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제14차 중국여행 12/15일차 면양시 서산공원 (2019.4.15 월)

무논골 2019. 5. 1. 23:28


동산 부락산을 구경하였으니 시간이 좀 촉박하더라도

봉황산이라 불리는 서산에 들르고 싶었다.


그냥 가면 아쉽고

들르면 시간에 쫓기고......


역사 고적을 기초로 하여

급히 만든 유원지이긴 한데 구경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는 한나라 때 문장가이자 철학자인 양웅과 삼국지 제갈 량을 보좌한 장완의 묘가 있다.


绵阳市涪城区的西山风景名胜区西山公园。

西山又名凤凰山,景区占地0.3平方公里,景区内茂林修竹,丹桂飘香,清泉淙淙,景色优美。

以子云亭为中心,还有古仙云观、蒋琬墓、蒋恭侯祠、扬雄读书台、玉女泉及隋唐时期的道教摩岩石刻等。



서촉승경?

좀 뻥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 서촉에서 제일 승경은 아니지만 승경은 맞긴맞다.


11시 7분에 관람을 시작하였다.


서산공원 안내도



문화고적과 자연풍광이 어우러져 1986년에 건설된 도심 공원이다.


西山公园位于四川省绵阳市四象西鼓西山,由市文化局1986年投资建设,是融文化古迹、自然风光于一体的文物古迹公园,规划占地595.5亩,已建成开放面积达358.5亩,年游人量13万人次。2000年,为理顺管理体制,市政府将西山公园划规市建委、园林局管理。


公园主景子云亭因唐代大诗人刘禹锡《陋室铭》中“南阳诸葛庐,西蜀子云亭 ”而久负盛名。现亭是仿清建筑,共4层,高23米,造型古雅别致。园内还有蜀汉名臣蒋琬墓、恭候祠;西汉先贤杨雄读书台、洗墨池;道教圣地西山观;玉女泉隋唐道教造像等文物保护景点。陈列“绵阳文物五绝”:中国最大的汉代铜马、最大的摇钱树、最早的铜佛像、造型最生动的说唱俑、最完整的人体经脉漆雕。


园内绿化面积占总用地面积的90%,主要植物有桂花、紫薇、桃树、梅花等,湖、楼、阁与绿树红花交相辉映,春夏秋冬景色宜人。





자운정원子雲亭苑


자운정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시인 유우석刘禹锡의 《누실명陋室铭》에 나오는 글귀라고 한다

“南阳诸葛庐,西蜀子云亭 ” 남양에는 제갈량 초막이 있고,서촉에는 자운정이 있다.


子雲이란 한나라 때 문장가이자 철학자인 양웅揚雄의 호이다.




청나라풍 건물이다.




뱃놀이 공원도 있고

휴식처로  참 좋을듯하다.

나같이 외국인이 돈 주고 이런 곳에는 오지 않겠지만......


서산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인듯하다.

중국에서는 이 정도는 정자로도 안치는듯하다.

관리되지 않고 있다.


자운정


자운정은 전한의 문장가,언어학자,철학자인 양웅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양웅은 촉한 성도 사람이다.호는 자운이다.

40세 집을 떠나 서울로 갈 때 이곳 부현에 들렀는데 부현이 바로 이곳 면양시 부성구이고,

이걸 기념하여 자운정이라는 정자를 만들었나보다.


