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 담론

설흔 우리 고전 읽는 법 지금,여기,나의 눈으로 새롭게(2019.7.6 토)

무논골 2019. 7. 6. 14:51


 설흔 우리 고전 읽는 법


고전을 공부하는 소설가 설흔


잘 알지 못하였던 분이시다.



들어가는 글


지은이가 고전에 들오온 내역을 밝히고 있다.

본인은 아마추어라고 겸손해하고 있지만 내공은 있어 보인다.

본인이 읽은 고전 산문에서 키워드 몇 개 뽑아 이글을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고전읽기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키워드 일곱 개


 

나가는 글에 비로소 고전 읽이 노하우를 적은듯하다.


알라*에서 포인트 소멸기일이 다가온다며 공포감을 조성한다고 했더니

아내도 살 책이 있다며 주문을 부탁한다.


아이디와 비번을 겨우 찾아내고

서둘러 책 몇 권을 주문하였다.


아내가 주문한 책은 "말투만 바꿨을~ "

내가 주문한 책은 백기완 선생의 버선발 이야기와 내 손으로 통나무집짓기,그리고 이 책이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 주문하였다.

우리 고전 제대로 읽어 보자고...... 안내를 제대로 받아보자고.


책이 지난 수요일에 퇴근해보니 책이 와 있다.

딸은 이딴 책을 돈주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아빠의 책 고르는 수준에 대해

한마디 했다고 한다.

그래? 하면서 나도 책을 집어들었다.

아내는 정말로 당신이 주문한거야? 묻는다.

나도 순간 혼동이다.그냥 비매품으로 딸려온 책인지 아닌지......


처음 이런 취급을 받았지만 이글을 다 읽고 나서

작가와 깊은 동지의식을 느꼈다.

몰래 얼른 마카롱이나 마시맬로우 군것질한  느낌이랄까!


내가 당장 책을 쓴다면 이 정도 수준에도 한참 미달할 것이라고 자답하며

아마추어를 자임하며 아마추어에게 길안내하겠다는 작가의 겸손을 되새긴다.


고전에서 골라낸 글임에도 출전을 밝히는 책이름 정도에 한문이 등장할 뿐

인용글에 일체 한문을 병기하지 않았기에 처음 허접한 책으로 오해했다.


근데 이런 편집이 글 내용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브로맨스 연애 감정에 가까운 우정의 기록은 실은 굉장히 많습니다.

고구려 대무신왕은 아들인 호동을 무척 '사랑'했다고 합니다.

벗 우 友의 원형은 又 두개가 위아래로 포개진 글씨라고 합니다.

브로맨스는 양명좌파의 영향이다.


조선시대 많은 문인들은 여성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에게는 놀라운 통찰력과 따뜻한 마음을 보입니다.


박지원에 따르면 앙엽盎葉과 일신馹迅,이 두가지가 열하일기를 완성하는 비결입니다.

농사짓느라 그때그때 글을 쓸 수 없었던 어떤이가 밭가운데 항아리에 감잎과 붓과 벼루를 두고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곧바라 기록했다는 사연


이익은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이 선비가 해야 할 도리라고 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중에는 아내를 자랑스런 동지로 여긴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이 대목이 눈에 들어와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윤회매를 처음 시작한 이덕무는 윤회매 마니아라 부를 수 있겠지요.

  몇 사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정철조는 벼루만 보면 정신을 못차려서 호조차 석치石痴였습니다.속된 말로~




정약용 개취는 비 오는 날 물구경하기

유세검정기游洗劍亭記


나도 몇 년 전 여름 정약용과 거의 같은 느낌으로 세검정에 다녀온 적 있다.

http://blog.daum.net/jesibam?showadmin=9


아래는 "한국고전종합db"에서 받은 정약용의 해당 글이다.

