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자고 일어나 또 여행을 서두른다.
옛 경상감영에 남아 있던 징청각,왼쪽에서 본 모습
징청각...맑다는 뜻 명징하다는 징과 맑은 청자를 써서 징청각이다.
징청각 설명문이 보이게 찍었다.
선화당
선화당...보통 관찰사의 정청이 선화당이다.
내 알기로 강원도 감영 선화당이나 경상도 감영 선화당은 그럭저럭 원형이 남아 있으나 전라북도 전주에 있어야 할 전라감영 선화당은 흔적없이 근세 건물인 전라북도청사가 있었다.물론 이 청사도 신도시로 이전하였고...
일제는 전조인 조선의 고향인 전주를 쌔게 핍박하였다는 것일까?
지금 전주에서는 감영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는데 또다른 왜곡이 없기를 바란다.
선정비.
역대 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 판관 선정비인데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여기로 모아두었다고 한다.
그건 의미있다.흩어져 관리가 안되는 것보다는 한 곳에 모아 잘 관리하는 것도 좋겠지.
선정비에는 순조때 정만석 선정비도 있다.정만석 내 온양정씨 다른 파의 할아버지는 순조 9년 1809년에 이곳 경상도
관찰사를 하셨는데 난 그분의 행적을 잘 알지 못한다.
대구 근대역사관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한 건물.식산이란 식민지 산업이란 뜻인데...
역사관에서 만난 경상감영 모형.
1906년 관찰사 서리 박중양 대구 군수가 대구 읍성을 헐어버렸다.
조선 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고 일본의 요구대로...
인생을 좀 살다보면 알게된 것이지만
당시 명목상의 조선 정부 보다는 가까운 주먹이 더 세다는듯이 통감부의 뜻을 거슬릴 수 없이
또는 본인이 더 친일이 되어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일제의 구미에 맞게 조선의 성읍을 파괴하였으리라.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된 것은 선조임금 때이다.
그전에는 경주 상주 칠곡 안동 등에 감영이 있었다고 한다.
경주와 상주를 따서 경상도인데 대구는 나중에 성장한 도시인가 보다.
대구 성곽의 해체...아쉽다.
만약에 대구 성곽이 박중양에 의해 해체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선 자발적으로 근대문물을 받아 도시를 다시 계획했다면 성곽은 어떻게 하였을까 궁금하다.
228만세...그 공원에 가보지 않았지만 419 시대의 민주화 운동이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관풍루 사진,
경상감영의 외삼문인 관풍루의 모습.
이런 옛 모습을 일본 가쿠슈인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자료를 근거로 확인한 것이다.
미운 것...
약령시
약령시와 약령시 박문관을 구경하고 나오다 옆에 있던 근대식 건물
대구 제일교회
제일교회 50주년 기념비
서양식 종교에서도 전통식 비석을 세웠구나.
내용은 기독교적인 것을 담고 있구나...
제일교회 소개글
제일교회를 지나 이상화 고택으로 가다가 만난 첨탑 건물.나중에 알았지만 가까운 곳은 박정* 대통령이 결혼식을 올린 계산성당이고 멀리 보이는 것은 계명대학교 청라언덕에 있는 제일교회
아이들이 어제밤에 내게 물었던 것이 있다.
대구는 불교가 승한가요 기독교가 승한가요?
나는 직감적으로 말했다.
불교가 승하다고 할 수 있지.그러나 기독교도 승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
왜내하면 한국전쟁 무렵 서북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월남하여 대구에 정착하였고 그때 기독교도 내려왔으니까...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대구에 큰 교회가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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