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3차 중국여행 2/7일차 남경 영곡사(2018.10.6 토)

무논골 2018. 10. 18. 19:56

명 효릉을 구경하고 기진맥진하여 리앙피 한 그릇에 힘을 내어 관람차를 타고 영곡사로 갔다.

명 효릉에서 출발한 관람차는 중산릉을 지나 한참을 더 지나서 영곡사에 내려준다.

다리가 피곤하여 숲 속 관람차만 계속 타고 싶을 지경이었다.


영곡사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길도 물어볼 겸하여 아이스크림 하나와 물 한 병을 샀다.각각 4원이다.


영곡사는 자금산 동남쪽 기슭에,중산릉 동쪽 1.5km에 있으며 서기 514년 처음 만들었다.

명나라 창업 황제 주원장이 영곡선사라는 이름을 내리고 천하제일선림이라고 봉하였으며,명나라 불교 3대 사원중의 하나였다.


灵谷寺位于南京市玄武区紫金山东南坡下,中山陵以东约1.5千米处,始建于天监十三年(514年),是南朝梁武帝为纪念著名僧人宝志禅师而兴建的“开善精舍”,初名开善寺。明朝时朱元璋亲自赐名“灵谷禅寺”,并封其为“天下第一禅林”,为明代佛教三大寺院之一。《金陵梵刹志》将其与大报恩寺、天界寺并列为大刹。


이러한 전통적인 선찰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생각,전망자 위령하는 절이다는 느낌을 크게 받아 좀 아쉬움이 있다.

그저 일반 여행자들은 이곳을 잘 찾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생각을 하지도 않겠지만말이다.


아내는 바위에 앉는다.


방생을 위한 연못인지...


연못 이름을 현지에서 정확히 알지 못하였는데 빠이뚜에서 검색한 만공지滿工池인가 보다.



홍산문灵谷寺红山门으로 가다.


홍산문은 영곡공원의 대문이다.1930년대 건물이다.문패로는 "영곡승경"이라고 적혀있다.


灵谷寺山门是灵谷公园的大门,这座仿古建筑的山门是20世纪30年代重建的,其形式为三拱门,绿色琉璃瓦檐顶,外墙为红色,所以也叫红山门。门额上有“灵谷胜境”四字,是现代书法家钱松岳先生的手笔。


门外的一对石狮,是建造阵亡将士公墓的北平军分会赠送的。红山门后一条青石铺就的两道,在道的尽头,矗立着一座阵亡将士牌坊,牌坊建于民囯二十四年(1935年),是为纪念北伐阵亡将士而建,牌坊的台基长32.7米,宽16.6米,高10米,共五间,全部用钢筋水泥构筑,座基外镶花岗岩,绿色琉璃瓦覆顶。


牌坊前中门门额上横刻“大仁大义”四字,背面刻“救国救民”四字,都是国民党元老张静江题写的。


국민혁명군 공동묘지란느 팻말이 숲쪽을 향해 있다. 



国民革命军阵亡将士公墓位于无梁殿东西后三个方位,于民囯二十四年(1935年)落成,共建筑有公墓3座,

第一公墓居中,位于无梁殿后面;

第二、三公墓位于无梁殿东西两侧。


三个公墓共葬入1029名国军阵亡官兵,多数是北伐和12.8淞沪会战阵亡将士。


牌坊建于1933年,建造在42级石阶之上,台基长32.7米,宽16.6米,高10米,共5间,钢筋水泥结构,座基外镶花岗石,绿色琉璃瓦盖顶,饰有有水泥脊兽,斗拱三级,四角起翘。


前后门额上镌刻有“大仁大义”、“救国救民”八个大子,左右门额上配有瓷质国民党党徽。

第一、二、三公墓的地上建筑基本已经被毁。 


진망장사패방

죽은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패방이다.

대인대의라고 적혀 있다.


이 문턱에 이르도록 살짝 위로 치켜 오르다가 이 패방을 넘으면 낮은 지대이다.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배치로 보인다.


패방의 뒷쪽엔

구국구민救國救民이라고 적혀있다.사진으로 못남겼다.

경내에 접어들었을 때 마당에 전시회가 있었다.

명 태조 주원장과 불교에 관한 스토리였다.

명태조는 평민 출신으로 일생동안 불교와,이곳 종산과,영곡사와는 풀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송풍각

여기서 고즈넉하게 자리한 영곡사를 내려보는 것도 괜찮다.