번역하신 분들의 노고가 느껴지고 부럽기도 하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597A_A281_296H_IMG

(원본 이미지)


洗劍亭之勝。唯急雨觀瀑布是已。然方雨也。人莫肯沾濕鞴馬而出郊關之外。旣霽也。山水亦已衰少。是故亭在莽蒼之間。而城中士大夫之能盡亭之勝者鮮矣。


辛亥之夏。余與韓徯甫諸人。小集于明禮坊。酒旣行。酷熱蒸鬱。墨雲突然四起。空雷隱隱作聲。余蹶然擊壺而起曰。此暴雨之象也。諸君豈欲往洗劍亭乎。有不肯者罰酒十壺。以供具一番也。僉曰可勝言哉。


遂趣騎從以出。出彰義門。雨數三點已落。落如拳大。疾馳到亭下。水門左右山谷之間。已如鯨鯢噴矣。而衣袖亦斑斑然。登亭列席而坐。檻前樹木。已拂拂如顚狂。而洒浙徹骨。於是風雨大作。山水暴至。呼吸之頃。塡谿咽谷。澎湃砰訇。淘沙轉石。渤潏奔放。水掠亭礎。勢雄聲猛。榱檻震動。凜乎其不能安也。


余曰何如。僉曰可勝言哉。命酒進饌。諧謔迭作。少焉雨歇雲收。山水漸平。夕陽在樹。紫綠萬狀。相與枕藉吟弄而臥。


有頃沈華五得聞此事。追至亭。水已平矣。始華五邀而不至。諸人共嘲罵之。與之飮一巡而還。時洪約汝,李輝祖,尹无咎亦偕焉。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 폭포를 보는 것뿐이다. 그러나 비가 막 내릴 때는 사람들이 수레를 적시면서 교외로 나가려 하지 아니하고, 비가 갠 뒤에는 산골짜기의 물도 이미 그 기세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정자는 근교에 있으나, 성 안의 사대부 중에 정자의 뛰어난 경치를 만끽한 사람은 드물다.


신해년(1791, 정조 15) 여름에 나는 한혜보(韓徯甫) 등 여러 사람과 명례방(明禮坊)에 모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뜨거운 열기가 찌는 듯하더니 검은 구름이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고, 마른 천둥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나는 술병을 차고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폭우가 쏟아질 징조이다. 제군들은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는가. 만약 가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주(罰酒) 열 병을 한꺼번에 주겠다.”

하니, 모두들,

“이를 말인가.”

하였다.


이리하여 마부를 재촉하여 나왔다. 창의문(彰義門)을 나서자 빗방울이 서너 개 떨어졌는데 크기가 주먹만큼 하였다. 말을 달려 정자의 밑에 이르자 수문(水門) 좌우(左右)의 산골짜기에서는 이미 물줄기가 암수의 고래[鯨鯢]가 물을 뿜어내는 듯하였고, 옷소매도 또한 빗방울에 얼룩졌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펴고 난간 앞에 앉아 있으려니, 수목은 이미 미친 듯이 흔들렸고 한기(寒氣)가 뼈에 스며들었다. 이때에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산골 물이 갑자기 흘러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은 메워지고 물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였다. 흘러내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내리치는 물 속에 마구 쏟아져 내리면서, 물은 정자의 초석(楚石)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형세는 웅장하고 소리는 맹렬하여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오들오들 떨려 편안치가 못하였다.


내가 묻기를,

“어떻소?”

하니, 모두 말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고 했다.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고 익살스러운 농담을 하며 즐겼다. 조금 있자니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혔으며 산골 물도 점점 잔잔해졌다. 석양이 나무에 걸리니, 붉으락푸르락 천태만상이었다. 서로를 베고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

한참 지나자 심화오(沈華五)가 이 일을 듣고 정자에 뒤쫓아 왔으나, 물은 잔잔해진 뒤였다. 처음에 화오(華五)는 같이 오자고 하였으나 오지 않았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조롱하고 욕을 해댔다. 그와 함께 술을 한 순배 마시고 돌아왔는데 그때에 홍약여(洪約汝)ㆍ이휘조(李輝祖)ㆍ윤무구(尹无咎) 등도 함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