 풍수공부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와야하는 곳인가보다.


아쉽지만 랑중고성을 떠난다.


8시 25분 10번 버스를 탄다.4원

불과 10분도 안되어 랑중역에 도착한다.


버스타고 오는 길에 홍군기념관이란 이정표가 보였는데

한글로 되어 있다.



랑중역 9시 54분 출발하였다.


10시 8분에는 창계蒼溪역에 잠시 머물렀다.

한국에서 예매하기로는 랑중에서 창계역으로 갔다가 환승하는 걸로 했었다.


랑중역에서 광원역 직행이 매진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랑중역에 도착하자마자 광원가는 기차표를 알아보고 교환했었다.


기차가 북상하면서 여행자 눈에 들어온 것은 단층집이다.

10시 34분 무척 긴 터널을 지났는데 그때나 지금이 이름을 모르겠다.


랑중역을 출발하여 100km 북상한 기차는

광원역 10시 49분 도착한다.


<광원广元>에 대한 간단 정보


광원시는 사천성 관할 지급시이다.

북으로 감숙성 섬서성이 경계를 이루며

남으로 랑중고성이 있는 남충시와 이웃하고

서쪽으로는 시인 이백의 고향인  면양시와 접해있고

동으로는 이번 여행에 방문하지 않지만 파중시와 땅을 접하고 있다.


옛부터 조조의 위나라가 있는 섬서성에서 유비의 촉나라로 들어가는 중요한 곳에 위치하며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무측천의 고향이다.



广元市,四川省下辖地级市,北与甘肃省、陕西省交界;南与南充市为邻;西与绵阳市相连;东与巴中市接壤;处于四川北部边缘,山地向盆地过渡地带,属于亚热带湿润季风气候;全市总面积16314平方千米,下辖3区、4县;2017年户籍人口302.62万人。


广元市自古为入川的重要通道,是苴国故地,入蜀要塞,三国重镇,广元有着深厚的文化底蕴,特别是璀璨的红色基因代代相传。广元是先秦古栈道文化和中国蜀道文化的集中展现地、三国历史文化核心走廊、中国历史上唯一女皇帝武则天的出生地,也是原川陕苏区核心区域,是红四方面军后期首府地、西部战争主战场和长征出发地。


截至2016年,广元市辖利州、昭化、朝天3区和青川、旺苍、剑阁、苍溪4县,91个镇,139个乡,9个街道办事处,2430个村民委员会,16559个村民小组。  广元市人民政府驻地利州区人民路北段24号。



苴  [jū]  싸다

苞苴 [bāojū] 포저 1.부들 잎으로 엮어 만든 그릇 2.선물 3.예물

苴 속창 저, 거친거적 조, 마름 차, 두엄 자, 얕볼 사, 나라이름 파, 깔 저, 물 위에 뜬 풀 차, 두엄풀 자, 절인 채소 조  
 



                                             !

                                        (황택사)

광원역에서 흥정하는 사람들 뒤로 하고 걸어서 서(오른쪽)에서 동(왼쪽)으로 강을 건넌다.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달라붙진 않는다.


지금 황택대교를 걷는다.

바라보는 쪽이 남쪽인데 저 산 어디쯤에 황택사경구일 것이다.

황택,황제의 은혜로운 혜택? 여기서 황제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 당나라 측천무후를 말한다. 


* 이번 여행에서 황택사 방문하지 않는다.


가릉강 너머 동산에 높은 탑이 있는데 봉황루이고 봉황산공원인듯싶다.

탑이 고전적인게 아니라 기하학적으로 특이하게 생겼다.


* 이번 여행에서 봉황루 방문하지 않는다.



황택대교를 서에서 동(오른쪽)으로 건너며 북쪽 천불애 방향을 바라본 모습이다.

사진 오른쪽 끝 부분에 버스를 타고 강변을 타고 쭈욱 북으로 가서 천불애 구경하고

다시 더 북상하여 명월협까지 갔다. 


11시 20분,점심먹기는 이른 시간이지만 배는 고팠다.빵을 샀다.

천불애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우직우직 먹었다. 


버스 맨 앞에 앉아 풍광에 취해 여기저기 보는 새에

순식간에 천불애를 지나칠뻔했다.


