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내게 답사 동행을 권하셨다.
답사단은 익산시에 있는 원불교 총부에 모였다.
김제시 금산면에 산재한 곳이다.
7~8년 전 정읍과 전주 오가는 길에 이정표에 이끌려 들렀던 곳도 있다.
차원 높은 교제 범위가 넓어진 느낌이라 기뻤다.
원평 용호리 이종희 선생 생가
구미산 전투지
동학혁명 원평집강소
민간 설립 현충시설 학수재 위령각
천주교 수류성당
원불교 원평교당
불교 금산사
햇볕이 따갑고
일정은 빡빡하고
설명엔 깊이가 있었다.
답사지역은 대략 위와 같다.
위 그림 출처는 김제동학농민혁명사료집으로 사단법인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2010년에 펴낸 책자이다.
원평장터
오른쪽은 원평천변이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원평장터이다.
사진 찍는 등쪽은 이종희 장군 생가 복원한 곳이고 동쪽이다.
원평장터 기미독립만세운동 기념비
1989년 10월 28일 건립되었다.
1919년 3월 20일,원평장날을 기해 독립만세를 외치었다.
70년 전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기미독립만세 26년전인
1893년 3월에도 1만여 농민들이 원평장터에 모여들었으니 갑오년 혁명의 용트림은 이미 달궈지고 있었다.
1893년 3월 이 모임을 금구취회라고 한다.금구에서 열린 집회라는 뜻이다.
24세였던 배세동이~
모악향토문회연구회 최순식 회장의 글이다.
오늘 답사는 최순식 회장의 따님인 최고원 선생이 참여하여 선친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세심하게 전달해주셨다.
원평천변,원평장터 입구에 있는 이종희 장군 복원한 생가
실제 생가터는 이곳이 아니고 여기서 몇 백미터 마을 안에 있다.
이희종은 조선의용대에 참여했으며,의열단 창립인원 13명 중 1인었다.
의백義伯
이희종은 송옥정과도 통했다.
송옥정은 원불교의 식민지시절 명칭인 불법연구회 2대 회장을 지냈던 분으로
송옥정은 야학 운동을 했고 한의사였고 의사義士였다.
현령 김병억 혁파 금점 선정비
무자년은 1888년이다.
매장되었던 비석이 발굴되어 그저 이 자리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김병억은 고종 때 사람이고
금점은 허가받은 채금업자인데......누가 왜 세웠는지 왜 땅에 묻혔는지 역사적 맥락은 모르겠다.
원평천 너머로 모악산 산줄기가 이어진다.
원평천은 서쪽으로 30km를 흘러가 벽골제를 만난다.
가운데 오롯이 보이는 산이 제비산이다.
제비산帝妃山은 정여립(鄭汝立, 1546~1589)과 관련되어 있다.
원평천 너머에서 이종희 장군 복원 생가와 구미란 쪽을 바라본다.
사진 오른쪽,서쪽이 원평장터 초입이다.
항일 독립군 이종희 장군 생가터는 사진 오른쪽 끝에 보이는 가옥이다.
주인이 여러번 바뀌고 모습도 이미 애초 이종희 장군 생가와는 거리가 멀다.
작물이 심어져 있는 밭은 이종희 장군의 스승인 최@@ 선생의 서당있던 곳이다.
설명을 맡고 있는 최고원 선생의 할아버지이다.
앞에 보이는 숲이 구미산이다.
구미란이라고도 한다.
이 구미란에 동학동민들이 스러져 잠들어 있다.
구미란으로 오르는 길
최고원 선생이 무명 동학군에게 헌화하고 있다.
안내판에 붉은 색 장미꽃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간판 만든이가 넣었다.간판집 사장님은 이 구미란 전적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그 뜨거운 울분을 표현할 길이 없어
붉은 장미를 넣었다는 것이다.붉은 동백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기념사업회에서 괜찮다고 하여 그대로 쓰고 있다.
45년전 어려서 놀이터였다고 한다.
뼈가 나오고 탄환이 나왔다고 한다.아마도 그 뼈는 지금 생각하니 인골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전해내려오는 어른들의 말에는
개들이 입에 물고다니는 것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무덤을 파헤친 것이다.
이 나무들은 그 연기緣起에 의해 자라고 있을 것이다.
답사단에서 살짝 이탈하여 숨을 헐떡이며 여기저기 쏘다니며 사진을 남기려했으나
숲에 갇혀 특별한 것은 없었다.
원평은 전봉준,김덕명 활동 근거지이다고 적혀 있다.
원평은 전봉준 외가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구미란에서 내려오면서 모악산 쪽을 바라본다.
금평저수지 앞 제비산이 오롯하게 솟아 있다.
조선의 혁명아 정여립을 생각한다.
제비산 왼쪽 동곡마을에는
또다른 혁명아 강증산의 동곡약방이 있다.
애초 오늘 답사 일정에 있었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이르지는 못했다.
눈에 들어오는 낯선 현판이다.
도생천道生天
수황정守黃庭
누루 황黃 짜를 초서체로 음각하니 읽어낼 수 없었다.
오늘의 답사에서 열심히 적었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니 많은 것들이 이미 휘발하여버렸다.
오늘 답사기에는
필기와 생각이 혼재하여 각각 출처를 밝히기가 모호해지고 있다.
[작성일 : 2022.6.21 화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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