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 이야기

봉동 추동마을 추수경 장군 묘역(2013.9.26 목)

무논골 2013. 9. 26. 12:45

은하리에 있는 모 기업의 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전주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눈에 띄는 간판에 이끌려 차를 돌려 마을로 진입하였다.


내 어린 시절 공부하였던 명심보감의 편저자 추적 선생의 후손과 관련된다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사당


평소에는 문이 잠겨 있다.

관리인 전화번호가 있지만 시간이 없어 연락하지 않고 담장너머로만 둘러보았다.


묘역의 뒤에서 찍은 사진.

묘의 둘레에 석물도 설치한 것은 최근일게다.

인터넷에서 석물 설치하기 전의 사진도 보았으니말이다.



장군의 묘역


일제시대에 크게 묘가 훼손되었다가 

최근에 단장되었다.


 

큰 비석글씨 대충 보면 "명나라 무강자사이자 조선의 호성공신 추공수경의 ~~ "이라고 비문에 써있다.

관리인한테 연락하여 들어가봤으야는데...

아쉽네.


내가 방문한 기업의 연구소 회의실에 걸려 있는 글씨


처음보는 문구이다.

"고래는 바다가 넓음을 더듦듯이 끝없이 마셔대고

 학은 하늘이 높은 것을 믿기에 마음껏 난다"



늦은 밥을 혼자 먹었다.


참 맛있는 보리밥 부페와

친절한 식당 주인 아저씨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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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글에 약간 수정한 글


전주추씨(全州秋氏) : 시조 추엽()은 송() 고종 때 사람으로 1141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그는 고려 인종 때 가솔(家率)을 이끌고 함흥(咸興) 연화도(蓮花島)에 정착하여 우리나라 추씨의 시조가 되었다


추엽의 10세손 추수경(秋水鏡)은 


중국 오현군(五賢郡) 출신으로 1591(선조 24) ()의 무강자사(武康刺史)가 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제에게 간청하여 조선 파병을 결정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부장(副將)이 되어 아들 5형제 추노(秋蘆), 추적(秋荻), 추국(秋菊), 추지(秋芝), 추란(秋蘭)을 데리고 원병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곽산(郭山), 동래(東萊)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명으로 돌아가지 않고 함께 참전한 아들들과 전주(全州)의 추동(秋洞)에서 살았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는 남원 전투에 참전하였고전주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전주사고(全州史庫)를 끝까지 지켰다.


사후에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완산(完山)은 전주의 옛 이름으로, 후손들이 추엽을 시조로 하는 함흥추씨(咸興秋氏)에서 분적하여 전주(全州)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주추씨 [全州秋氏] (성씨와 본관, 2011.1.14,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