천불애 입장료 50원


사진에서 보이는 천불애 일주문 아닌 일주문을 지나서 쭈욱 북으로 가면서 석벽에 새겨진

천불을 구경하면 되는 것이다.


가릉강은 지나가는 방향의 왼쪽에 펼쳐 있고 천불은 오른쪽에 있다.


천불애에 있는 관광 안내도

천불애_명월협_조천구가 북으로 있고

소화고성_검각현의 검문관_취은랑이 남으로 있다.


천불애 마애조상은 광원성 북쪽 4km,가릉강 동안 및 금우고촉도상에  있으며,북위 시대에 만들기 시작하고 당나라 때 가장 흥성하였다.오대와 청대에도 일부 조성되기도 하였다.


굴함 1192개와 70000여 존상이 남아 있다.당나라부터 청대까지 역대로 제각 118점,천불애 시가 30여 수가 있고

사천지역에서는 가장 큰 석굴군이다.



千佛崖摩崖造像位于广元城北4公里,嘉陵江东岸,金牛古蜀道上,历史悠久,雕刻技艺精湛。


精湛 [jīngzhàn]  1.정밀하고 깊다 2.깊다 3.심오하다



湛 즐길 담, 가득히 찰 잠, 잠길 침, 장마 음, 담글 침, 괼 담, 맑을 잠, 담글 점, 장마 임 


石窟始凿于北魏晚期,兴盛于唐朝,止于清代,历经千年,从而形成一座佛崖长近388米,高45米,造像950余龛, 7000余尊的佛教石刻艺术宝库。佛龛层叠分布,密如蜂巢,是四川规模最为宏伟的石窟群。



1961年被国务院公布为第一批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是剑门蜀道国家级风景名胜区重要组成部分,也是世界文化遗产预备名单中国蜀道金牛道——广元段的核心遗产点 ,2012年创建为国家4A级旅游景区。


千佛崖摩崖造像始于北魏时期,历经了近1500年,在高45米,南北长388米的峭壁上,布满了造像龛窟,重重叠叠13层,密如蜂房。据清咸丰四年(1854年)碑文记载,全崖造像达“一万七千有奇”。


可惜在1935年修筑川陕公路时,一半以上造像被毁。 现仅存龛窟950 余龛,大小造像7000余尊。全崖造像以大云洞为中心,分南北两段。


<조성 배경>


唐天授元年(690 年),武则天正式登基时,白马寺法明和尚薛怀义等12名和尚为迎合武则 天当皇帝的需要,撰写《大云经》呈武则天。《大云经》中称武则天是弥勒佛降生,应代替李唐做皇帝。武则天看后大喜,亲笔 作序,颁布于天下,且令各州要营州,当地百姓就在千佛崖造大云洞,并且刻了这 尊弥勒佛立像和后壁龛中二圣——高宗李治、武则天。按中国传统应男左女右,而该二圣的排列是女左男右,佛龛男高女低,这 体现出设计者的巧妙构思。



108번 국도가 이 천불애 뒷쪽에 남에서 북(왼쪽)으로 지나가가고

천불애 앞에는 가릉강이 북에서 남(오른쪽)으로 흘러간다.


우리 접근로는 쪽문 느낌이 나는 오른쪽 남문이지만

예전에는 가릉강에서 배에서 내려 대운사를 참배하고 천불애를 참배하는 길이 멋졌을거같다.





대운사는 북위말에 창건하고 초명은 백당사柏堂寺였다.

당나라 때 무측천이 황제가 되고 전국 각주에 대운사를 세우게 하였는데 이 절의 이름도 대운사로 바뀐다.

현존 불전은 청 건륭19년 1754년에 광원현령 장갱모張謨가 물자를 출연하여 지은 것이다.


赓 [gēng] 1. 계속하다 2. (Gēng) 성(姓) 3. 연속하다

赓酬 [gēngchóu] 시를 지어서 서로 주고받는 것

赓续 [gēngxù] 계속되다

賡 이을 갱  1. 잇다 2. 갚다 3. 계승함 4. 보상(補償)함


이쁜 짓~

누구의 애인인가?


대운사 부처님


금불이 아니고 소박하니 참 예쁘게 앉아계신다.


