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5차 중국여행 1/7일차 광동성 광주시 남월왕궁박물관 (2019.10.22 화)

무논골 2019. 12. 12. 21:49



남월왕궁박물관





이곳은 이름은 한나라 시대 이 지역에 있던 남월왕국에 관한 박물관이라고 오해할 수 있으나

실제는 남월왕국 뿐만 아니라 당나라 이후 5대시대 이 지역에 있던 남한이라는 왕국의 궁전도

같은 지역에 겹쳐서 발굴되고,이 두 궁전외에도 여러 시대에 우물터 등이 발견되어 전시되어 있다.


이 유적지를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서 정원에는 진나라 시대 배를 만들던 유적이 있는데 이 유적은 잔디로 덮어 놨다.

진나라 시대 배만드는 유적 말고도 남한국 궁전 1호,2호 터가 있다.


이 정원을 지나서 맞은 편에 썩 괜찮아 보이는 건물이 또 있는데 이 것도 같은 남월왕궁박물관에서 관할하는 곳인데

남월왕국과 남한왕국 및 이 지역 역사를 알 수 있는 대중 학술적인 박물관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음미해도 좋을 것인데 나는 서둘러 사진 몇 장 남기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이 글에서 남월이니 남한이니 하는 옛 나라 이름이 나오는데

네이버에서 검색한 것을 옮겨본다.


<남월南越,南粤>


남월(南粤)라고도 칭하며 베트남에서는 조조(赵朝)라고 불리는 왕조로 기원전 203~111 기간 지금의 광저우(广州) 판위(番禺, 번우)에 도읍을 두고 광둥, 광시 지역과 푸젠, 후난, 구이저우, 윈난의 일부 및 베트남의 북부를 지배하였다. 진시황이 7국을 통일한 후 영남 지역 즉 백월(百越)의 안정을 위해 B.C. 219년 진시황은 도휴(屠睢)를 주장(主将), 조타(赵佗)를 부장(副将)으로 삼아 50만 병력으로 4년여에 걸친 정벌을 실시하여 B.C. 214년 영남 전 지역을 평정하였다. 진시황은 이곳에 남해군(南海郡), 계림군(桂林郡) 상군(象郡)의 3개 군(郡)을 두었고 남해군(南海郡) 아래에는 박라(博罗), 용천(龙川), 판위(番禺) 게양(揭阳)의 4개 현을 두었으며 조타(赵佗被)는 용천현령(龙川县令)에 임명되었다.


B.C. 210년 진시황이 죽고 진2세(秦二世)가 즉위하였고 장기간의 폭정에 대한 진승오광(陈胜吴广) 등의 반란과 유방(刘邦)과 항우(项羽) 간의 초한상쟁(楚汉相争) 등으로 중원은 혼란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B.C. 208년 남해군위(南海郡尉)는 중병을 얻자 용천현령(龙川县令) 조타(赵佗)를 불러 중원으로부터 반란군의 침입을 막도록 지시하며 그를 남해군위의 직무를 대행토록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남해군위는 사망하고 조타는 요새를 수비하며 한편으로 진조에서 파견한 관리들을 살해하고 B.C. 206년 진이 망하자 B.C. 203년 군을 일으켜 구이린군과 상군을 병합하며 남월을 건국하고 스스로 남월무왕(南越武王)이라고 칭하였다.


B.C. 202년 유방(刘邦)이 서한(西汉)을 건국하며 중원은 대부분 평정되었으나 백성들의 생활이 매우 곤궁해져있어 유방은 남월에 대해 군사적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B.C. 196년 대부(大夫) 육가(陆贾)를 파견하여 조타(赵佗)로 하여금 한(汉)에 복속하도록 하였고 남월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한고조(汉高祖)가 내리는 남월왕의 인수(印绶)를 받고 형식적으로 번속국(藩属国)이 되어 이후 사신을 파견하는 등 교류를 실시하였다. 이후 B.C. 112년 말대 군주 조건덕(赵建德) 시에 서한과 전쟁이 발발하여 다음해인 B.C. 111년 한무제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93년간 존속하였다.


