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역에서 10시 만나자 하였는데 어찌하여 9시에 도착하였다.
동료 직원은 차를 가지고 나와서 10시에 만나 양주 대모산성으로 가기로 계획했었다.
몹시 추운 날인데 양주역 역사나 근처에는 몸을 쉬게 하며 기다릴만한 곳이 없다.
그리하여 그냥 걸었다.
숲길로
흙집이 보인다.
참 부럽다.
깊지 않은 산을 의지하여 남쪽을 바라보며 안겨 있다.
어느새 숲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유양천이란 하천 너머 비닐하우스,그리고 불곡산이다.
불곡산 아래 하얀색 지붕이 보이는 건물은 양주별산대놀이터이다.
양주목 관아지
사또 가족이 거처하는 곳,
작년 여름에도 아들과 같이 양주목 관아지에 왔지만 이 곳은 들어오지 않았었다.
행랑채는 복원하지 않은 여백을 가지고 있으니 오히려 더 좋다.
대모산성 북문지
북문
북문
성벽이 선명히 보인다.
북문지 성벽
성 안에서 북문을 통해 불곡산을 바라본 모습
성밖에 불곡산이 보인다.
북문 근처 성벽
한북정맥 탐사하는 사람들,북문 근처
북쪽 성벽
북쪽 성벽이 또렷하다.
건물 주촛돌
발굴이 덜 된듯하다.
백석읍
성 안에 있는 묘지
돌과 시멘트로 분묘를 만들고 "墓"라는 한자를 적어 놨다.
이런 묘는 중국 여행중 주희의 고향 복건성에서도 많이 봤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돌보는 이 없는 무덤이다.
동문지
<아래 대모산성에 대한 설명글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양주 대모산성 경기도 기념물 제143호(1993.10.30 지정)
경기도 양주시 어둔동
이 성은 일명 양주산성(楊州山城)이라고도 하는데, 해발 213m 대모산 정상부를 에워싸고 있다.
이곳은 북서 방향의 유일한 통행로인 광적면 일대를 굽어볼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자 의정부 쪽으로 내려오는 적을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1.4km이며 성벽은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나 북문 터 좌,우측과 동쪽 등 3개소에 약 70~80m 정도 잘 남아 있다. 성벽의 높이는 4~5m이고 아랫부분의 폭은 주변의 지세에 따라 가파른 남쪽은 6m, 완만한 북서쪽은 8m쯤 된다.
성벽은 표면이 잘 다듬어진 할석으로 경사지게 들여쌓기 하였으며, 성벽 하단부 바깥쪽에는 보축 성벽을 쌓아 성벽의 안정성을 높였다. 성문은 3개소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다락문인 현문식(懸門式) 구조로 신라성에서 주로 발견되는 양식이다. 성 내부에는 군창(軍倉)터를 비롯하여 건물터로 추정되는 평지가 여러 곳이 있으며 우물이 5곳 있었다.
유물은 대부분 건물 터 내부와 추정 저장공, 문터 주변에서 출토되었는데 무기류, 농기류, 마구류, 건물부재, 일반 생활용구 등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의 유물로는 백제, 신라계의 유물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출토 유물 중에는 덕부사(德部舍), 국(國), 부(富), 대부운사(大浮雲寺) 등의 명문 기와가 발굴되어 주목된다. 삼국시대 이후의 유물로는 통일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유물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현재의 석축 성벽은 삼국 시대 때 신라에 의하여 쌓아져 고려, 조선 시대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문 터 북쪽에서는 백제계 토기가 많이 출토되어 석축(石築) 성벽이 축조되기 이전에 이미 이곳에는 토루나 목책 등의 방어시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아래 대모산성에 대한 설명글은 "양주시 홈페이지에서 얻은 정보입니다>
양주 대모산성(楊州大母山城)은 근초고왕(近肖古王) 이래 백제가 양주 일대를 지배하면서 한강 이북을 방어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에 세운 성의 하나로 여겨진다. 양주산성(楊州山城)이라고도 한다. 산성에서 발견된 세발 토기를 비롯한 백제 토기와 ‘덕부사(德部舍)’ 등과 같은 명문 기와편이 이를 증명해 준다.
양주 대모산성은 양주시 어둔동과 백석읍 방성리에 걸쳐 있는 높이 210m의 분지형을 이룬 산 정상부에 축조되었다. 산성은 북서 방향으로 양주시 광적면 일대를 굽어볼 수 있으며, 수락산 봉수대와도 연결되어 양주 및 한강 이북을 방어하는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양주 대모산성은 분지형을 이룬 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성벽의 높이는 4~5m 안팎으로 너비는 주변의 지세에 따랐으며, 가파른 남쪽은 6m, 완만한 북서쪽은 8m 정도 된다. 둘레는 1.4㎞이다. 축성 방법은, 먼저 땅을 골라 다진 다음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단(段)을 만들어 안쪽으로 들어가며 쌓았다.
성안 편평한 곳 가장자리에 둥근 주춧돌들이 흩어져 있어 건물 터로 추정된다. 성안에는 5곳의 우물이 있고, 1980년대 초 발굴 조사 때 군창(軍倉) 터가 발견되었다. 삼국 시대의 토기 및 기와·자기·철기 등이 발견되었으며, ‘덕부사’·‘덕부(德部)’·‘관(官)’ 등의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발굴되었다.
백제 시대 전략적 요충지에 축조된 양주 대모산성은 매성현(買省縣)의 치소로도 여겨진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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