이쁘게 앉아 계신 부처님의 섬세함은 느낄 재주가 없으니 그냥 얼른 지나쳐 왔는데

알지못하는 유적이 있다.




세상에나 저게 전부 나한상이었다.


지붕 아래 쌓여 엉켜 있는 것이 또다른 부처님인 나한상이다.


명나라 때 천불애에는 나한사가 있었는데 민국초기에 훼손되었다.

절에 있던 석각 나한상은 1935년 섬서성과 사천성을 잇는 도로 공사하는 중에 많이 묻혀버렸다.

2010년 4월에 고고학적 발굴 출토하여 여기 20여 존을 보존하고 있다......


窖   [jiào] 1.지하실 2.땅굴 3.물건을 저장하다

窖   움 교, 부엌 조  1. 움  2. 부엌 3. 움집  4. 구멍 5. 깊다



위 사진에서 나한상 앞에 빈 땅은 그저 빈 땅이 아니라 옛날 도로이다.


금우도金牛道라 불리는 도로 흔적이다.

도로는 흙길이 아니고 돌로 포장을 했던 것이다.

이런 도로라는 게 제국 통치의 혈관이었겠다.






석란교에 대한 설명인데 어느 것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옛 다리가 1935년 도로공사하면서 묻혔다가 다시 발굴하여 보이고 있다는데 어느 것을 말하는지 인식을 못했다.


위 설명문 바로 위의 석성벽같은 것을 말하는지

그 위의 울퉁불퉁 도로를 말하는지 알 수 없네.


대운사와 금우도 및 석란도 유적을 지나서

이곳의 주 경관인 천불애를 둘러볼 것이다.


(바이뚜 받은 사진)




천불애


무수한 부처님이 그저그렇게 쭈욱 보이고 내겐 변별력은 없지만

이렇게 나마 부처님 모셔야 마음이 편했을 그 선인들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무심히 흘러가는 가릉강을 바라본다.


천불애에서 남긴 내 모습

남북 400 여 미터 및 높이 45 미터의 깍아지른 절벽에 천불애는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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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수한 부처님마다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한제국이 망하고 삼국시대를 거쳐 위진남북조로 이어지는 몇 백 년의 전쟁 및 정변의 시기에 백성들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 꿈이 이 부처님 얼굴에 소망으로 나타났을까?

이 부처님 만드느라 허리가 더 휘었을까?

이 부처님 만드느라 받은 일당으로 가족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었을가?


마애 (磨崖) [명사] 석벽에 글자나 그림, 불상 따위를 새김


왼쪽(서쪽)엔 가릉강이 흐르고

저 앞쪽(북쪽) 산너머에는 명월협으로 하여 위나라가 있던 섬서성으로 통한다.


 

오밀조밀한 부처님도

큼직하고 미소년같은 부처님 계시며

유적 관리를 위한 아라비아숫자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석굴마다 나름의 이름들이 있다.


대운고동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大佛洞、莲花洞、牟尼阁、千佛洞、睡佛龛、多宝佛龛、接引佛龛、供养人龛、神龙大佛、如意轮观音、单身佛窟等이 있고


북쪽에는 三世佛龛、无忧花树窟、弥勒佛龛、三身佛龛、节行僧龛、菩提瑞像窟、伎乐天人窟、地藏 王龛、力士龛、卢舍那佛龛、十一面观音像、阿弥陀佛龛、飞天窟、清代藏佛洞 등이 있다고 하지만


석굴 감상하고 참배하면서 낱낱이 이해하고 메모하여 사진마다 이름을 남길 역량은 되지 않았다.


全崖造像以大云洞为中心,分南北两段。南段龛窟有:大佛洞、莲花洞、牟尼阁、千佛洞、睡佛龛、多宝佛龛、接引佛龛、供养人龛、神龙大佛、如意轮观音、单身佛窟等;北段龛窟有:三世佛龛、无忧花树窟、弥勒佛龛、三身佛龛、节行僧龛、菩提瑞像窟、伎乐天人窟、地藏 王龛、力士龛、卢舍那佛龛、十一面观音像、阿弥陀佛龛、飞天窟、清代藏佛洞等。


바이뚜에서 받은 사진 : 모니각牟尼阁,수불감睡佛龛






바로 아래 사진 몇 장은 당나라 초기에 개착한 것으로 보이는 북대불굴이라는 작품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받은 사진)


가운데 미륵불과 좌우 제자


미륵불

미륵불 키는 4m





미륵불 왼쪽 제자는 많이 훼손되어 있다.