남월은 영남지구(岭南地区)의 첫 번째 봉건국가로 진조(秦朝)의 중원지구 통치자가 집권함으로써 중원의 정치제도와 생산기술이 낙후되었던 이 지역에 이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남월의 군주들은 한족과 남월의 개별 민족간의 융합 정책을 펼쳐 한문화 및 한자를 영남지구에 이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남월의 유적은 광둥 및 광시 지역에 분포하며 도성 소재지인 광저우(广州, 광주) 시내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현재 광저우(广州, 광주) 시내에는 남월국궁서유지(南越国宫署遗址), 남월문왕묘(南越文王墓) 등 4개소가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월 [南越]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2010. 8. 1., 황매희 편집부)


<남한>


중국 5대 10국(五代十國) 시대 10국의 하나로서 오늘날의 광둥성[廣東省]과 광시성[廣西省], 베트남 북부 등의 지역을 지배하던 나라이다. 917년 유엄(劉龑, 高祖 재위 917~941)이 광저우[廣州]에서 건국하였으며, 본디 명칭은 ‘대한(大漢)’이지만 다른 한(漢) 왕조들과 구별하여 ‘남한(南漢)’이라고 부른다.


남한(南漢)을 건국한 유엄(劉龑)의 선조는 아랍계라는 주장도 있는데, 할아버지 때부터 푸젠[福建]에서 남해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며 지방의 유력 세력으로 떠올랐다. 유엄(劉龑)의 아버지인 유겸(劉謙)은 당(唐, 618~907) 말기 황소(黃巢)의 난(875~884)이 일어났을 때 광둥[廣東]으로 옮겨와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워 봉주(封州, 지금의 廣東 封開) 자사(刺史)가 되었다.


유겸(劉謙)이 죽은 뒤 그의 아들인 유은(劉隱)은 당(唐) 말기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남해 무역으로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세력을 넓혀 점차 독립 세력화하였다. 당(唐)은 905년 유은(劉隱)을 청해군(淸海軍) 영남동도(嶺南東道) 절도사(節度使)로 임명했고, 당(唐)을 멸망시킨 후량(後梁, 907∼923)은 그를 909년 남평왕(南平王)으로 임명했다가 이듬해 남해왕(南海王)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유은(劉隱)이 죽자 동생인 유엄(劉龑)이 관작(官爵)을 계승하였는데, 그는 917년 번주(番州, 지금의 廣州)에서 스스로 황제라 부르며 ‘대월(大越)’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918년 한(漢) 왕조를 세운 유(劉)씨와 같은 성씨라 하여 국호(國號)를 ‘대한(大漢)’으로 바꾸었는데, 이를 후대의 역사가들은 다른 한(漢) 왕조와 구별하기 위해 ‘남한(南漢)’이라고 불렀다.


남한(南漢)은 남해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면서 광둥[廣東]을 중심으로 광시[廣西] 일대로 세력을 넓혔으며 베트남 북부까지 지배하였다. 그리고 5대 10국(五代十國, 907~979)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문관(文官) 중심의 정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941년 유엄(劉龑)이 죽은 뒤 제위(帝位)를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나면서 남한(南漢)의 국력은 점차 쇠퇴하였다. 유엄(劉龑)의 3남인 유분(劉玢, 殤帝 재위 941~943)이 황위를 계승하였지만, 943년 동생인 유성(劉晟, 中宗 재위 943~958)이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황위를 빼앗았다. 그는 한때 초(楚, 907~951)의 내분을 틈타 영토를 넓히기도 했지만, 환관들에게 정치를 맡기면서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가져왔다. 그의 아들인 유장(劉鋹, 後主 958~971)이 황위를 계승한 뒤에도 정치적 혼란은 지속되었다. 그 결과 남한(南漢)은 971년 송(宋, 960∼1279)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한 [南漢] (두산백과)



남월국 궁서 유지 소개글


검표하고 동문으로 들어서면 남월왕궁에 대한 소개가 보인다.

