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 묘역에 대한 사실적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하여 편집하였다
문득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에 왔다.
신숙주 선생 묘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왔다.
고산영당
찢어진 창호 틈으로 신숙주 선생 초상을 보았다.
고산동 구성마을 뒷편 부용산 기슭에 편하게 자리잡고 있는 신숙주 선생의 묘역
멀리서는 봉분이 작아보지만 가까이 가니 왕릉급이다.
옛 신도비가 마모되어 1971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김응현 글씨
한글창제 사적비라는 낯선 이름으로 한글학회에서
1971년에 세웠다.
허웅 선생이 짓고
같은 집안 사람이 쓴 것인데 거의 50년 전 문체라서 그런지 좀 어색하다.
묘소 아래에 있는 신도비
거의 읽어볼 수 없었다.
신도비 모양이 독특하다.
규모는 총 높이 240㎝, 너비 60㎝, 두께 56㎝이다.
1477년(성종 8)에 세워진 것으로, 아들인 이조 참판 고천군(高川君) 신정(申瀞)이 건립하였고,
비문은 이승소(李承召)가 지었으며,글씨는 동래 정씨 정난종(鄭蘭宗)이 썼다.
묘소는 쌍분이여, 묘역의 규모는 1633㎡이다.
중앙에 묘비가 있고 각 봉분 앞에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 장명등(長明燈)이 각기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그 앞에 좌우로 문인석이 하나씩 세워져 있으며,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 :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쌓고 밑에 다시 무인석을 배치하였다.
문무 차별이 있네?
봉분이 무척 크다는 인상이다.
신숙주와 정경부인 무송윤씨(茂松尹氏)
가운데 있는 묘비는
뒷면에 ‘숭정기원후 이백칠십년(崇禎紀元後二百七十年)’이라는 명문(銘文)으
로 보아 1897년(고종 34)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신숙주 선생 묘역 왼쪽에 있는 아들 신주(申澍, 1435~1456)의 묘
십이지신상으로 양각하여 호화롭게 호분석을 둘렀다.
저 멀리는 새로운 택지가 조성중이다.
이렇게 새로운 택지가 조성되면 구도심의 상권은 쇠락하게 될 것이다.
맨 위에 있는 아산 현감을 한 손자의 묘소
봉분을 사각으로 만들었다.
석상.
칼을 든 무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경기도 기념물 제88호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로 163번길 34-43(고산동 산53-7번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문득 신숙주 선생 묘를 방문하게 되었으며,
비문을 상세히 읽을 겨를이 없는 상태에서는 손자,아들의 묘를 그 윗대로 보았다.
고려말 분묘 형식이 있는 맨 위의 묘소가 선생의 윗대로 보았고
아들 묘를 조선 초기 분묘로 보았고
선생의 묘가 오히려 현대의 편안한 묘로 보았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북 진천군 선촌서당(2019.3.1 금) (0) | 2019.03.03 |
---|---|
충북 진천군 농다리(2019.3.1 금) (0) | 2019.03.03 |
경기도 양주시 천보산 회암사지(2019.1.13 일) (0) | 2019.01.14 |
경기도 양주시 대모산성(2019.1.13 일) (0) | 2019.01.14 |
전북 정읍시 진산동 영모재와 유애사(2018.12.23 일) (0) | 2018.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