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266

제11차 중국여행 2~3/5일차 복건성 무이산 무이궁풍경구(2017.12.16 토~17 일)

무이산 무이궁풍경구는 두 번 방문했다. 무이궁은 들르지 않고 대왕봉으로~~ 저멀리 대왕봉이 보인다.(2017.12.16 토) 수렴동과 대홍포를 구경하고 아직 해가 뉘엿하길래 욕심부려 올라가보고자 했던 길... 무이산장 뒤 대왕봉을 향하여~~ 해가 저물어가고 마음은 급하고 어서 다녀와야겠다. 대왕봉과 만정봉 오르는 길 명나라 여행가 서하객을 여기서도 만나는구나. 황산에서도 봤는데... 담장에서 그~냥 찍어달라하여 주희 구곡도가에서 나오는 만정봉까지 올라갔다. 여기까지 올라와서 별 문제 없는 것만해도 참 다행이지... 서로 몸과 마음의 상태는 다를 수 있으니 만정봉에서 바라본 무이궁풍경구 무이산 천유봉을 오르기 위해 이른 아침 경내 관광차에 몸을 싣고 가다가 만난 대왕봉(2017.12.17 일) 땟목이 멈추..

중국이야기 2017.12.24

제11차 중국여행 5/5일차 복건성 하문시 남보타사南普陀寺(2017.12.19 화)

남보타미차관이라고 적혀있는듯하다. 철의 동문쪽에 접해 있다. 밥이나 차마시는 곳이라고 하는데 음식 정갈하고 맛있다. 남보타사 소채와 소병을 소개하고 있다. 남보타사로 들어가는 길 鷺島名山이라고 적혀있다. 백로 섬에 명산이라는 뜻.백로는 하문시의 상징 새 대비전 식당에서 나와서 자연스럽게 진입하게 되어 있다. 대비전에서 공들이는 인민들... 제법 진지한 모습이면서 향을 많이 태우지 않아 경건해보였다. 대비전 뒷모습 장경각이라고 한다. 아래층에는 법당이라고 적혀 있다. 몹시 단순하게 "법당"이라고만 이름붙인 건물은 처음 보는듯하다. 법당 어디서나 자주 보이는 EMall과 법당 뒷모습 예쁜 법당을 붉은 벽돌담으로 에둘러놨다. 오로봉이라고 석각하였다. 대웅보전 회랑에서....인연따라 천왕전 절 밖으로 나가면서 ..

중국이야기 2017.12.24

제11차 중국여행 5/5일차 복건성 하문시 하문대학(2017.12.19 화)

하문대학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여 안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하문대학 정문 하문대학 정문 하문대학에 들어가 관람하기 위해 길게 줄을 지어 섰다. 여기 아가씨들도 하문대 들어가 구경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처럼 정문 앞에서 어정거리며 사진으로 달래는듯하다. 저렇게 줄을 서서라도 하문대학을 구경하려는 것은 무슨 연유가 있을까? 하문대학 하문대학 정문에서 안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어보고 찍은 사진 별 특색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문대학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신분증을 검사하면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하문대학에서 남보타사 쪽으로 건너다가 본 걸인이랄까 부적만드는 거리의 종교인이랄까? --------------------------------------------------------------------------..

중국이야기 2017.12.24

제11차 중국여행 5/5일차 복건성 꾸랑위 일광암日光巖(2017.12.19 화)

일광암에 오르지 않으면 샤먼을 다 헤아릴 수 없다. 일광암사 천풍해도(天風海濤) 하늘에는 바람이 불고 바다에는 파도가 친다. 1915년 许世英이 썼다. 그 아래 오른쪽 “鼓浪洞天”은 명나라 만력 원년 서기 1573년 강소 단양인 丁一中이 썼는데 이것이 일광암에 새겨진 가장 이른 글씨이다. 왼쪽에 “鹭江第一”은 청나라 도광년간에 복건 장락 사람인 林铖이 썼다. 이런 단순한 말이 바위에 글로 새겨져도 어색하지 않는 것이 한문이 가지고 있는 마력인듯하다. 종루 당연히 고루도 있겠지만 사진에서는 놓쳤다. 황암 位于日光岩莲花庵前的巨石上有楷书横题“晃岩”二大字,系1916年朱兆莘所书。每字高0.60米,宽0.50米。 용두산채 터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용두산성 터일텐데... 이 산을 용두산이라 부르는 연유를 적고 있다..

중국이야기 2017.12.24

제11차 중국여행 5/5일차 복건성 꾸랑위 숙장화원菽庄花園(2017.12.19 화)

꾸랑위로 들어가는 부두에 역사전시물 중 눈에 띠는 사진. 외국인이 꾸랑위의 역사 인물이 되어 있었다. 廈鼓마두 해창대교 다리 오른쪽이 하문 섬이다. 꾸랑위 네이춰아오 부두에 내려서 해변을 거닐다. 군사대치란 평소에는 무시하다가도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 저런 군사대치 시설을 보니 은근한 국가무력을 느껴본다. 이억만리 바닷가 나그네 되어 조금 있다가 오르게 될 일광암을 배경으로 숙장화원에서 일광암을 바라보다. 菽은 콩숙,庄은 농막이란 뜻이니 콩밭지키는 농막이라는 뜻이렸다. 이름은 소박하다. 임추각과 일광암 임추각이란 소식의 적벽부 첫대목에서 따온 이름이렷다. 임추각 임추각과 용수나무? 대만갔을 때 용수나무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확인은 못했다. 다른 각도에서 임추각 44교에 있는 어느 바위. 석각으로 무슨 글..

