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추사체를 아직도 모르겠다.
추사체라고 하는 만년의 독특한 서체를 지칭한듯한데
그 독특함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추사체라는 것은 추사 선생이 쓴 글씨를 말하는
일반명사라면 딱히 눈에 보이는 추사체는 정의하기 어렵다.
유홍준이라는 대가는
추사 김정희라는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서예가의 인생과 작품에 대하여
참으로 친절하게 안내를 하신다.
출퇴근하면서 뒤적이며 글 읽는 환희와
서예 감상하는 희열을 경험하였다.
중학생 시절에 매형으로부터 영인본으로 된 추사의 세한도 등을 선물받았는데
오랫동안 간직한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다.
근데 마음이 아프다.
유홍준 추사 김정희
유홍준
평론 또는 추천
나도 추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알 지 못했다.
영조의 사위인 월성위 김한신은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이다.
이 집안은 손이 참 귀하다.
한신의 큰 형님의 셋째 아들 이주가 대를 잇고,
이주는 큰 아들 노영이 있었지만 노영에게는 아들이 없어 노영의 막내 동생의 큰아들 정희가 대를 잇고
정희도 서자 및 양자로 대를 잇는다.
청조학 연구의 제1인자는 추사 김정희이다.
추사의 스승 박제가
봉은사 옛 모습
봉은사 판전
세한도
조선시대 초상화의 수준을 알아보고자 같은 인물 다른 작가의 초상화를 비교해본다.
추사의 벗인 영의정 출신 권돈인이 추사의 제자 희원 이한철에게 흑단령을 입은 추사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다.1857년
추사가 제주도 위리안치에서 해배되고 서울로 가는 길에 초의선사가 더 머물라는 청을 해도 서둘러 백파 선사를 만나러 갔다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이 만나기로 했다는 정읍 입암면 조월리 중장터...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지금 몇명 어른들에게 물의니 중장터를 모르고 있다.
백석동천 추사 김정희 별서
추사는 일찍부터 불교,특히 禪에 심취해 있었다.
추사가 다산 정약용에게 배움을 구하며 자신의 학문세계를 넓혀갔다는 사실은 ~
50대에 들어서면 이 글씨가 더욱 발전하여 글자의 기본 틀에 구양순체의 방정함이 더해져 이른바 추사체에 가까워진다.
금석학에 기초한 입고출신,그것이 바로 추사체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추사의 꾕과리 치는 호소 : 격쟁
원교 이광사 : 내게 뛰어난 글씨 재주가 있으니 목숨만은 뺏앗지 말아주십시오.22년간 귀양살이하다 죽었다.
추사가 가장 아끼는 제자는 소치 허련
由篆入隸 전서법에 연유해서 예서로 들어간다.
해명해서 조롱을 면할 수도 없거니와 괴하지 않으면 글씨가 되지 않는 걸 어떡하나요.
숙신의 돌화살촉 : 이 도끼와 살촉은 숙신 물건 분명하니 다시금 동이가 큰 활 잘 쏨 떠올리네.
此斧此촉斷爲肅愼物 更想東夷能大弓 촉:화살
실제로 그는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고 우리 민족의 대륙적 기상과 북방적 기질을 사뭇 동경해온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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