子云亭是为了纪念西汉文学家、语言学家、哲学家扬雄而建造。扬雄(公元前53-公元18年),字子云,蜀郡成都人。

汉成帝时期曾出任黄门侍郎,是皇宫内侍从皇帝,传达皇帝诏令的官职。

扬雄少年用心专注,博学多才,“博览无所不见”,曾经“专精大《易》、耽于《老》《庄》”。

精通训诂和文字学,喜好辞赋,仰慕司马相如,有相如遗风。


早年曾有《反离骚》、《广骚》、《蜀都赋》、《成都城四隅铭》等作品,中年时期被诏入宫,有《甘泉赋》、

《河东赋》、《校猎赋》和《长扬赋》等作品成为其代表作,“把司马相如开创的劝百讽一”的大赋传统,推向极至,

此后再无人能继续下去了。


扬雄对探讨宇宙人生真谛的哲学研究贡献十分突出:“先是作《太玄》,融儒道为一体。”又作《法家》融儒、道、法三家学说于一体,对《易经》《论语》等经典著作也作出他自己的理解和诠释。


《文心雕龙》有“扬马”并列的提法。他是继司马相如之后,西汉最大的辞赋家。

扬雄的赋是学者之赋,知识渊博,技巧娴熟,但有“做作”之感。


扬雄对辞赋的贡献,主要在于他拓展了这种宫廷艺术的题材和表现手法,使其超出宫廷,咏物叙事,立志抒情,

使之更加散文化。


扬雄是在40多岁离家往京时,曾经滞留涪县。

现在,在绵阳市西山和涪城区永兴境内的古钟阳镇遗址,两处有“扬子云读书台”和“洗墨池”遗迹。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锡이 안휘성 화주和州자사로 있을 때 지은 누실명陋室铭

여기에 자운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陋室铭


   山不在高,有仙则名               산의 명성은 높은데 있지 않고 신선이 산다면 명산이요,

   水不在深,有龙则灵。            물의 영험함은 깊은데 있지 않고 용이 있으면 영험한 물이다.

   斯是陋室,惟吾德馨。            이것이 누실이라 하는데,오직 내 덕만 향기로울 뿐이다.

   苔痕上阶绿,草色入帘青,      이끼는 섬돌 위로 흔적내어 푸르고,풀은 발 안에 들어와 색깔이 푸르며,

   谈笑有鸿儒,往来无白丁。      홍유가 와서 담소하지만,백정은 왕래하지 않는도다.


   可以调素琴,阅金经,无丝竹之乱耳,无案牍之劳形。

                                           소박한 고금을 튕기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을뿐

                                           현악기 관악기가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공문서로 내 몸을 노곤케 하지 않는도다.

   南阳诸葛庐,西蜀子云亭。      누추하기로는 하남성 남양땅에 제갈량 초막이 있고, 서촉에는 자운정이 있는데

   孔子云:何陋之有!               이런 것에 공자께서 누추하다 말씀하시겠는가?

   

   * 번역은 다른 사람들 참고하고 내 식대로 다시 번역함 *


양웅 초상


누실명 조벽 뒤로 "서촉자운정" 현판이 있다.



누각을 두른 자운정


이정도 자운정이면 누추하지 않은데?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고

관람할 때 자운정에 대한 정보가 없이 단지 황제와 관련된 건물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계단에 오를 수는 있었지만 누각 높은 곳에는 갈 수 없었다.

