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5차 중국여행 1/7일차 광동성 광주시 진가사 (2019.10.22 화)

무논골 2019. 12. 14. 21:35


   *여행하기 전 진가사에 대하여 조사한 것 :


    진가사(陳家祠) : 남방 건축의 보고  

    주소 : 中華人民共和国広東省広州市中山七八路陳家祠

    진씨 일가의 서원으로 알려진 이곳은 진씨서원(陳氏書院)이라고도 불린다. 광동성에서

    가장 크고 또 고대 건축물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총면적은 1만5천 평방미터

    이다. 그 안의 주 건축물은 사방형으로 ‘활오간, 심삼진(闊五間, 深三進)’이라는 건축군인

    데, 크고 작은 19동의 건축예술물이 모여 있다.

    이 건축물들 사이에는 정원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전체 건축물이 웅장한 만큼

    정원 역시 화려하며 고대미의 건축물과 더불어 남방의 특유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청(淸)나라 때인 188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894년에 완공되었고, 당시 세력을 떨치던

    진씨 자제들의 과거 준비와 가족의 중대사를 논의하는 등의 용도로 쓰였다. 남방식 건축양

    식이 잘 드러나 있고, 건물이 대부분 조각으로 이루어져 화려한 장식이 많은 것이 특징이

    다. 또한 박물관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고급 가구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오후 4시 무렵 진가사에 도착하였다.

사진 가운데 쯤 고목진 곳이 매표소이다.


진가사 정면


건물마다 지붕마다 온갖 형상이 만들어져 있다.


형상마다 기복하는 것이 있으련만

나같이 문외한은 뜻을 잘 모르겠다.


신선세계를 묘사한듯하다.

청나라 때 사당이니 유교가 기본이 되어 자제 교육이 목적인 서원에서 출발한 것이라

알고 갔는데 온통 소상으로 뭔가를 묘사하고 있으니 마치 조금 전에 봤던 성황묘를

가족 차원에서 재현한듯한 느낌이다.


이런들저런들

집안이 잘 되게 하라는 뜻이면 된다는 말인가?

 


진가사 전경 사진을 찾아서 붙여 본다.

그래야 계통있게 볼 수 있다.

중국에 가기 전에 이 사진을 먼저 찾아봤어야 하는데....






진가사 전경 사진


진가사 구경하고 나서 월수산공원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는 중에

자꾸 걸려오는 업무상 전화를 받고 있는 내 친구 양 군,

진가사 정청 앞 정문을 찍은 사진이라서 먼저 노출한다.


 

진가사 정청 앞 정문



진가사 정청 앞 정문에서


친해려려고 신세를 지려는 거였는데

친구가 너무 바쁘다.


친구나 바빠서 괜히 불렀나 싶기도 하고......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친구도 나를 위로 하려하고......

아무 일 아니다고......


진가사 구경에 앞서 다정한 척 사진 한 장 남긴다.


정청 정문에는 진씨서원이라 적혀 있다.



진씨서원은 속칭 진가사라 하며 광주시 중산칠로에 있다.

진씨서원은 1888년 청나라 광서제 1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6년만인 1894년 광서제 20년에 준공한

광동성 진씨 종족들이 공동으로 출연하여 만든 합족사라고 할 수 있다.


1894년 갑오년은 조선의 전라도 땅에서는 동학혁명이 기의하고 이로 인해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공주 땅 우금치에서 수 만의 생명이 사라져가고......


이런 와중에도 중국 광동 땅에는 거족의 기복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뭐 어쩌겠는가? 전쟁의 참화가 닥치기 전까지는 평온한 것을......