명나라 때 영곡사 율당 자리에 지금과 같은 기념관을 남겼다.

보전하지 않는 것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지만 율당 자리에 전몰장병의 기념관을 지었다니......

난 왜 이리 울적할까?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전쟁이라는 것에 대한 작위적인 거를 생각하고......또 그것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관이라......

松风阁是一座依山而建的仿走马楼式建筑,面阔9间,屋顶为重檐式,铺以蓝色琉璃瓦。

这座建筑是“国民革命军阵亡将士”的纪念馆。纪念馆于1931年起建造,由美国建筑师茂非按中国传统的民族建筑形式设计,造价21.5万元。

1933年完工后正式定名“革命纪念馆”。


这幢二层楼建筑,东西长41.7米,南北宽19.7米,为钢筋水泥仿木结构。

外有回廊,楼下为9间,中为穿堂,上面是走马楼式的楼屋。

上下遍设架柜,供陈列阵亡将士遗物或举办展览。


무량전無樑殿

무량전無量殿이 아니고  무량전無樑殿이다.대들보가 없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건물에는 대들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둥도 없다.벽돌로만 지었다.


무량전 현판 아래로 신해혁명기념관이란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명나라 건물임에도 지붕에는 3개의 자그마한 라마탑이 세워져 있다.


无梁殿是明代灵谷寺仅存的一座建筑,因殿内供奉无量寿佛而得名。

由于这座殿是砖石拱券结构,不用梁木,所以俗称“无梁殿”。


无梁殿建于明朝洪武十四年(138年),大殿的东西长53.8米,殿前露台宽敞,面阔5间,进深3间。

殿顶是重檐九脊琉璃瓦,屋脊上的3个琉璃瓦塔是喇嘛塔。


其建筑结构改变了中国古建筑梁柱结合框架式的建筑传统。

整座建筑找不到梁柱,全部用砖砌造而成。采用了中国古代石拱桥的建造方法,由基层用砖先砌5个洞,合缝后叠成一个大型的拱形殿顶。


5个开门的每一间就是一券,每排为5券,正中一间券洞最大,宽11.4米,高14米。内部虽为券洞结构,外部却仍以仿木结构的形式出现,檐下有出挑的斗拱,正面还设有门窗,是一座采用多样券法,错综连接后构成的建筑。 

 
灵谷寺无梁殿前有一汉白玉赑屃,上驮一碑,这块碑是谭延闿的墓碑,上面原有蒋介石题书的“中国国民党中央执行委员前国民政府主席行政院长谭公延闿之墓”字样。墓碑之下有龟趺座,四周围有石栏,为谭延闿墓的起点。后来原碑文磨平,由中山陵园管理处第一任处长高艺林摹乾隆笔意题书“灵谷深松”。 


국민혁명열사지영위


이 유서깊은 무량전도......무량수불을 봉양했을 무량전에 전몰장병의 명복을 비는 영위를 설치하였다.


중화민국 국가


어케 보면 여태까지 본 것은 지금의 영곡사 밖에 있는 전각들이다.

명나라 때 기준으로 보면 지금의 영곡사는 차지하는 영역이 많이 축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사찰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영곡사 산문


영곡사 앞에서


장경루


현장원



당나라 고승 현장법사


大雄宝殿东跨院的正厅为玄奘法师纪念堂,里面陈放着六面七级飞檐桃角檀香宝塔一座,塔内安放着玄奘法师的部分顶骨。玄奘,通称三藏法师,唐朝高僧,唯识宗的的创始人之一,与鸠摩罗什、真帝并称为中国佛教三大翻译家。


据文献记载,玄奘法师圆寂于西安,葬于兴教寺塔,黄巢起义时遭盗而捐残。后来,宋朝天禧寺和尚法政,在陕西终南山紫阁寺得玄奘法师顶骨,迁葬于南京中华门外的大报恩寺,建一座砖塔,埋藏顶骨,名为“三藏塔”。清未遭兵燹而毁。 

 
1973年,南京灵谷寺修复开放,将存放于文管会的顶骨迎回,后建玄奘院、造金丝楠木纯金构建玄奘大师顶骨舍利塔进行供奉。

 

2016年1月8日,灵谷寺玄奘院地宫举行落成仪式,镇寺之宝——玄奘的顶骨从玄奘院大殿移驾地宫内保存。


고승의 유골이 어찌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모시던 건물도 훼손되고......

