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9차 중국여행 4/9일 맹림(2016-04-22 금)

무논골 2016. 4. 23. 03:48

맹부를 구경하고 나와서 바로 택시를 타고 맹림으로 왔다.

택시비 36원,시골길

기사님은 지나가는 길에 이정표인 명로왕릉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한다.

자기 마눌 면허로 둘이서 24시간 운전을 하는데 그럭저럭 산다고 한다.

머리를 깍두기로 깍았지만 참 선량한 사람이다.


맹림에 들어오면서 걱정은 어떻게 나가지?


 지금 와서 아쉬움은 맹림에서 마을에 있는 가묘나 대묘를 보지못함이 아쉽다.


신도


 맹자 사당,사당 뒤에 무덤이 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협문으로 무덤에 이른다.


아성 맹자묘


 

맹자 사당 뒷모습과 맹자 묘비석


 맹자 묘비와 맹자 묘


향나무 숲에 맹자 자손들의 묘가 있다.


 장인 어른은 '다 거기서 거기인 남의 문중 묘를 그만 구경할란다'하신다.

난 얼른 답하였다.그러세요..여기 좀 쉬고 계시면 얼른 다녀올거구요.. 


아까 그 맹자묘 앞에서 00시에 뵈요~~


역시 올라오길 잘 했다.

그다지 얼마 올라온 것도 아닌데 탁 트인다.

사기산 정상,돌담이 무너져 있다.아마 고대에는 석성이 있었던듯하다.

맹자묘에서는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었는데 와보니 개운하다.


사기산


저 아래 향나무 숲이 맹자 후손들의 무덤이다.

저 무덤들도 묘도를 작게 만들어 두었던데 그러면 그것도 동이족의 유습인가?



 

 

내 흔적을 두고 홀로 사진을 찍는다.


사기산 한쪽에는 채석장이 있었다.


맹림 앞에서 나라시 택시를 기다렸다.

때 잃은 점심을 하기 위해 빵을 샀다.

한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화장품 이야기도 한다.위챗으로 문자를 주고 받았다.

생 땅콩을 먹고 있었는데 한 움큼 집어 준다.

한국돈 좀 교환하자 한다.1천원을 주고 인민폐 5원을 받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맹림을 다듬던 인부들이 소개해준 나라시 택시가 도착한다.

40원이라고 한다.

곧바로 시골 농로길을 따라 곡부동역으로 갔다.

무척 가깝다.


3시에 고속철도가 출발하니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남았다.

북으로북으로 진황따오시 산해관역까지는 3시간 반이 걸릴 것이다.

몇 군데 급하게 나니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고 차분히 점심을 먹었다.


내가 탄 열차는 상해 홍교역을 출발하여 대련북역까지 간다.

더 남으로 내려가 신의주를 거쳐 평양_서울로 통하는 날이 올것인가를

잠시 상상해본다.


얼마 안있어 태안 태산을 지난다.

차는 북쪽으로 가고...왼쪽(서)도 산이요 오른쪽도 산이다.

산등성이 풍력발전이 보인다.


3시 30분 제남 신역에 잠시 선다.제남을 지나면서 끝없이 평원이다.

그 유명한 화북평원인가 보다.


4시 30분 창주시에 도착한다.하북성

창주시는 무술 잡기의 도시라고 한다.


5시 13분 천진역에 도착한다.


5시 27분 군량성에 도착한다.여기도 천진시이다.


5시 50분 당산에 도착한다.당산대지진의 그 도시이다.

들판 여기저기 산자락이 끊어져 있는데 그 때의 상흔인가 보다.

당산에서부터는 동쪽에 끝없이 모래산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장인어른이 보시기에 안좋으신가 보다.산에 나무를 심어야지....

남의 나라 여행와서 장학사님처럼 비평만 하시는 모습이 불편하다.

난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뿐이고...

그들이 게으른 것도 아닐 것이고 무슨 사연이 있겠지...비평은 삼가하고 싶다.


핸드폰이 종종 불통하여 개폐를 반복한다.


6시 30분 진황따오 도착한다.

멀리 보이는 산맥들이 누운 사람 형상이다.

연산산맥인가?


산해관역에 도착하였다.

허기에 대비하여 복숭아 10원어치를 샀다.


여행기에서 읽은 게 있어서 관내로 들어갔다.

사방이 어둡다.


전동차를 탔다.10원

그이가 소개해준 여관은 경산빈관,200원이다.시골치고 오히려 비싸다.

어쩔 수 없이 여장을 풀고 관내를 어슬렁 거리며 식사할 곳을 찾아본다.

사면성반장....좀 거나하게 시켰다.술도 곁들이고 64원


여관비가 비쌌으면서도 시설은 영 후졌다.

당나라 풍을 경험한다고는 하지만 별 감흥이 없다.


밝은 달이 밤새 창가에 머물러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