중국이야기 2017.12.24

제11차 중국여행 4/5일차 복건성 영정토루永定土樓(2017.12.18 월)

관리받고 싶지 않아 자연 마을로 들어섰다. 홍갱촌 민속촌 밖에 있는 토루. 환흥루,500년된 집이다. 관에서 관리하지 않는 집인데 집주인이 안에 들어가 보려면 1인당 20원씩을 내야한다고 하여 우리는 밖에서만 기웃거렸다. 흙으로 지었으니 흙 토, 2층 이상의 집이니 나락 루.그리하여 토루이다. 1층에 해당되는 외부에는 문이 없다. 지금 보는 것처럼 조그마한 환풍구 정도만 있다. 한국의 전통 가옥이 쇠락하듯 이곳도 쇠락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늦게나마 자각하고 일부는 관리하여 관광지가 되고 거의 대부분은 자연적으로 세월에 순응하고 있을 것이다. 왼쪽이 토루이고 오른쪽은 토루 밖 별채 창고이다. 기단부는 튼튼한 돌로 기초를 다졌을 것이다. 향채가 자리고 있다.상큼하니 코향기 좋다. 저 아저씨..

중국이야기 2017.12.24

제11차 중국여행 3/5일차 복건성 무이산 구곡계표류九曲溪漂流(2017.12.17 일)

11번째 중국여행으로 복건성을 다녀와서 블러그에 글을 올릴 때 방문지 순서에 따라 날짜 순서로 올린다는 개념보다는 주제별 단편적으로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는데 구곡계 표류한 것에 대하여 제일 나중에 작성하고 있다. 즉,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1곡부터 9곡까지 일목요연하게 의미있게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주희의 구곡도가와 달리 우리가 표류한 것은 9곡에서 시작하여 1곡으로 종착했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이다. 구곡계의 일반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표류시간과는 달리 주자의 시에 따라 사진을 배열하기로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시 해석과 시에 사용된 글자가 출전에 따라 다르게 나와서 어느 것이 더 정확할 것인지를 따지고자 더 많은 인터넷을 뒤지고 비교하는 것이었다. 근원적인 문제....주희의 시집을 내가 가지고 있지..

중국이야기 2017.12.24

제11차 중국여행 3/5일차 복건성 무이산 운와雲窩(2017.12.17 일)

운와는 구름으로 지은 움집이라는 뜻일게다. 암벽에 글씨를 지운 흔적으로 보이는데 무엇을 누가 왜 지웠을까? “壁立万仞” “壁立万仞”四个字是明学者陈省以擘窠大楷字体题刻,幅面540×1360厘米,正文4字横书1行,款识9字竖书1行。 大字380×240厘米,小字46×36厘米,距地高度880厘米。 题刻“壁立万仞”是赞美武夷山景色,此幅摩崖石刻是陈省在武夷山题刻中最大的一幅。 “壁立万仞”于明万历十三年刻于仙掌峰岩壁,以形容仙掌峰的高峻峭拔, 同时比喻武夷文化内涵的高深,寓意深刻。 泽道法师对“壁立万仞”有着不同的看法, “壁立万仞,无欲则刚;海纳百川,有容乃大”, 除用以称赞武夷山美景之外,同时武夷山三教同山,更展示了武夷山的大度与宽容。 출전 : http://blog.sina.com.cn/s/blog_166bb9d6f0102x03i.html 伏虎岩 伏虎岩..

중국이야기 2017.12.24

제11차 중국여행 3/5일차 복건성 무이산 도원동桃源洞(2017.12.17 일)

천유봉 중정공원에서 도원동으로 내려간다. 도원동을 거쳐 성촌까지 12시 20분까지 가야하니 여유있는듯하면서도 가지않은 길이라 일단 시간 확보를 위해 서둘러 하산했던 길이다. 왼쪽 멀리 무이궁풍경구와 싼구제 방향일 것이다. 가까운 단애를 넘어야 도원동일 것으로 착각을 했지만... 가까운 단애와 나 서있는 기슭사이에 구곡계가 흘러가고 도원동은 난 서있는 기슭 어느쯤이다. 도원동 내려가다 어느쯤인지! 도원동 도관 武夷山桃源洞位于武夷山六曲畔内,此地穷极幽深,石崖相倚成门,复履婉转而入,石桥下溪涧流水,内忽平旷,日月放生潭布列洞口,四面环山,桃林片片;田畴可一、二十亩,彷如陶渊明笔下「世外桃源」,故得名。 道观创建于唐朝天宝年间(742-756年),是时武夷山仙灵之说吸引大批高士来此隐居修炼。会稽女冠孔氏、庄氏、叶氏(后人称三皇元君)结伴来武夷..

중국이야기 2017.12.24