아래 몇 사진은 대운고동에 모셔진 작품일 것이다.

당나라 초기 작품으로 구성되며 아미타불과 130여 존 연화대보살이 애워싸는데 서방정토 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는듯



大云洞居于千佛崖中心位置,规模最大,共计造像234 尊,左右两壁雕有148 尊莲花观音像,窟正中一大佛立像为弥勒佛。 据说该尊弥勒佛是武则天的化身像。唐天授元年(690 年),武 则天正式登基时,白马寺法明和尚薛怀义等12名和尚为迎合武则天当皇帝的需要,撰写《大云经》呈武则天。《大云经》中称武则天是弥勒佛降生,应代替李唐做皇帝。武则天看后大喜,亲笔作序,颁布于天下,且令各州要营造大云寺,以珍藏《大云经》。 因武则天生于利州,当地百姓就在千佛崖造大云洞,并且刻了这 尊弥勒佛立像和后壁龛中二圣——高宗李治、武则天。 按中国传 统应男左女右,而该二圣的排列是女左男右,佛龛男高女低,这体现出设计者的巧妙构思。


바이뚜 받은 사진






대운고동 불연을 강조한 비석


아래 몇 사진은 위항굴韋抗窟에 관한 것일 것이다.


당나라 개원3년 715년에 검남도劍南道 안찰사 益州 대도독부 長史 위항이 개찬하기 시작하였고

굴내에는 당 송 명 청 때 제게 20여 측이 있는데 천불애 내에서 제기가 가장 많이 보존된 곳이라 한다.











명나라 때 비석


천불애 북단에 있는 마애석불군인데......

여기에는 특이하게도 커다란 가림막을 설치하여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하였다.

가림막의 모습이 위 사진에서 살짝 보인다.

인터넷에서 찾은 가림막

청화대학건축설계연구원清华大学建筑设计研究院에서 풍화를 방지하고자 설치하였다고 한다.


천불애千佛崖는 여러차례 인재 천재에 의해 훼손되었다.


1935年 川陕고속도로 만들 때 반 이상이 훼손되고......당시엔 문화재에 대한 개념이 없었나 보다.

50~80年代 여러차례 수선 보호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2008年 문천汶川特 대지진 때 또 훼손되어

2009~2012年,다시 문화재를 손본다.


천불애를 구경하고 정문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북문쪽으로 갔다.

난 여행에서 원점 회귀보다는 직진을 선호한다.

멋지게 정원을 꾸며져 가릉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북문쪽에는 관광객의 출입이 많지 않은듯하다.


12시 31분

북문으로 나오자 그냥 공터와 버려진 땅이 나온다.지도에는 도로로 보이는듯하지만

운행하지 않는 못쓰는 도로 막혀 있는 도로이다.

그러나 왼쪽 가릉강을 가로질러 입체교가 힘차게 건설되어 있다.


옛날 수사반장이 사건 현장을 뒤지듯 잡초가 우거지고 건설 폐기물도 뒹구는

버려진 땅을 벗어나서 버스타는 곳을 만날 수 있었다.


가게 젊은 사장님한테 명월협 가는 길을 물으니 버스를 안내한다.

버스가 많다고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없다.

점심시간이라 그런가?


귤 13원어치와 물을 샀다.


덤프트럭 쌩쌩 달리는 가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귤을 먹었다.


가게 젊은 사장한테 명월협 가는데 적당한 택시비용을 알아본 뒤

택시를 잡아달라고 했다.친절하고 헌신적이다.


12시 57분,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니

80원에 조천구까지 가자고 했다.

조천구는 광원시 조천구로서 명월협이 있는 곳이다.


택시 안에는 건장한 중국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앞 좌석에 앉아 그냥 침묵을 지켰다.


산세는 점점 험해지는듯하다.

물도 깊고 산도 높다.

잘 닦여진 길을 달리던 택시는 도로 왼쪽으로 틀더만

잠시 시골길을 달리더만 여기가 명월협이란다.


이때가 13시 18분이다.

밥때가 지나가고 있다.


<작성일 2019.5.30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