陈氏书院,俗称陈家祠,位于广州市中山七路。

陈氏书院筹建于清光绪十四年(1888),二十年(1894)落成,是广东省各地陈氏宗族共同捐资兴建的“合族祠”。


其建立主要为参与捐资的陈氏宗族子弟赴省城备考科举、候任、交纳赋税、诉讼等事务提供临时居所。

作为捐资的回报,这些陈氏宗族可以将其祖先牌位放到陈氏书院的神龛内供奉。


陈氏书院是广东规模最大、装饰华丽、保存完好的传统岭南祠堂式建筑,占地面积15000平方米,

主体建筑面积为6400平方米,由大小十九座单体建筑组成。

 

陈氏书院集中了广东民间建筑装饰艺术之大成,巧妙运用木雕、砖雕、石雕、灰塑、陶塑、铜铁铸和彩绘等装饰艺术。

其题材广泛、造型生动、色彩丰富、技艺精湛,是一座民间装饰艺术的璀璨殿堂。

 

21世纪以来,陈氏书院以“古祠流芳”之名两度入选“新世纪羊城八景”,被誉为“广州文化名片”,成为岭南地区最具文化艺术特色的博物馆和著名的旅游景点。  





정청에 서서 중청은 취현당을 바라본 모습


전청 앞 조벽

조각이 섬세하다.


전청에서 바라 본 취현당

진가사 핵심건물이다.


陈氏书院坐北朝南,主体建筑面宽、纵深均为80米,平面呈正方形,为中国“三进三路九堂两厢杪”院落式布局,由9座厅堂、6个院落、10座厢房和长廊巷组成,建筑面积达8000平方米。

院东新辟有1.7万多平方米的绿化广场。其整体结构布局严谨、虚实相间,厅堂轩昂,庭院宽敞幽雅。



전청과 취현당을 있는 회랑

 

회랑 위에도 온갖 조상이 새겨있다.







취현당


中进大厅聚贤堂为书院建筑的中心,是当年族人举行春秋祭祀或议事聚会的地方。

堂宇轩昂,庭院宽敞。梁架雕镂精细,堂中横列的巨大屏风,玲珑剔透,为木刻精品。


屋顶上的陶塑瓦脊长27米,全高4.2米,是清代广东石湾陶塑商号文如璧的作品。

堂前有白石露台,石雕栏杆嵌以铁铸的花卉等图幅。堂宽五间,27米,进深五间,16.70米。



用柁墩抬梁,设斗拱,21架6住出前后廊,属通堂木框架。后金柱正中三间装有12扇双面镂雕屏门挡中,两侧装设花罩。

堂前有月台,石雕栏杆及望柱均以岭南佳果为装饰,镶嵌铁铸通花栏板,色调对比鲜明,装饰华美,

突出了聚贤堂的中心地位。



中进东西厅面宽三间,14.05米,进深五间,16.70米。用柁墩抬梁,设斗拱,21架6柱山墙承檩,出前后廊。

后金柱正间装设4扇双面镂雕隔扇,后金柱次间和厅前后设通花隔扇。




취현당


취현당


취현당


취현당


취현당


취현당


陈氏书院由曾任翰林院等职的东莞陈伯陶等48位陈姓绅士倡议兴建,以“汉代太邱太祖”为始祖,凡广东各县陈氏宗族只需缴纳一定的金钱,均可以加入,并将祖先牌位放入陈氏书院供奉,宗族内的子弟到广州备考或办事时可入住陈氏书院。 




취현당


취현당 옛사진,위폐를 봉안한 모습


취현당 앞에서



후진정청


后进大厅三间是安设陈氏祖先牌位及族人祭祀的厅堂。

大厅面宽五间,27米,进深五间,16.40米。用瓜柱抬梁,21架5柱后墙承重,前出卷棚式廊。

厅后老檐柱之间装有5米高达7米多的木镂雕龛罩。


东西厅面宽三间,14.05米,进深五间,16.40米。用瓜柱抬梁,21架5柱山墙承檩,前出卷棚廊。

厅门为14扇通花隔扇。厅后亦装设木雕龛罩,但规模比大厅略小。


东西斋和厢房略为低矮,是当年书院教学读书的主要用房。

东西斋为单间,人字形封火山墙承檩。斋内用花楣、隔扇和落地花罩组合装饰。

后窗采用套色蚀花玻璃窗,斋前有一小天井,显得室内外格外清朗。




후진정청


후진정청


후진 정청 앞에서









연랑에서

회랑이나 연랑이나 같은 말인듯......














후원 담장



담장너머로 연접한 민가에는 온통 용수나무가 얽혀있다.