유우석 시대에 자운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운정 중수기

번체자로 적었다.1989년


장완묘



장완 蒋琬

삼국시대 제갈량의 뒤를 이은 촉한의 걸출한 정치가


   相传三国时期,涓水河畔有个山清水秀的地方叫伊家湾。

这里住着一对年过半百、膝下没有子女的蒋姓夫妇。有一天晚上,蒋妻梦见一颗明亮的星星直落床头,

扑入自己的怀中。俗话说:“星子兴子”,这是得子的吉兆。不久,她真的怀孕了。夫妻两个甚是高兴。

一个旭日灿烂、朝霞满天的早晨,蒋妻生下一个白胖儿子。

小孩刚刚落地,一道祥光忽然从后厅直射天空。

顿时,屋顶瓦片纷飞,后山百鸟飞舞,池塘鱼儿欢跃,湾里牛嘶马叫。

蒋父想,妻子得梦为吉兆,孩子出生吉兆再现,就为儿子取名为“琬”,以美玉来象征吉兆。

蒋琬小时候长得眉清目秀,聪颖过人。湾里男女老少都很喜欢他。

小蒋琬发奋读书,苦练武艺,十几岁就以才识渊博,武功高强而闻名于乡里。

后来,蒋琬随刘备入蜀,为诸葛亮所器重,任丞相长史。

诸葛亮攻打魏国时,他主持兵源粮饷供应。诸葛亮死后,他代亮执政,为大将军录尚书事。


  蒋琬(?—246年),字公琰。零陵湘乡(今湖南省湘乡县)人。三国时期蜀汉宰相。与诸葛亮、董允、费祎合称“蜀汉四相”。初随刘备入蜀,被任命为广都长,后因为不理政事激怒刘备,在诸葛亮的劝说下,蒋琬免于一死,后重新被启用,诸葛亮将其悉心培养,并密表刘禅可以作为诸葛亮的接班人。


  建兴十二年(234年),诸葛亮死后,蒋琬执政。拜尚书令,又加行都护,假节,领益州刺史,再迁大将军,录尚书事,封安阳亭侯,并被受命开府,后加大司马,总揽蜀汉军朝。曾制定由水路进攻曹魏的计划,但未被采纳。延熙九年(246年)病卒,谥号恭 。



소박한 계단이 안내한다.



한 대사마 장공후묘



장완묘



장완묘

난 그저 삐익 둘러봤을뿐 참배의 동작을 하지는 않았다.



장완 묘 뒤로 사당이 있다.



중국에 와서 오랫만에 소박한 사당을 본다.


중국인들은 사당에 소상을 만드는데

여기는 "장완전"이라고 문장을 새겼을 뿐이다.

소상이 서 있는 거보다 더 경건하다. 


https://baike.baidu.com/tashuo/browse/content?id=0cbc6fa2b230cb38f30e0403&lemmaId=69708&lemmaId=69708&fr=qingtian


장완에 대하여 중국인이 서술한 내용



청나라 도광 때 글


서산공원에 와서 장완묘와 자운정만 겨우 보고 양웅독서대 등은 보지 못했다.

녹음 우거진 공원 길을 걸어 나오면서 두 사내는 도란도란 옛 이야기를 했다.

교편시절 여학생한테 채벌을 했는데 졸업후 찾아와서 선생님 덕분에~ 라는 훈훈한 이야기.


12시쯤 공원에 나섰고

이제 평정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이백고리로 가면된다.


매우 긴 담장을 따라

한쪽은 철길도 있고......


지루하게 걷다가 택시를 잡으려 해도 쉽게 택시를 만날 수는 없고......

벌써 점심을 먹는 사람들 삼삼오오 식당에 모여들고

음식 냄새는 시장기를 부채질한다.


택시를 잡아 머지 않아 평정터미널에 와서 버스를 탔다.

12시 23분


급하지 않은 버스는 이제 다시 북쪽으로 이백고리를 향해 간다.

시내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성수사聖水寺와 나한사羅漢寺가 보인다.


사천성 8대 사찰이라는 성수사는 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에 있어 얼른 내려 구경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시간과 이동수단이 한정된 나그네인지라 어차피 편히 앉은 버스에서 내릴 수는 없었다.








圣水寺,初建于唐代咸通年间(大约距今1300余年),即公元860―870年。宋代始名兴慈禅院,后因寺后山有泉水流出,终年不涸,至今也是泉水溢满;水质清纯,甘甜爽口,被视为灵泉,故更名为“圣水寺”。


圣水寺系四川省的八大禅林之一,号称“中川第一禅林”,因其地理位置独特,历史久远,古迹遍刹,适合修行弘法,且先后出现了丈雪、默野、可拙、清德诸师、果忍法师等高僧大德,在四川佛教界享有崇高的地位。


청련진 이백고리 에 12시 59분 버스가 도착하였다.


<작성일 : 2019.6.26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