광주시 역사문화적으로 가장 빛나는  정화라고 소개되어 있다.




한무제의 한나라 때에 이곳에 있던 남월왕국과

오대시대 이곳에 있던 남한왕국이 이곳에 있었으며

이후 각 군현주부의 관서가 소재하여 광주는 영남지역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입장하려면 신원 확인하고 무료로 입장권을 받아와서

입구 검표원에게 제시해야한다.


* 현장에서 받은 소책자가 박물관 전모를 잘 설명하고 있어 올리낟.


성황묘 광장쪽에서 남월왕궁 궁원인 곡류석거터로 들어갈 수 있다.

정원에는 세 유적이 겹친다.진나라 조선건조터,남월궁 궁전,남한국 궁전




광주 고대 우물


남월왕궁 전시실

남한왕궁 전시실



남한국 궁전터 보호구역



만월형 수지를 둘러보고 있다.


1996년에 국무원 단위의 중요 문화재로 등록되고

2012년에는 세계문화유산 예비명단에 등록될 정도로 대단한 곳인가 보다.


南越王宫博物馆位于广东省广州市中山四路,保护面积约5.3万平方米,

是广东省唯一一处被列入国家“十一五”期间重点保护的大遗址项目。


1983年发现的南越国第二代国王赵眜之墓,保存完好,

是岭南地区发现的规模最大的汉代彩绘石室墓。


墓中出土文物一万余件,集中反映了两千年前岭南政治、经济和文化等多方面的内容。

南越王墓是中国二十世纪八十年代重大考古发现之一,1996年被列为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其中,《南越国遗迹》与《海上丝绸之路》入选中国世界文化遗产预备名单。


1988年正式对外开放的西汉南越王博物馆,建筑面积17400多平方米,

主要展示南越王墓原址及其出土文物。


博物馆还设有杨永德伉俪捐赠的陶瓷枕专题陈列和不定期的临时展览。

2004年入选国家AAAA级景区,

2008年被评为“国家一级博物馆”。

2018年9月,经中国博物馆协会决定同意南越王宫博物馆为国家二级博物馆。?



그저 이곳에 왔다는 정도만 느끼는 수준으로 얼른 구경하였다.


진가사에서 친구 양 군을 만나기로 했기에 시간이 늦으면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양 군이 기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진가사도 이곳에 와서 지나쳐서는 안될 곳인데

4시반경이면 매표를 중단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월국(bc203 ~ bc111)  시대 유물 곡류석거曲流石渠  만월형수지



渠 개천 거 

1. 개천(-川: 개골창 물이 흘러 나가도록 길게 판 내)
2. 도랑(매우 좁고 작은 개울), 해자(垓子)

 渠  [qú] 이체 佢

1.   인공 수로. 도랑. 

2.   성(姓). 

3.   형용사  문어  크다.





弯굽을 만  1. 굽다 2. (활을)당기다 3. 화살을 활시위에 메다
弯  [wān]  彎





一进曲流石渠遗址,我们便发现道路中间(我们脚底下)有一口年代久远的水井,这是元朝的水井。

曲流石渠东南有一座弯月形水池,发掘是池底出土大量龟鳖残骸。在博物馆内,我们首先可以看到许多石渠遗址。





곡류석거 바닥에는 돌을깔아 포장하였다.





남한(917~971)시대 우물



남한시대 우물




남한시대 배수 암거







각 시대별 계속하여 이곳에 건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대로 이곳이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남월국 시대 도로에 깐 벽돌



남월국 시대 배수 목암조



진대 목조 도랑 흔적



당나라 시대 묘표석


당나라 시대 묘표석





시청각실에서 발굴 당시 영상 시청



발굴이라고 하는 고고학적인 이론이 설명되어 있다.


운산雲山 주수珠水 양성羊城


운산은 백운산

주수는 주강

양성은 광주시 전설이다.


광주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이 있었다.



남월국 1호 궁전터에 상상으로 기둥을 세운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이 일대에 남월국 궁전과 남한국 궁전터가 혼재한다.