왜 미리 처내지 않았을까?


생명력 있는 용수나무를 뒤로 하여 사진 한 장 남긴다.



후원

담장 왼쪽이 민가이고 오른쪽은 후진 정청이다.




후원에 있는 큰 나무



설서說書

전문적인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설서인들이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보통 용수나무 아래에서 이런 설서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텐데

광동에서는 강고講故,강고사講故事라 했다고 한다.



전시한 공예품









1888年(光绪十四年),

以陈颖川堂和陈世昌堂的名义购买广州西门口外的连元街、荔枝湾福水塘、恩龙里等总面积约36600平方米的房产兴建陈氏书院。至1894年(光绪二十年),书院落成。 

1905年(光绪三十一年)

废科举后,书院改为陈氏实业学堂。民国期间,这里先后为文范学校、广东体育专科学校和聚贤中学。

1950年设立广州市行政干部学校。

1957年,经广州市人民委员会批准列为广州市文物保护单位,并由广州市文物管理委员会进行全面维修管理。

1959年,书院被辟为广东民间工艺博物馆,以搜集、保藏、研究和宣传展览广东地区历代各类民间工艺品为主。兼及全国各地民间工艺品。馆内辟有多个展厅,常年展出馆藏文物。展品有陶瓷、雕刻、刺绣等工艺精品。

1960年经省人民政府批准列为广东省文物保护单位。 

1966年,广东民间工艺馆闭馆,陈家祠主体建筑被广州新华印刷厂占用并作为印刷车间。9月,广州电影机械厂占用陈家祠东院,后院。 

1980年,广州新华印刷厂迁出。1981年,陈家祠进行全面复原维修,1983年,重新对外开放。  

1986年由国务院颁布为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这组艺术建筑在文物部门的保护管理之下,得以发扬光大,供国内外人士观摩鉴赏。

1994年更名为广东民间工艺博物馆。

1996年被评为“广州十大旅游美景”之首。

2002,2011年,陈家祠以“古祠留芳”,“古祠流芳”的雅名两度入选新世纪“羊城八景”










바이뚜에서 검색한 진가사 예술품에 대한 설명을 남긴다.


陈家祠的建筑以装饰精巧、堂皇富丽而著称于世。木雕、石雕、砖雕、泥塑、陶塑、铁铸工艺等各种各样的装饰,遍布在祠堂内外的顶檐、厅堂、院落、廊庑之间。


图案题材广泛,造型生动逼真,雕刻技艺精湛,用笔简炼粗放却又精雕细琢,与雄伟的厅堂浑然一体,被誉为“岭南建筑艺术明珠”。


 祠前的壁间有六幅画卷式的大型砖雕,每幅砖雕长达4米,是用一块一块的青砖雕刻好了以后再连接成一体的,立体、多层次的画面里有神话传说、山水园林、花果禽兽、钟鼎彝铭等。陶塑工艺集中在19座厅堂屋顶上的瓦脊;砖雕以东、西倒座外墙的最具规模;灰塑集中在瓦脊及院廊上,是南海灰塑艺人所作;木雕除梁架与大门及聚贤堂的屏风外,后座的11座双层透雕神龛,体型高大,有“光绪十六年”、“回澜桥刘德昌造”“源昌街时泰造”等题款。


建筑中的各种雕刻装饰,主要由建筑商到省内县组织聘请大批能工巧匠集中到广州制作。根据现有的资料,参加砖雕制的艺人有番禺的黄南山、杨鉴庭、黎壁竹,南海县的陈兆南、梁澄、梁进等。其中以黄南山雕刻的数量最多。

 
陈家祠堂在1958年修缮后辟为广东民间工艺馆。

郭沫若同志曾在1959年参观后留有一首五言诗:
“天工人可代,人工天不如。果然造世界,胜读十年书。”