지금이라도 2016년에 다시 모시게 되니 영광스러운 것인가!

 

대통각당

양강 왕민 장길경 3인의 서화전이 열리고 있다.

제법 볼만했다.


그저 염불당이라 적혀있다.


대웅보전


대웅보전 앞에서 잘 움직이려하지 않는다.

다리에 힘이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촐랑거리며 나만 여기저기 쏘다니며 사진을 남긴다.



대웅보전 근처 겉보기 좋은 전각이 있어 가보니 이와 같은 신선이 계셨다.


영곡사에서 가장 저명한 영곡탑

가장 조망도 좋았다.

조망 보러 절에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영곡탑은 애초 국민혁명군열사기념탑이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진 열사탑이라 할 수 있다.


灵谷塔——原名阵亡将士纪念塔,是阵亡将士公墓的主要建筑之一,建于民囯二十年~民国二十二年(1931~1933年)。塔的设计者是美国著名建筑师茂非和中国建筑师董大酉。


该塔高约60米,九层八面,全部用钢筋水泥建筑。

每层以绿色琉璃瓦披檐,塔外绕有走廊(云座),围以石栏杆的平台,塔之中部用螺旋式,扶梯有260多级围转而上,每层每面有门通至塔外绕之平座,绕台可鸟瞰钟山景物。


正门横帽上的“灵谷塔”三个字是解放后陵园管理处第一任处长高艺林所书。

塔底层外壁石刻 “精忠报国”为蒋中正题书。

侧门分别是“成功”、“成仁”,后门为“有志竟成”


민국 시대의 건축물

유지경성...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


장개석 글씨


탑을 오르다.


탑 그림자가 짙고 길게 드리워진다.

곧 해가 저물 것이고

곧 남경을 떠날 것이다.


영곡탑에서 오던 길을 바라본다.


아내는 이곳까지 오지 않아서 중국인 관광객에게 사진을 부탁하였다.

자금산이 나즈막하게 부드럽게 펼쳐지고 멀리 내가 보인다.


영곡탑에서 서쪽으로 보면 중산릉이 보인다.


영곡탑신 일부와 중산릉을 같이 찍어보았다.


구玖 옥돌 구

아홉 구를 이렇게 발음을 음차하여 쓰기도 한다.

매층마다 이런 식으로 음차하여 표기하였다.


손중산 선생의 연설 원고

황포군관학교 개교 기념사인듯하다.


황포군관학교는 중국 광저우(廣州)에 설립된 군사교육기관으로서 

1924년 1월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된 중국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제1차 국공합작(國共合作)이 성립되었고, 군벌세력의 타도와 국민혁명(國民革命)의 완성을 목표로 하였다.

이 군관학교에 독립운동가들도 입교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포군관학교 [黃埔軍官學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오른쪽으로 송풍각도 숲 속에 보이고 저 멀리 탑머리는 아까 봤던 영곡탑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잔디가 끝나는 주위에 아래에서 소개되는 기념비 두 기가 있다.

아내는 내가 영곡탑에 다녀오는 동안 이 공원 의자에 누워서 쉬고 있었다.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전역戰域 하나하나가 다 역사일텐데 내 지식으로는 전모가 파악이 안된다.


영곡사를 다 구경하고 애초 관람차 내렸던 곳으로 왔다.

어디로 가야하나.


영양갱 비슷한 것을 팔고 있어 요기도 할 겸 길을 물었다.

친절하다.

영양갱 겉봉지에 山楂糕shanzhāgāo 

산사나무라는 건데 산사나무 자체를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면 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질서유지하는 인력이 거의 십여 명 되는듯했다.

왜 이리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내가 서 있던 줄 앞에 뭔가 문제가 있는듯하여 내 행동이 좀 굼떴다.

순식간에 뒤에 있던 줄들이 나를 밀어낸다.

그때서야 나도 완력을 써서 힘의 작용과 반작용을 이용하여 내 줄을 고수하였고

질서유지하는 인원들의 필요성이 입증되었다.ㅋㅋ


버스비 2원씩을 주고 버스에 올랐다.

한적한 길을 한참 지나서 도회지로 나오고 버스에 있던 젊은이들이 자기들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내가 내릴 지점을 안내해준다.고맙고 친절한 행동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