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충남 보령 충청수영성(2017.10.5 목)

무논골 2017. 10. 11. 12:26

 

조선 천주교 순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순교자들은 서울에서 이곳까지 와서 이 수영성 내 객사에서 하루를 묵고

수영성의 형 집행장소인 갈매진에서 순교한 것이다.

 

소성마을

 

충청수영성 추정도,상상 조감도,고지도

 

충청수영성은 충청해안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1896년 그 역할을 멈추고 점차 훼손되었다.

 

<인터넷 다음 검색 자료>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돌로 높이 쌓아올린 석성(石城)이다.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이 축성, 충청수영(忠淸水營)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城)으로 자라(鱉)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稚城)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고 해안방어의 요충지였다.

 

사방(四方)에 4대 성문(城門)과 소서문(少西門)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섭루(待燮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 등이 있었으나 허물어졌고, 서문 망화문(望華門)과 건물로는 진휼청(賑恤廳), 장교청(將校廳), 공해관(控海館)이 보존되고 있다. 망화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Arch)형으로 건립하여 발전된 석조예술을 볼 수 있으며, 오천항(鰲川港)은 백제때부터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라 불리었고,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많은 군선(軍船)을 두었으며, 세조 12년(1466년)수영(水營)을 설치, 충청수군의 최고사령부로 서해안을 방어하였다.

 

충청수영성은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또한,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출처 : 보령시청 문화관광홈페이지, 문화재청]

[Daum백과] 보령 충청수영성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서문 망화문인지 근처 석문인지?

 

 

 

아름답게 돌을 만진 솜씨이다.

 

 

성안에서 바라본 석문

 

진휼청과 너머의 영보정

진휼청은 폐영후에 오랫동안 민가로도 사용했다고한다.남아있어줘 다행이다.

 

 

진휼청 뒤에서 바라본 영보정과 해안을 향해 띠두른듯 석성

 

 

영보정

 

영보정과 소나무

 

오천교회가 보이고 그 오른쪽 기와건물은 장교청이라고도 불리는 객사이다.

석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성벽 위에서 오천 바다를 보다.

건너편 산은 오른쪽에 있는 보령방조제를 통해 연결되는 천북면

 

 

오천항

오천항에서 민박 3명이 6만원이다.

 

여행 계획~~

 

오천항 밤바다

 

 

새우 1kg에 5만원

 

공해관

 

공해관은 수령의 공관 이름이고 그 대문이 바로 이 사진일 것인데...공관 자체는 다른 곳에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이 대문만 이곳엣 보존하는지 잘 모르겠다.메모가 불충분하니....

공해관 앞 공덕비

 

장교청이라 불리는 객사

 

 

 

침실은 두 칸이고 더 넓은 곳이 마루다.

 

객사에서 바라 본 **교회

 

충청수영 해안경관전망대 안내표지.

해발 220미터 500미터를 가면 될터인데 오르막이기도 하고...

산밤 줍는데 시간과 체력을 다 써버려 실지로 올라가지 못했다.

다른 인터넷 검색에서 보면 힘들어도 올라가라 기록되어 있다.

 

 

전망대를 오르다가 멈춰서 바라본 해안 경관....황금 벼논 너머로 영보정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