陈家祠的建筑装饰工艺早在20世纪20年代已为国内外建筑专家和学者所重视,德国和日本的建筑艺术专著中已有专题介绍。


木雕


木雕在陈氏书院是数量最多、规模最大的一种建筑装饰。木雕业在明代逐步趋于繁盛,随着硬木(俗称红木)家具的发展而成长,为岭南传统手工艺的一种。
陈氏书院室内的屏门挡中、龛罩、花罩、梁架、坨墩、斗拱、檐板、雀替等,广泛采用了木雕装饰。 
陈氏书院的木雕以浮雕和镂雕两种工艺手法为主,建筑上下几乎所有的木构件都雕刻着难以尽数的历史故事和吉祥图案。

首进头门梁架上雕有“王母祝寿”、“践士会盟”等取材于历史故事和民间传说的木雕,其中为突出的是《三国演义》中曹操大宴铜雀台一组,描绘曹操坐在铜雀台上观看校场各员大将比武的场面,突出刻划了徐晃与许褚在比武后为了锦袍而争夺难解难分的情景。


中进二十扇以历史故事、民间传说为题材的双面镂雕屏风,被誉为“民间艺人运用木头和钢刀雕就的历史故事长廊”。
后进大厅的11座8米高的木雕神龛罩,规模宏大,镂刻了数不尽的龙凤、花卉、人物故事等,是广东现存最大型的清代木雕杰作。

   


石雕


陈氏书院的石雕主要是采用麻石石材。多用在抱鼓石、石狮子、月台、台基、墙裙 、柱础、劵门、垂带、台阶、栏杆、栏板及檐廊的檐柱、月梁、梁塾、雀替等地方,这些易受阳光和风雨侵蚀的建筑构件都选用了花岗岩石材打造,防潮防霉又坚固耐用。


花岗岩石浅灰的色调与砖木结构建筑的深沉主调形成对比,相互反衬,层次分明。
 
陈氏书院聚贤堂前的月台是岭南石雕装饰工艺的代表,融洽了圆雕、高浮雕、减地浮雕、镂雕和阴刻等多种技法。
月台栏杆以各种花鸟、果品为题材,雕成。


栏杆柱头采用镂空技法,雕有一盘盘菠萝、杨桃、仙桃、佛手等岭南佳果,既富有岭南风情,
又寄寓了陈氏子孙终年以果品祭祀天地神灵和祖先的虔诚敬意。


陈氏书院檐廊的外立面以檐柱、月梁、梁塾、雀替、栏杆、栏板等组成,石柱上端镶嵌有圆雕故事人物饰件,
题材有“渭水访贤”、“曾子杀猪”、“孔明智收姜维”、“和合二仙”等;梁塾、雀替、栏板均雕有吉祥图案或人物故事。
还有大门前的一对石狮(基座已失),石匠运用圆润简练的线条雕琢成形体活泼、神态祥和、笑脸相迎的瑞兽,这是广东地区石狮造型的代表。


砖雕


陈氏书院建筑中,砖雕是建筑主要装饰工艺之一。外墙、墀头、檐下等均采用砖雕作装饰。陈氏书院正面外墙上的6幅大型砖雕,均由质地细腻的东莞青砖精雕细刻拼接而成,是同期建筑中少有的大型砖雕。


其中“梁山聚义”、“刘庆伏狼驹”两幅砖雕均高1.75米,宽3.6米,其余四幅砖雕分别是“百鸟图”、“五伦全图”、“梧桐杏柳凤凰图”、“松雀图”,图的两旁还雕有不同书体的诗文。


陈氏书院这种诗书画结合的砖雕也是同期少见的。


而外墙檐下及廊门上边饰线条排列整齐,密集苍劲、纤细均匀,垂直如线,雕工精湛,有“挂线砖雕”之称。

陈氏书院主体建筑三进三路的九间厅堂外的墀头上,均饰有砖雕。这些砖雕顶部为缕雕斗拱出头,中为主题纹饰图案,上下傍边是边饰图案,下部为副题图案和落款。其题材内容有吉祥图案、民间传说、历史故事等。


如:“喜鹊登梅”、“老鼠啃葡萄”、“金玉满堂”、“龙凤呈祥”、“太师少师”、“竹鹤图”、“杏林春燕”、“瓜瓞绵绵”、
“东方朔偷桃”、“麻姑献寿”、“和合二仙”、“天姬送子”、“群英会”、“曹操大宴铜雀台”、“玉皇登殿”、“甘露寺”、“舌战群儒”等。


