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강원도 춘천시 의암 류인석 유적지(2018.7.29 일)

무논골 2018. 7. 29. 23:02


의암 류인석 유적지 조감도

선생은 1842년 음력 1월 27일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나셔서 화서 이항로 문하의 유학자이다.


서울에서 춘천을 오가며 종종 이정표를 보곤하였는데 오늘 어쩌다 이곳에 다다르며

땡볕에서도 쏘나기처럼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충의문


충의문 안으로 들어서면 다리 지나 저 멀리 산자락에 의암 류인석 선생 묘가 있다.


다리를 건너다 옆눈질하니 평화로운 하천이 흐른다.


의열문이 뒤로 보이고 그 뒤가 의열사이다.

여기 서 있는 곳은 아래에 소개가 되고 있는 관일정貫一亭이다.

 

의열사

배향일은 4월 12일


의열사에서 선생에게 배향하고 계신다.

늘 이 어른은 이런 모습을 보이신다.


 의열사 안에서 선생의 영정을 직접 촬영하기에는 뭔가 죄스러워 좌우측에 병풍으로 대신해본다.


장인어른께서 한 말씀 하신다.

"이 글씨를 저 어른이 직접 쓰신 필체라면 문과 하셨겠는데...."

나는 이 병풍을 촬영할 때는 후대 서예가 작품인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나 나중에 알아보니 직접 쓰신 글인듯하다.

장인 어른께서 글을 보는 눈도 일가를 이루신듯하다.


이 글의 제목은 "운현맹질"이다.


국난을 당하여 처세하는 위정척사 존화양이하는 유학자의 사생관을 엿볼 수 있는 글인듯하다.


의열사 담장 너머로 의병학교


의병학교 망루

류인석 선생은 무력투쟁의 망루를 지으셨지만 나는 내 고향에 이런 망루 하나 짓어 놀고 싶다.


의병학교는 류인석 선생의 의병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교육공간이다.

여덟 동 초가집에 약 70명을 수용하여 교육할 수 있다.


의열사 뒤로 류인석 선생의 묘소


선생께서는 1915년 74세를 일기로 중국 봉천성(지금의 요녕성) 寬甸縣 芳翠溝에서 돌아가시고 

1935년에 고향인 현 묘역으로 반장하였다.  


 의암기념관毅菴記念館


류인석 선생 흉상

가정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폐교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애국,관일약의 첫번째 강목이라고 한다.

관일약貫一約은 1909년 류인석 선생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국내외 항일의병세력을 결속하기 위해 시도한 향약형태의 조직으로서

애국愛國 애도愛道 애신愛身 애인愛人이라는 네 가지 실천 강목을 제시하고 있다.  


의병임명장

이런 문서를 차첩이라고 부르나 보다.

위 차첩에 나오는 정운경은 송강 정철의 후손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화동합편이라는 역사책....

책 제목 화華가 자꾸 거슬린다.

마치 지금의 맹목적인 동맹파의 숭미처럼......


관일정

관일향을 기념하여 만든 정자일 것이다.


관일정

 

류인석 선생 순국 100주년 어록비

풍전등화의 왕조에 대한 충성과 사생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류인석 선생 순국 100주년 어록비 뒤에 적힌 약전


의리라는 것!

정의라는 것!!

목숨이라는 것!!!


아~ 왕조시대 성리학자로서 의병대장 류공의암 선생과

민주공화국 진보정당인으로서 최근 작고하신 노공회찬 선생의 생사生死를 생각하며 잠시 그늘에서 불볕을 피하고 있다.


북한강 강원도 강촌근처에서



다정한 부녀


강변에 산책로 잘 다듬어져 있다.

새로지은 백양리역이 보인다.


유산유수 산도 있고 물도 있다.


 강원도 강촌 근처의 어느 팬션에서 가족들


한여름밤의 콘서트...

Let It Be를 들을 때 속으로 눈물이 한없이 흐른다.

전쟁과 평화,
회사 인수합병~
세월의 무심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