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일차
어제 백두산을 떠나 화룡 청산리를 보고 용정에 왔었다.
용정에서는 좀 늦게 일어났다.
화장실이 공동이라 중국인들이 먼저 일어나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잠잠해지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도 가볍게 아침을 먹고 용정 일정을 생각해본다.
용정에서 남쪽으로 지신(知新)가는 방향으로 40분을 택시타고 왔다.
명동촌에 윤동주 생가
마을,이 마을은 옛날 안중근 의사가 사격연습을 편히 할 수 있을만치 항일운동에 우호적인 마을이었다.
저 중국인한테 80원을 주기로 했는데 결국 20원을 더 줄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나 어쨌다나...
용정시 인민정부에서 보호하는 시설이 되었다.
교회...지금은 전시실로 쓰고 있다.
명동 개척 이야기
명동 약도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럼없이~~
대단하다.
윤동주 생가
나도 10,000원을 기부하였다.
저 여인은 공무원으로 퇴직하고 고향에 정착하셨다.
이웃에 살면서 나처럼 방문객이 있으면 와서 문을 열어주고 설명을 해준다.
중국정부에서 거금을 들여 조성중인 전시관
왜 중국정부는 ?
송몽규의 집,윤동주 사촌이라고 한다.
명동촌
명동촌
이런 환경으로 개척하고 민족 교육의 성지가 되고...
김낙연 목사 기념비는 문화혁명시기에 파괴되고...
오전 8시 28분 일송정을 향해 다시 용정으로 간다.
일송정
비암산,그다지 큰 산은 아닌데 전망은 좋다.
일송정은 원래 정자 모양의 한 그루 소나무였다고 한다.
소나무를 심었다.
해란강
산세가 특이하여 산책 나온 노파에게 물으니 말발굽산이라 한다.
그 노파는 조선족인데 서울에도 일하러 갔던 적이 있다고 하며
독립운동가 심연수 선생의 조카 심선옥이라고 한다.
자기가 마시려고 준비한 대추차도 내게 건네 주면서 대화를 더 하기를 원한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심연수 선생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니
191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활동하였으며
윤동주 시인과 버금가는 일제 저항시인이었다는 것이다.
용정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우물자리
용두레우물
1879년 무렵 조선에서 이주해온 장인석 박인언에 의해 발견된 우물~~
조선족 할아버지들...
농촌에만 살다가 도시로 온 분들이 많아 이들은 중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용정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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