陈氏书院的砖雕,主要以浮雕为主,局部采用了透雕、圆雕、镂空雕等技法。
陈氏书院砖雕出自南海、番禺的黄南山、杨鉴庭、黎壁竹、陈兆南、梁澄、梁进等著名民间艺人之手。
艺人按需布设图案纹饰,丰富了单调的墙面,突现了广东砖雕的风格,为陈氏书院这座建筑添色不少,并成清代岭南建筑砖雕艺术的代表。


灰塑


灰塑是珠江三角洲一带传统建筑中广泛运用的一种建筑装饰艺术,民间艺人以石灰为主要原材料,加上发酵后的稻草或草纸,经反复锤炼,制成草筋灰或纸筋灰,然后根据建筑空间和装饰部位的需要设计图案,在需装饰的部位进行现场制作。
一般先以草筋灰堆塑造型,再用纸筋灰细塑表面。待干到一定程度后,最后绘上各种色彩。
 
陈氏书院灰塑累计总长2562米,总面积约2448平方米,主要用于屋脊基座、山墙垂脊、廊门屋顶、厢房和庭院连廊及东西斋的屋脊上,规模之大为岭南之冠。从陈氏书院灰塑装饰的题材来看,有神话传说、历史故事、戏曲人物,以及由祥禽瑞兽、花卉果木、吉祥文字组成的各种吉祥图案等,还有山水、楼台亭阁等风景图案,多是民间喜闻乐见的题材。


陶塑


石湾陶塑脊饰,又称“花脊”,用陶泥雕塑后经煅烧而成,是专门装饰于庙宇、祠堂、会馆等大型建筑物上的特殊工艺。
这种装饰手法源自明末清初,盛于晚清,主要流行于我国的岭南地区,体现了南粤浓郁的民间建筑装饰风格。
 
书院的正脊采用佛山陶塑共11条,分别由文如壁、宝玉荣、美玉成、吴奇玉等店造,其数量和规模反映了当时广东陈氏宗族的经济实力。

 
首进5条和聚贤堂脊饰分别于光绪十七年(1891年)(聚贤堂脊饰 于1976年被台风刮倒,于1981 年重塑)
和十九年(1893年)烧制,中、后进的4条脊饰于光绪十八年(1892年)烧制,后进大厅的脊饰则完成于光绪十六年(1890年)。


11条脊饰中以聚贤堂的规模最大,其总长27米,高2.9米,连灰塑基座总高达4.26米。
全脊共塑224个人物,题材包括八仙贺寿、加官进爵、虬髯客与李靖等。
其他脊饰的题材主要是龙凤、花鸟、瑞兽、山水以及历史故事和人物群像等。


铜铁铸和彩绘


铜铁铸和彩绘是陈氏书院建筑装饰工艺中的两种,尽管它们在整个书院建筑的使用为数寥寥,却起到了画龙点睛的作用。
陈氏书院连廊的廊柱和月台围栏的栏板均使用铁铸装饰,这在清代传统建筑中是较为少见的。


民间艺人巧妙地将铁铸通花栏板镶嵌在围栏的石雕框架内,利用铁和石之间的色彩对比以及铁铸的通透立体造型,
使月台围栏产生出如国画斗方般独特的装饰效果,成为陈氏书院建筑装饰艺术的一大特色。


其中的“麒麟玉书凤凰图”、“金玉满堂”、“三阳开泰”等,由佛山生铁铸造,打制或铸造而成,这些铁铸装饰工艺,
吸收了西方的建筑装饰手法,再结合中国的传统文化题材元素,相得益彰。


陈氏书院大门上气势威武的彩绘门神。书院东西厢房绘有多幅壁画,壁画的主要题材有滕王阁图、夜宴桃李,
人物有王勃、李白等。


书院的楹联主要表达对祖先功绩的颂扬和缅怀,光大先祖文风宏业的理想和愿望。楹联多为楷书,自成一格。


[작성 2019.12.22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