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광성보-용두돈대-덕진진」도보여행중 덕진진에서 브리핑
2012.10.13(토)
안녕하세요? 여기 강화도 요새에서 직원 여러분께 역사의 숨결을 이야기하게 되어 쑥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제가 소개를 담당한 부분은 덕진진(德津鎭)입니다.
글자를 먼저 풀어보면 덕진이라는 포구에 있는 진이라는 뜻입니다.
덕진진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기에 앞서 강화도를 요새라고 표현했는데 강화요새,즉 강화도를 군사방어적 관점에서 사전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왜냐하면 강화도의 각 지명은 이런 군사적 관점에서 조성된 시설이 유래한 곳이 많이 있어 일반인들은 생소한 지명으로 인해 강화도 여행이 좀 복잡해보이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몽고의 2차 침략시인 1232년에 도읍을 옮겨오면서 성을 쌓았고 약 40년후인 1270년 몽고에 의해 완전한 간섭을 받으면서 그간 쌓았던 성을 허물었습니다.이곳 강화도 인민들의 고통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하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못해서 남한산성으로 몽진하고 거기에서 40일간 항쟁하던 끝에 지금의 잠실 나루인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게 됩니다.이런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숙종 임금 때부터 대대적으로 강화도를 요새로 만들게 됩니다.
강화도에는 정이품 외관직으로 유수(留守)를 두어 다스리게 했는데 4도 유수라 하여 유수는 개성,광주,수원,강화에 배치되었습니다.이런 고위직이 사또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강화도는 바다를 통해 한강으로 들어가려는 외적을 방어하기에 좋고 북방 외적이 침입하였을 때는 바다가 방어선이 되어 주는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의 북쪽 지금의 강화읍에는 강화산성이 자리잡고
중부에는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 조산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삼랑성이 있으며
강화도 외곽 육지를 방어할 수 있도록 김포지역에 문수산성이 있습니다.
강화도에는 14개의 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섬 전체를 둘러 쌓을 수 있도록 해안에 12요새가 포진해있습니다. 강화에 오면 진이니 보니 하는 지명이 많이 있죠? 조금전에 지나왔던 광성보니 인화보니 무슨무슨 보가 7개소가 있고,여기에서 해안을 따라 조금만 가면 길상면에 초지진이라고 있습니다.이렇게 덕진진이니 초지진이니 무슨무슨 진이라고 5개소의 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54개소의 돈대와 8개소의 포대가 있습니다.
잠시 한자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진이란 나루터란 뜻의 진도 아니고,이순신 장군의 학익진할 때의 병사의 대오를 지어 진지를 만들다라는 뜻의 진도 아니고,진압하다고 할 때의 진입니다.어루만지다.지키다라는 뜻으로 쇠금변에 참진 자를 씁니다.
보란 안보할 때 보자에 아래 흙토를 써서 작은 성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대라고 할 때의 돈이란 돈대돈이라 하여 흙토변에 돈독할 돈(敦)자를 써서 평지보다 조금 높직하면서 두드러진 평평한 땅이란 뜻입니다.
돈대란 20~30명의 지금으로 치면 소대단위의 방어시설이었습니다.별장이라고 하여 종9품 무관이 지휘합니다.돈대는 주로 높은 지역 감시와 방어가 용이한 곳에 설치했습니다.지금 우리가 있는 덕진진도 사실은 덕진돈대가 맞지않을까 싶네요.
이런 돈대를 3~5개소씩 관리할 수 있는 상급부대로서 진이나 보가 있었습니다.진과 보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데 어떤이는 진이란 대대급부대,그러니까 500여명 정도의 병력을 통솔하는 첨사가 지휘하는데 종3품입니다.보에는 150여명 정도의 병력을 통솔하는 만호가 지휘하는데 종4품입니다.
강화해협이 있는 동쪽을 촘촘히 경계하여 한강으로 통하는 해로를 차단하고자 한 것에 주안을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서 있는 이곳 덕진진도 초지진과 더불어 동쪽해안을 지키는 요새였던 것입니다.
그럼 이곳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사적 제226호인 덕진진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저의 설명보다는 각각 안내판이 있으니 살펴보시는게 좋겠으므로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덕진돈대와 남장포대는 숙종 5년(1679) 에 설치했습니다.남장이란 남쪽 장애물 시설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저쪽 초지진 쪽으로 조금 걷다보면 있습니다.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는 무지개 모양의 모양의 홍예문만 남아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했습니다.고종 8년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 하였습니다.
저쪽에 있는 경고비는 향토유적 제9호이며,조선 고종 4년(1876)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친첨사가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이을 통제하겠다는 비인데요, 비의 크기는 높이147CM, 너비54.5CM 두께28로 정면에는 「 海門防守 他國船 愼勿過」라고 각인되어있습니다.
“해문을 잘 지켜라.타국선은 삼가 통과시키지말라”라는 뜻이지요.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고 자유롭게 견학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l 사실과 다를 수 있으므로 재인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못합니다.
<각 진과 보에 소속한 돈대의 현황>
월곶진 : 월곶리 연미정과 황형기념비 근처(옥창돈, 월곶돈, 휴암돈, 적북돈을 관할)
제물진 : 갑곶리 강화역사관이 위치한 일대(갑곶돈, 염주돈, 제승돈, 망해돈을 관할)
용진진 : 연리에 복원됨(용당돈, 좌강돈, 가리산돈을 관할)
광성보 : 신현리에 복원됨(광성돈, 오두돈, 화도돈을 관할)
덕진진 : 덕성리에 복원됨(덕진돈, 손석항돈, 용두돈을 관할)
초지진 : 초지리에 이미 복원됨(섬암돈, 장자평돈, 초지돈을 관할)
선두보 : 선두리 '진터'로 불리는 정족산성의 서문 아래쪽(후애돈, 동검북돈, 택지돈을 관할)
장곶보 : 장화리 장화감리교회 하단 부근(검암돈, 장곶돈, 북일곶돈, 미곶돈을 관할)
정포보 : 외포리의 '성안이'라고 불리는 곳(석각돈, 삼암돈, 망양돈, 건평돈을 관할)
인화보 : 인화리 인화돈의 남동쪽밭과 마을일부(작성돈, 구등곶돈, 광암돈, 인화돈, 무태돈을 관할)
철곶보 : 철산리 철곶돈 맞은편 철산 교회 부근(천진돈, 철북돈, 의두돈, 불장돈, 초루돈을 관할)
승천보 : 당산리 승천포 부근(낙성돈, 숙룡돈, 소우돈, 빙현돈, 석우돈을 관할)
※ 폐지된 돈대 : 갈곶돈, 양암돈
2012.10.13 (토) 강화도 불은면 덕진진에서
직원들에게 조선시대 강화도 방어체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2012.10.14(일) 낮 12시경 법계사 근처 하산길에
법계사는 해발 1450m에 위치하여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터잡은 절이란다.
학창시절 선후배들과 지리산 등산했다.
ㅇ 4시 경남 함양 백무동에서 산행 시작
ㅇ 7시 삼계도 경계지인 장터목대피소 도착,아침식사
ㅇ 11시 천왕봉 도착
ㅇ 15시 경남 산청군 중산리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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