기둥을 세운 곳은 서한 시대에 있던 남월궁 궁전터이고


잔디깔린 곳은 당이 멸한 뒤 난립하던 5대십국 시대 남한국 궁전터이다.



나는 남월국 궁전터에 서있고

뒤로 보이는 잔디는 남한국 궁전터이다.


그 뒤에 보이는 박물관도 제법 괜찮다.





板瓦 [bǎnwǎ] 평(平)기와.
筒瓦 [tǒngwǎ] 반원통형 기와.



같은 영역에 뜻하지 않았던 박물관 또 구경

이곳 광주가 영남지역 이 천 년 역사의 중심임을 알 수 있었다.



남한국 1호 궁전 설명문을 읽고 있다.


여유로운 사람들

시간을 아끼는 여행자



무덤 앞인데...

남한국 덕릉 복원 묘실 앞이다.



아내는 묘실 앞인지 잘 모르고 배경의 기하학적 관심으로 날 거기 세웠을 것인데

별말없이 포즈를 취한다.




아내도 묘실 앞에서 한 장 찍어 달란다.


남한국 흥왕부

덕릉,강릉,소릉 위치도


황포군관학교와 멀지 않은 곳이다.

이번 여행에 황포군관학교 방문할 틈이 없다.






양성팔경 우물 경관


광주 고대 우물 문화



남한왕궁 소개





성城

장墻




월수산 북성벽과 진해루

이따 가보게 된다.






진시황이 7국을 통일한 후 영남 지역 즉 백월(百越)의 안정을 위해 B.C. 219년 진시황은 도휴(屠睢)를 주장(主将), 조타(赵佗)를 부장(副将)으로 삼아 50만 병력으로 4년여에 걸친 정벌을 실시하여 B.C. 214년 영남 전 지역을 평정하였다. 진시황은 이곳에 남해군(南海郡), 계림군(桂林郡) 상군(象郡)의 3개 군(郡)을 두었고 남해군(南海郡) 아래에는 박라(博罗), 용천(龙川), 판위(番禺) 게양(揭阳)의 4개 현을 두었으며 조타(赵佗被)는 용천현령(龙川县令)에 임명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월 [南越]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2010. 8. 1., 황매희 편집부)



남월왕국 궁궐 상상 복원모형


남월국 왕궁은 번우 도성 중북부에 있었다.

북쪽으로 월수산을 베고

남쪽으로 주강을 안고

동쪽으로는 궁원 구역이고

서쪽에 궁전이 있다.

기원전 111년에 한나라 공격을 받아 소실되었다. 



남월국 강역


와당에 만세라 써 있는 남월국 시대 유물


오대십국 전도

당이 망하고 반세기 가량

중원지역에는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 5개의 작은 왕조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출현하고

중원이외에는 오,남당,오월,초,민,남한,전촉,후촉,남평 및 북한 등 10개의 작은 나라가 분열하였으니

역사에서는 오대 십국이라 한다.




남월왕궁박물관에 가기전에 땅에서 나온 몇 가지를 그렇게 추천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오직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거라서 특히,후대에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서 의미있던 관람인듯하다.


남월국이 한무제에게 망하고 2년후엔가는 우리의 고조선도 한무제에게 망하게 된다.

아주 먼 신화에서나 있다고 느끼는 고조선이나 마찬가지인 남월국 유물을 보게 된 감회는 새롭다.


남한국에 대한 박물관도 찬찬히 본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서둘러 사진 몇 장 남겼지만

두 달이 지나니 그 때 감흥이나 간절함이 많이 사라져서 글로 남기기 참 어렵다.


한 시간 남짓 구경하고

14원 주고 택시타고 진가사로 넘어갔다.

진가사 구경하고 월수공원에 갔었으니

월수공원은 남월왕궁박물관에서 매우 가깝다.


시간이 있다면 시내 구경하면서 진가사까지 걷는 것도 좋으련만......


[작성일 2019.12.21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